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즌에 걸쳐 모범택시를 운행하며 40대에 접어들었다. 그간 소속사의 대표가 됐고, 같은 시리즈로 두 번의 연기대상을 받은 유일한 배우가 됐다. ‘모범택시’의 타이틀롤을 맡아 열연한 이제훈은 “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임무를 부여하게 되는 상이었다”고 지난해 연기대상의 못다한 수상소감을 전했다.
지난 10일 종영한 ‘모범택시3’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시리즈물로, 베일에 가려진 택시회사 무지개 운수와 택시기사 김도기가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완성하는 내용을 담았다. 2021년을 시작으로 세 시즌을 거치며 김도기의 캐릭터 플레이는 더욱 능수능란해지고, 무지개운수 식구들의 팀워크는 성장했다.
이제훈의 배우 인생을 ‘모범택시’ 전후로 나눌 수 있을 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감개무량하다”고 운을 뗀 이제훈은 “타이틀롤을 맡아 얼마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지 증명해 야했고, 돌이켜 보면 확실히 더 유연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연기도 많이 늘었다’는 시청자의 반응에 감사했다. 이 작품을 통해 나라는 배우를 새롭게 발견하고 응원해주셔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평소 뉴스를 보고 문학 작품을 읽으며 세상을 들여다본다. 콘텐츠를 만드는 일원으로서 인지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모범택시’가 시청자에게 큰 사랑을 받은 이유도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는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치는 태풍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얼마나 많은 고뇌와 스트레스가 있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면서 “억울한 일이 생겨도 해결할 수 없을 때 ‘모범택시’가 해결해준다면, 간접적으로나마 통쾌하게 해소해줄 수 있다는 점이 인기요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모범택시’는 택시기사 김도기를 중심으로 복수의 판이 짜인다. 전무후무한 김도기표 부캐릭터의 향연은 ‘모범택시’의 핵심축이다. 시즌2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땐 얼떨떨했고, 시즌3 소식엔 기뻤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부담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중고차를 사들이는 ‘호구 도기’, 스포츠 에이전트 ‘로렌조 김’, 수준급의 걸그룹 안무를 소화한 ‘매니저 도기’ 등 인격마저 바꿔 끼우는 김도기의 캐릭터 열전이 펼쳐졌다. 대본에는 부캐릭터 소개가 상세히 담겨있지 않았다. 빈칸을 채우는 건 이제훈의 몫이었다. 친근하지만 일상에선 보기 힘든 독특한 캐릭터들이었다.
어느 새부터 부캐를 즐겼다. 그를 향한 시청자의 믿음 덕에 용기를 낸 도전도 가능했다. 그는 “기존 본캐릭터가 가진 모습도 있지만, 에피소드마다 새롭게 보여줘야 하는 부캐릭터들이 있어야 했다. 어떻게 해야 지난 시즌의 부캐가 생각나지 않으면서도 흡인력 있는 캐릭터를 만들지 역량을 발휘하고 쏟아냈다. 스스로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수년간 눈에 띄게 성공한 ‘모범택시’ 시리즈의 성과 덕에 이제훈의 이미지는 ‘히어로’에 가까워졌다. ‘수사반장1958’(2024), 촬영을 마친 ‘두번째 시그널’ 등 정의롭고 책임감 강한 캐릭터를 떠올리게 된다. 이제훈 역시 “점점 책임감이 커진다. 아무도 날 모르던 신인 시절엔 주어진 대사를 잘 표현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앞만 보고 나아갔다면, 이제 주위를 살피면서도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향한 기대감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가 내게 주어진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생각해보면 부모님 말씀이 틀린 게 하나 없다. 올바르게 행동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하고 악한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조언을 듣고 판단하며 자라왔기 때문에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가 사는 방식대로 자연스러운 흐름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부연했다.
때론 생각 없이 웃고 떠들 수 있는 작품을 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한다. 다만 작품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는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고민하게 된다. “나도 작품을 보며 인생을 배우고 한 단계 나은 사람으로 발전해왔다. 작품을 통해 배우의 말과 행동이 남고, 시간이 지나도 떠올릴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찬사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그런 생각이 나를 틀에 가둔다면 스펙트럼에 한계가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모든 걸 떨쳐버릴 만큼 자유로운 내 모습을 상상할 때도 있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시즌3이 종영하기도 전에 시즌4를 향한 시청자의 요청이 빗발쳤다. 김도기가 보여주는 사회 정의와 그들만의 사명을 생각해보면 해야 할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다만 이미 쏟아낼 대로 쏟아낼 부캐릭터를 생각하면 고민도 된다. 그는 “새로운 이야기가 나온다면 더 남은 게 없을 것 같다. ‘모범택시’ 타이틀보다 앞으로 새 작품에서 또 다른 내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점이 부담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내 “당연히 어렵고 힘들겠지만 당당히 해보고 싶다”고 의지를 보였다.
무엇보다 만연한 사회의 부조리, 고통받는 피해자를 생각하게 됐다. “도가니가 살아있으면 (시즌을 계속) 해야 한다”던 김의성(장성철 역)의 발언을 언급하며 “힘들고 고통받은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을 잊지 않고 시리즈를 이어가야 하는 것이 ‘모범택시’ 시리즈가 계속되어야 할 첫 번째 이유”라고 소신을 드러냈다.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았고, 컴퍼니온 대표로 소속사를 운영한 지 5년이 됐다. 신인 시절 ‘연기만 잘하자’ 다짐했다면 이제 책임도 의무도 많아졌다. 배우로서 뿐만이 아니라 기획과 제작의 영역에도 역량을 펼쳐갈 계획이다. 이제훈은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 갈 시간이 훨씬 길다고 생각한다. 신인 시절부터 한 계단씩 밟아온 만큼 초심으로 돌아가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스스로 되뇌고 있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 점을 인지하고 더욱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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