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씬에서 ‘음원 역주행’은 늘 관심을 끄는 이슈다. 관련 언론미디어에서 늘 대서특필되는, 보도 가치 높은 사건이기도 하다. 추석 연휴와 함께 올해 3/4분기까지 종료된 현시점 K팝 씬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큰 화제를 모은 2026년 역주행 사례론 역시 걸그룹 리센느 역주행이 꼽히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올해 음원 역주행은 사실 한두 번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당장 써클차트 기준 올해 상반기 디지털 차트 1위를 차지한 솔로가수 한로로의 ‘사랑하게 될거야’부터가 2023년 곡이고, 역주행 곡이다. 지난해 10월 즈음 역주행이 처음 포착돼 올해 1월 멜론 실시간 차트 1위를 기록했다. 그 밖에도 많다. 새해 벽두엔 솔로가수 카더가든의 2021년 미니앨범 2집 ‘부재’ 수록곡 ‘그대 작은 나의 세상이 되어’가 발매 5년 만에 역주행을 일으켜 멜론 톱100과 일간, 주간 차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TVING 연애 리얼리티 시리즈 ‘환승연애 4’에 삽입되며 화제를 부른 탓이다.
비슷한 시기 힙합그룹 에픽하이와 솔로가수 임현정도 역주행을 기록했다. 에픽하이는 2007년 발표한 정규 4집 수록곡 ‘Love Love Love’, 임현정은 2003년 정규 4집에 실린 ‘사랑은 봄비처럼...이별은 겨울비처럼’을 통해서다. 에픽하이 곡은 에픽하이가 광고모델로 활동하는 상품의 광고음악으로 쓰인 점과 에픽하이 유튜브 에픽카세의 인기 등 다양한 요인들이 결합한 결과이고, 임현정 곡은 연초 26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만약에 우리’ 삽입곡으로 쓰이며 다시 주목받은 경우다.
벚꽃 철이 되자 보이그룹 엑소 멤버 도경수의 2년 전 곡 ‘Popcorn’이 이른바 ‘결혼식 신랑 행진곡’으로 입소문을 타며 예식 영상 중심으로 청취량이 급증, 멜론 일간차트 12위까지 치솟았다. 그 뒤 ‘리센느 신드롬’이 밀어닥쳤고, 곧 솔로가수 최유리의 2023년 곡 ‘생각을 멈추다 보면’도 유튜브 예능 ‘들어봐! 유리의 숲’에서 보이그룹 갓세븐 멤버 진영과 함께 부른 버전이 큰 관심을 모아 멜론 일간차트 진입에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은 해체한 지 8년 지난 걸그룹 베스티의 2013년 곡 ‘연애의 조건’이 신예 걸그룹 하츠투하츠와 맞물린 숏폼 영상으로 화제를 모으며 역주행을 일으키는 중. 이 밖에 보이그룹 SS501의 ‘내 머리가 나빠서’, 걸그룹 있지의 ‘THAT’S A NO NO’ 등도 올해의 역주행 사례들로 꼽힌다.
몇 가지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먼저 ‘올해의 역주행=리센느’처럼 여겨지게 된 건 엄밀히 역주행 그 자체보다 리센느란 무명 팀을 둘러싼 언더독 이슈가 결합한 탓으로 여겨진다. 과거 브레이브걸스 등과 같은 복합 스탠스에서 벌어진 일이니 언론미디어 보도 가치나 대중 관심도도 증폭된 경우. 그러나 위 다른 사례들에 보듯, 역주행은 ‘이미 널리 알려진’ 아티스트들에게서 주로 벌어진다. 그쪽이 더 역주행에 유리한 조건들을 지녔기 때문이다. 역주행 바탕이 돼줄 인지도 베이스부터 관련 영상 물량 및 이벤트성 커버 등 다양한 차원이 개입된다.
