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17일은 세계고혈압연맹이 지정한 세계 고혈압의 날이다. 고혈압은 혈관 건강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만성질환이지만, 초기에는 뚜렷한 증상이 없어 방치되기 쉽다.
문제는 혈압이 높은 상태가 오래 이어지면 뇌혈관 손상이 누적되고, 뇌졸중은 물론 인지기능 저하와 혈관성 치매 위험까지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경산중앙병원 윤준필 진료과장의 도움말로 고혈압과 뇌 건강의 관계를 알아봤다.
◆고혈압, 뇌졸중 위험요인
고혈압은 뇌졸중의 대표적인 위험 요인이다. 혈압이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혈관 안쪽 벽에 반복적으로 압력이 가해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혈관은 두꺼워지고 탄성을 잃으며, 혈관 안쪽에 손상이 생기기 쉬워진다. 이 과정에서 혈관이 막히면 뇌경색, 혈관이 터지면 뇌출혈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뇌졸중 환자 자료에서도 고혈압의 비중은 뚜렷하다. 대한뇌졸중학회가 발표한 2024년 뇌졸중 팩트시트에 따르면, 뇌졸중 환자의 주요 혈관위험인자 중 고혈압 비율은 67.9%로 나타났다.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흡연, 심방세동 등도 함께 영향을 주지만 혈압 관리는 뇌졸중 예방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항목으로 꼽힌다.
윤준필 진료과장은 “고혈압은 머리가 아프거나 뒷목이 당길 때만 의심하는 질환이 아니다”며 “증상이 없어도 높은 혈압이 반복되면 뇌혈관에는 부담이 계속 쌓이고, 어느 순간 뇌졸중으로 드러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년기 인지기능에도 영향
고혈압은 뇌졸중뿐 아니라 인지기능 저하와도 관련이 있다. 뇌는 작은 혈관들이 촘촘하게 퍼져 있는 기관이다. 혈압이 높으면 미세혈관 손상이 누적되고, 뇌 백질 손상이나 작은 뇌경색이 반복될 수 있다. 이런 변화가 쌓이면 기억력, 판단력, 집중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혈관성 치매는 뇌혈관 손상과 밀접하다. 알츠하이머병이 주로 퇴행성 변화와 관련된다면, 혈관성 치매는 뇌혈관이 막히거나 좁아지는 과정이 반복되며 발생한다.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흡연 등 혈관 위험 요인을 잘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윤준필 진료과장은 “중년기 고혈압은 당장 생활에 불편을 만들지 않더라도 노년기 뇌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치매 예방을 막연한 두뇌 훈련으로만 생각하기보다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같은 혈관 지표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증상 없어도 위험
고혈압은 진료실 혈압 기준으로 수축기혈압 140mmHg 이상 또는 이완기혈압 90mmHg 이상일 때 진단한다. 수축기혈압 130~139mmHg 또는 이완기혈압 80~89mmHg는 고혈압 전단계로 분류된다. 이 구간에서는 아직 약물치료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생활습관 관리가 늦어지면 고혈압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
혈압은 측정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스트레스, 수면 부족, 카페인 섭취, 흡연, 운동 직후 상태, 측정 자세가 모두 영향을 준다. 한 번 높게 나왔다고 곧바로 고혈압으로 단정하기 어렵고, 반대로 병원에서 한 번 정상이라고 안심하기도 어렵다. 다른 날 반복 측정한 평균값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한다.
가정혈압도 중요하다. 진료실에서는 긴장 때문에 혈압이 높게 나오는 ‘백의고혈압’이 있고, 병원에서는 정상인데 집이나 일상에서는 높은 ‘가면고혈압’도 있다. 대한고혈압학회 기준으로 가정혈압은 135/85mmHg 이상일 때 고혈압 가능성을 고려한다. 진료실 기준인 140/90mmHg와 다르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중년층 고혈압·치매 예방, 식사는 ‘혈관식’
중년 이후의 식사 관리는 단순히 체중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다. 혈압을 낮추고, 혈관 손상을 줄이며, 뇌로 가는 혈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고혈압이 있는 사람에게 권장되는 대표적인 식사법은 ‘DASH 식사법’이다. 채소, 과일, 통곡물, 저지방 유제품, 생선, 닭고기, 콩류, 견과류를 충분히 섭취하고 포화지방과 가공식품, 당류, 나트륨 섭취를 줄이는 방식이다.
핵심은 ‘덜 짜게, 더 다양하게’ 먹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성인의 하루 나트륨 섭취를 2,000mg 미만, 소금으로는 5g 미만으로 권고한다. 국물 음식, 젓갈, 장아찌, 햄·소시지 같은 가공육, 라면과 배달 음식은 나트륨 섭취를 크게 늘릴 수 있어 빈도를 줄이는 것이 좋다. 국물은 남기고, 양념은 따로 덜어 찍어 먹고, 간은 소금보다 식초·레몬즙·마늘·후추·허브 등으로 보완하는 방식이 도움이 된다.
윤준필 진료과장은 “중년층 고혈압 환자에게 식사는 혈압약만큼 중요한 생활 관리 영역”이라며 “특히 짠 음식과 가공식품 섭취가 잦으면 혈압 변동이 커지고, 장기적으로 뇌혈관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좋은 식품 구성은 비교적 명확하다. 채소는 나물처럼 간이 강한 형태보다 생채소, 데친 채소, 샐러드 형태가 좋고, 과일은 주스보다 통째로 먹는 방식이 낫다. 현미, 귀리, 보리, 통밀빵 같은 통곡물은 정제 탄수화물보다 혈당 변동을 줄이는 데 유리하다. 단백질은 삼겹살이나 가공육보다 생선, 닭가슴살, 두부, 콩, 달걀 등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다. 견과류는 혈관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열량이 높기 때문에 한 줌 이내로 제한하는 편이 안전하다.
칼륨이 풍부한 채소와 과일도 혈압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칼륨은 체내 나트륨 배출과 혈압 조절에 관여한다. 다만 신장 기능이 떨어져 있거나 신장질환으로 치료 중인 환자는 칼륨 섭취가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무작정 바나나, 토마토, 감자, 녹황색 채소를 늘리기보다 주치의와 상의해야 한다.
윤준필 진료과장은 “혈압에 좋은 식사는 특정 식품 하나를 많이 먹는 방식이 아니라 전체 식단의 균형을 바꾸는 것”이라며 “국물과 가공식품을 줄이고, 채소·통곡물·생선·콩류 중심으로 식탁을 바꾸는 것이 중년 이후 뇌혈관 건강을 지키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약물치료, 미루는 것보다 조절이 중요
고혈압 치료는 생활습관 개선과 약물치료를 함께 고려한다. 혈압이 약간 높고 다른 위험 요인이 적다면 체중 조절, 저염식, 운동, 절주, 금연만으로도 개선될 수 있다. 그러나 혈압 수치가 높거나 당뇨병, 신장질환, 심뇌혈관질환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약물치료를 미루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항고혈압제를 한 번 먹으면 평생 끊을 수 없다는 인식 때문에 치료를 꺼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정확한 이해가 아니다. 약은 혈압을 억지로 낮추는 임시 처방이 아니라 혈관과 장기를 보호하기 위한 치료다.
윤준필 진료과장은 “고혈압 약을 먹기 시작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혈압이 실제로 조절되고 있는지 여부”라며 “수치가 안정됐다고 스스로 약을 끊으면 반동성 혈압 상승이나 뇌혈관 사고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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