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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사주산책] 가수 이박사, 관광가이드서 日 톱가수로

입력 : 2009-07-02 09:01:54 수정 : 2009-07-02 09: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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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정신과 열정… 괴팍한 ‘대중음악 천재’
테크노와 뽕짝이 합성된 노래로 큰 인기를 얻은 ‘신바람’ 이박사.
‘신바람 이박사’는 한때 폭풍처럼 인기를 몰고 다녔다. 통속적인 멜로디와 가사에 ‘테크노’와 ‘뽕짝’이 합성된 초스피드의 리듬은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관광버스를 순식간에 무도장으로 둔갑시키는 괴력의 중독성에 N세대들도 열광했다. ‘좋아, 좋아∼’나 같은 뜻의 일본말로 ‘요시’ 등의 추임새는 물론 애드리브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랩’의 성격까지 띠는 속칭 짬뽕, ‘락뽕’이 신바람을 탄 것이다. 온몸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 별난 음악은 거의 중독성 반응을 일으켰고, 어떤 무대든 거리낌 없는 그의 카리스마는 특별했다.

필자가 이박사의 팔자(八字)를 세워보니 ‘갑오년(甲午年), 정묘월(丁卯月), 임신일(壬申日), 계묘시(癸卯時)’생이다. 묘신(卯申) 귀문(鬼門)이 겹치고, 이를 오묘파(午卯破)의 현침(懸針)으로 자극하는 구성이라 별스럽지 않을 수 없다. 기발하고 부지런을 떠는 사람이다. 과거에 비하면 초라한 근황이지만 도전정신과 열정은 현해탄을 건넜던 10년 전과 다름이 없어 보였다.

끊임없이 샘솟는 영감을 행동으로 옮기는 식재격(食財格)의 사주(四柱)는 괴팍한 천재의 꼴을 갖추었다. 일지(日支) 장생(長生)으로 내조하고 후원하는 배우자와 인연을 맺게 된다. 무명의 어려운 시절 첫 번째 결혼은 실패하고 말았지만, 13년 전 재혼한 지금의 부인은 그의 활동을 적극 지지한다.

최근에는 스스로 루저이며 ‘싼티’임을 내세우는 예능인들이 뜨는 추세다. 그러나 10년 전만 해도 대중의 정서는 저급하고 통속적인 코드를 질타하고 거부했다. 이때 천연의 ‘싼티’ 이미지로 도배된 키 1m60cm, 몸무게 45㎏의 왜소한 체구를 지닌 40대 후반의 아저씨 가수가 등장하며 ‘이박사 신드롬’을 일으켰다. 열풍은 일본에서 먼저 일었고, 한국으로 역수입됐다. 

김상회 원장이 이박사와 강남의 연습실에서 운세상담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일본 엔카의 느릿한 음율에만 익숙했던 일본인들에게 그의 음악은 경이로운 것이었다. 도쿄 부도칸(武道館)에서 단독 공연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린 그는 조용필 이후 일본에서 한국어 가사로 가장 많은 음반판매량을 기록한 가수가 됐다. 부도칸은 일본 공연의 성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이곳에서의 공연은 일본에서 정상급 아티스트로 인정받았다는 물증이다.

한류 열풍이 일기 전 부도칸의 무대에 선 국내가수는 조용필과 이박사 두 사람에 불과했다. 1996년 병자년(丙子年)에 최초로 부도칸 만석 기록을 세운 한국 가수가 바로 그다. 놀라운 일 아닌가? 이때는 팔자의 장생(長生)과 제왕(帝旺), 포태물상(胞胎物象)의 합작(合作)이 지어진 시점이다.

그는 가수 데뷔 전 10년간 관광버스 가이드로 일했다. 독특한 음색과 노래 중간에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추임새로 업계에서는 꽤 인기 있는 가이드였다. 그러던 중 1989년에 관광버스 가이드로 관광객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시작한 그의 독특한 노래를 3시간 만에 녹음해 낸 ‘신바람 이박사 1집’ 테이프가 리어카 시장을 통해서만 석 달 만에 40만개가 팔리는 히트를 쳤다. 하지만 언더그라운드에 머무는 것으로 그쳤다.

이박사가 언더에서 오버 그라운드로 올라선 것은 1995년 을해년(乙亥年)에 굴지의 레이블인 일본의 소니사에 스카우트돼 일본에서 음반을 내면서부터였다. 이 해가 바로 신미운(辛未運)의 삼합운(三合運)으로 반안(攀鞍)에 오르는 시기다. 다시 말해 가진 재능을 인정받아 스타덤에 오르는 강한 운기(運氣)가 발하는 시점이라는 얘기다.

강남의 연습실에서 만난 이박사의 모습은 예전과 다름없었다. 마른 체격에 노란 머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눠보면 소박하고, 순수한 사람이란 느낌을 받게 된다. 과거의 화려한 무대와는 전혀 딴판인 누군가의 칠순잔치에서도 그는 열정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즐거워한다.

근래에 팍팍한 삶에 지친 서민들을 응원하고 위로하는 의미로 ‘야야야’라는 신곡을 발표하고 앨범을 냈다. 이번에는 장르가 ‘슬로우록’ 위주다. 의외라 했더니 자신의 원래 음악 장르가 ‘만요(漫謠)’라 했다. 필자가 만요가 무슨 뜻인지 생소해서 한자로 어떻게 되는지 질문하자 ‘한자로는 잘 모르겠다’고 답변하는 모습에서 순진함이 배어나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만요란 민요와 트로트가 배합된 음악이라고 했다. 직접 들어보니 특유의 스피디한 이박사 고유의 가락에서 약간 벗어난 듯싶어 아쉬운 감이 들었지만 실망할 정도는 아니다.

현재의 대운(大運)은 계유운(癸酉運)으로 전성기를 구가할만한 강한 운기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의식(衣食)에는 구애됨이 없고 자족할만한 삶을 영위하기엔 모자람이 없다. 이박사의 오랜 공백은 하찮은 사고로부터 비롯된다. 십년 전에 큰 집을 사서 이사하자마자 대문의 담벼락에서 뛰어내리다 그만 발목을 다치는 사고를 계기로 의지와 달리 오랜 휴식을 갖게 된 것이다. 팔자의 현침(懸針)이 심하게 찌르고 찔리는 물상(物象)을 지은 까닭이다.

2011년 신묘년(辛卯年)에 일종의 사고수가 있으므로 이때만 무탈하게 잘 넘긴다면 향후로는 큰 애로를 겪는 일이 없을 것 같다.

글= 김상회 김상회역술원장·한국역술인협회 중앙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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