한편 멀티미디어 환경에서 영향 주고받기도 뚜렷이 관찰된다. 위 사례들에서도 인기 영화 삽입곡이어서, 인기 예능프로그램 삽입곡이어서, 광고음악으로 쓰여서, 유튜브 콘텐츠로서 화제를 모아서 등등 역주행 요인들이 거론된다.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1992년 MBC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 삽입돼 대단한 히트를 기록한 김국환의 ‘타타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사연이다. 지금이 그 당시와 다른 건 그동안 유튜브 등 온라인 기반 뉴미디어가 추가돼 역주행을 가능케 할 출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단 점이다. 그만큼 기회도 더 많다.
그러나 그런 미디어 환경 변화를 고려하더라도 근래, 특히 올해는 음원 역주행이 상당히 잦다. 이제 1~2개월마다 한 차례씩 유의미한 역주행이 포착되는 정도니 보도 가치조차 떨어져 간다. 일상다반사에 가까워지고 있단 뜻이다. 왤까. 그런 여유 공간이 나올 만큼 시장을 거머쥔 팀들 컴백 및 데뷔 파괴력이 감쇄하는 추세란 해석도 가능해진다. 특히 초반 파괴력을 담보해 주던 대형기획사 아이돌 팀들 화제성이 점차 떨어져 가는 분위기란 점에 방점이 찍힌다.
한동안 ‘걸그룹 전성시대’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K팝 아이돌 걸그룹들의 음원 차트 진격이 대단한 화제를 모았지만, 앞선 써클차트 2026년 상반기 디지털 차트 순위만 해도 10위 내 아이돌 걸그룹 및 그 멤버로 꼽힐 만한 팀은 4팀 정도, 그나마도 장악력은 대단치 않았다. 특히 올해는 대형기획사 데뷔 걸그룹들까지 이렇다 할 화제를 모으지 못했다. 하이브 레이블 ABD의 튜이드, JYP엔터테인먼트 레이블 이닛엔터테인먼트의 아워벌스데이 둘 다 데뷔 타이틀 곡을 멜론 톱100 차트에 진입시키지 못했다.
‘아이돌 피로감’을 제시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코로나19 팬데믹 특수’가 관성적인 부분까지 모조리 휘발된 시점이란 해석이 더 자연스럽다. 사실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아이돌과 음원 차트 관계는 팬데믹 당시만큼 밀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팬데믹이 닥치며 모든 것이 바뀌었다. 옥외 활동이 극단적으로 제한된 팬데믹 환경에서 대중의 미디어 이용시간과 온라인 체류시간은 비약적으로 급증했고, 곧 모든 서브컬쳐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걸그룹 전성시대’는 엄밀히 ‘서브컬쳐 전성시대’의 하부 갈래 현상이었던 셈이다.
일단 아이돌은 각종 자체 콘텐츠를 비롯해 개중 가장 많은 영상 콘텐츠를 무한정 제공해 주던 특수 상품이었고, 그중에서도 걸그룹은 애초 ‘대중성의 여돌’이란 말까지 기존에 성립됐을 정도로 대중적 어필이 쉽고 무난한 품목이었다. 진입 장벽이 애초 낮았다. 그 기세를 몰아 걸그룹을 위시로 한 아이돌들이 음원 차트까지 점령한 상황이 이변에 가까웠을 뿐, 오히려 지금은 ‘팬데믹 이전의 질서’로 되돌아가는 움직임일 수 있단 것.
물론 K팝 아이돌 팀들처럼 블록버스터식으로 발매 초반 빅뱅을 터뜨리는 쪽이 특이한 방식은 아니다. 미국 등 해외 유명 아티스트들도 많건 적건 비슷하게 엄청난 사전 홍보 전략 기반으로 차트를 초반 점령해 위상을 보전한다. 다만 그 정도 대형 스타덤에 오르기 전까진 이제 천천히 인지도와 신뢰를 쌓는 방식만이 남게 된 셈이다. 팬데믹이 낳은 기적의 현상적 데뷔, 뉴진스 같은 사례는 이제 더 나오기 힘들단 뜻도 된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은, 지금처럼 천천히 인지도와 신뢰를 쌓아온 아티스트들 음원이 이런저런 계기를 업고서 역주행을 일으키며 채워지게 될 테다. 새 질서의 시작, 또는 옛 질서의 귀환 시점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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