사진=BH엔터테인먼트 제공
데뷔 20년이 지났는데도 배우 박보영의 연기 변신은 이번에도 통했다. 첫 장르물에 뛰어들어 그간의 러블리 이미지와 정반대되는 극한의 욕망과 생존 본능을 표현했다. ‘이런 연기도 할 수 있었구나’라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서늘한 눈빛과 밀도 높은 감정선으로 극을 이끌었다.
지난 27일 막을 내린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골드랜드’에서 박보영은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꿈꿨지만 금괴를 손에 넣은 후 더 큰 욕망에 사로잡히는 김희주를 연기했다. 선과 악이 단순하게 구분되는 인물이 아닌 주인공을 연기하며 박보영은 인간이 가진 탐욕의 과정을 가장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김성훈 감독은 제작 당시 “세상에서 가장 욕망과 멀어 보이는 박보영을 통해 인간의 평범한 욕망이 어떻게 커져가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무해하고 착한 얼굴의 박보영이 금괴를 두고 눈빛을 바꾸는 순간 느껴지는 반전의 카타르시스와 몰입감은 시리즈의 가장 큰 재미다.
작품 종영 후 인터뷰에서 박보영은 “김희주는 처음부터 범죄에 맞닿은 인물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 어쩌다가 얽히게 된 것”이라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욕심은 있기 마련인데 새롭게 눈을 뜨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김희주는 ‘이만큼만 욕심 내면 되지 않을까’ 하다가 점차 커지는 것들을 잘 표현하려고 했다”고 캐릭터를 연구한 지점을 밝혔다.
러블리 캐릭터를 넘어 우울감 있는 캐릭터까지도 연기한 바 있지만 점차 광기에 휩싸이며 욕망을 드러내는 얼굴은 처음이다. 첫 장르물 도전이라 고전할 법 했지만 본인 또한 만족이다. 박보영은 “생각보다 엄청 재밌었다. 살기 위해서 애쓰고 발악하는 게 지금까지 많이 해본 장르가 아니어서 겁을 먹었던 것도 있지만 생각보다 재밌다는 마음이 더 컸다”며 “보통은 욕망이 있더라도 참는데,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대리 만족을 할 수 있었다. 처음 겪는 것들이 많았다 보니 스릴 있었고 재밌었다”고 웃었다.
남자친구 이도경(이현욱)의 부탁으로 어쩌다 1500억원어치 금괴를 맡게 된 김희주는 어렸을 때 한 동네에서 지냈던 동생 우기(김성철)가 금을 대신 팔아주겠다고 제안하며 위험한 공조를 시작한다. 우기는 “누나”라고 부르며 잘 따르는 듯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긴장감이 끊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청자 사이에선 김희주와 우기의 케미스트리를 응원하는 반응이 컸다. 동료애 등 복합적인 감정이 있겠지만 작품에서는 이들의 관계성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박보영은 “대본을 처음 봤을 때도 우기가 너무 매력 있어서 누가 캐스팅 되는지 감독님에게도 계속 여쭤봤었다”고 떠올렸다. 또한 우기가 희주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은 무엇인지도 물어봤지만 김 감독은 작품에서는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고 전했다. 우기의 감정과 마음이 드러나지 않아야 시청자 또한 그가 김희주를 배신할지 궁금해 하면서 작품을 끝까지 시청할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박보영 또한 시청자와 마찬가지로 헷갈리는 마음을 갖고 방송을 지켜봤다. 그는 “방송으로 봤을 때 ‘저것은 사랑인가’ 하면서 보긴 했다. 다른 분들은 가족 같은 느낌도 있지 않을까 말하더라. 어렸을 때 우기가 김희주와 가깝게 지내고 의지했기 때문에 이런 감정이 섞여 있었던 것 같다”며 “다만 제가 시청자로서 봤을 때는 (우기가) 조금은 사랑하지 않았을까”라고 웃었다.
이도경과의 관계성도 많은 시청자의 궁금증을 낳았던 포인트다. 이도경은 김희주에게 금괴 운송을 부탁하기 이전에 전 여자친구인 차유진(이설)에게 먼저 제안한 바 있고, 항공사 부기장이라는 직업적 특성을 이용해 각 나라에 여자친구들을 뒀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이도경은 자신의 금괴까지 선뜻 포기하려고 할 정도로 김희주와 함께 하려고 하고,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연인을 지키려 한다. 결국 최후에는 인질로 붙잡히는 상황 속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박보영은 “협박을 받으며 죽을 때까지도 김희주에게 금괴가 어딨는지 얘기하지 말라고 하는 걸 보면 이도경은 희주에게 진짜 사랑이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이도경이 전 세계 공항에 여자친구를 뒀다는 것에 대해서도 “저도 감독님에게 물어봤는데 김희주를 만나기 전의 일이라고 하더라. 김희주를 만나고 나서야 브레이크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김희주는 이도경에게 어떤 마음을 갖고 있었을까. 불행했던 인생에서 이도경은 그에게 동아줄이 돼줬고 행복한 연애를 이어갔지만 금괴를 얻고 난 뒤에는 점차 이도경의 진심을 의심하며 끝내 금괴 절반을 나눠주겠다며 이별을 고한다. 박보영은 “이도경이 유일하게 (불행한 삶에서) 탈출할 수 있는 동아줄이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선택한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김희주가 이도경에게 갖는 마음이 100%의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엔딩에서 김희주는 무사히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 새 이름으로 정착한다. 우기도 김희주를 반가운 마음으로 찾아가지만 금괴의 원 주인인 캄보디아 조직원이 두 사람 추적에 성공하며 또 다른 불안을 예고한 채 막을 내린다. 박보영은 “저희도 대본 보고 시즌2를 생각하신 건가 했다. 다만 희망회로를 돌리자면 희주 혼자 있었다면 죽었을 수 있지만 우기가 같이 있으니까 또 모른다”고 생존 가능성을 열어줬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희주가 승자처럼 보이지만 그런 일을 겪고 매일 밤 잠을 잘 수 있을까. 오히려 우기와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났다면 더 찝집했을 것”이라고 엔딩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골드랜드’로 연기 인생 또 하나의 변곡점을 남긴 박보영이다. 그는 “모든 게 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새로운 장르를 했다는 것에 스스로 뿌듯함은 있다”고 돌아봤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를 시작으로 최근 3년여 간 기존의 ‘뽀블리’ 이미지를 벗어나 꾸준히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박보영은 “새로운 장르와 새로운 모습을 계속 보여드리려고 노력하는데 실패했었다면 다음이 없었을 것”이라며 “그래도 좋게 봐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 같아서 자신감을 가지고 지금까지 해왔다”고 말했다.
쉬지 않고 달려온 만큼 당분간 휴식기를 가질 예정이다. 이후엔 다시 밝은 역할로 돌아가겠다는 계획이다. 박보영은 “체력적으로도 심적으로도 힘든 작품을 연달아 하니까 ‘충전하는 것도 필요하구나’ 느낀다. 그래서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스스로 텐션이 내려가는 느낌이 들어서 이제 다시 올려야겠다는 생각이다. ‘골드랜드’에서 원 없이 어두운 캐릭터를 했기 때문에 다음에는 로맨틱코미디 같은 밝은 캐릭터를 하려고 한다”고 미소 지었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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