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

검색

[레전드의 인생 후반전] 42년 교단 내려와도 ‘유도’ 외길사랑... 조용철 대한유도회장 “이 길은 내 운명”

입력 : 2026-08-27 09:19:53 수정 : 2026-08-27 14:12:15

인쇄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강단을 떠난 뒤에도 조용철 대한유도회장의 시선은 한국 유도의 토대를 세우는 일에 향한다. 조 회장이 대한유도회 깃발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강단을 떠난 뒤에도 조용철 대한유도회장의 시선은 한국 유도의 토대를 세우는 일에 향한다. 조 회장이 대한유도회 깃발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흘린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습니다.”

 

‘헤비급은 안 된다.’ 한때 한국 스포츠 투기 종목에서 정설처럼 통하던 말이다. 이 커다란 벽을 깨부수기 위해 수없이 부딪히고, 넘어졌다. 인고의 시간을 넘어 올림픽 2개 대회 연속 시상대에 섰고, 세계선수권에서는 당대 최강자를 넘어 정상에 오르며 한국 헤비급의 새 역사를 썼다.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편견을 깨트린 남자, 조용철 대한유도회장이다.

 

극적이었던 삶, 비결은 그다지 거창하지 않다. 결국 인내와 노력이다. 선수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미련이 남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 회장은 “평생을 돌아봐도 아쉬운 건 전혀 없다. 항상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조 회장이 1984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유도 헤비급(+95㎏)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한국 헤비급 사상 최초 올림픽 메달이라는 이정표를 세운 지도 벌써 40년이 훌쩍 지났다. 유도 매트는 떠났지만, 여전히 유도인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용인대 교수로 정년퇴임하며 42년에 걸친 교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마침표는 없다. 대한유도회장 2기 임기(2025년 재선)를 이어가는 행정가로서 다음 길을 그리고 있다. 조 회장은 스스로를 “유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이라며 “운명과도 같다”고 눈빛을 번뜩였다.

 

조용철 대한유도회장.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조용철 대한유도회장.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최중량급 벽을 넘다

 

충남 천안서 자란 그는 장사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 씨름판을 먼저 밟았다. 그러다 유도와 인연을 맺었다. 흰 도복을 입고 상대를 메치는 모습은 어린 눈에도 멋있어 보였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운동이었지만, 이내 깊이 빠져들었다. 그는 “불같은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어릴 땐 지는 걸 못 참았는데, 유도를 하면서 많이 누그러졌다”고 돌아봤다.

 

선수 생활이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일본 전지훈련 중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의사는 선수 생활이 어렵다고 했고, 주변에서도 만류했다. 하지만 매트를 떠날 수 없었다. 조 회장은 “유도를 그만큼 사랑했다.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떠올렸다.

 

회복을 위해 운동을 쉬는 사이 체중이 불었고, 자연스럽게 더 무거운 체급에서 길을 찾아야 했다. 월장한 후 맞붙은 선수들은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일 만큼 장신인 데다 체격까지 두터운 선수들이 대다수였다. 당연히 정면으로 맞부딪히면 승산이 떨어졌다.

 

조 회장은 “그 당시 중량급 선수들은 묵직하게 버티다가 한 번씩 기술을 거는 경우가 잦았다. 반대로 끊임없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조용철 대한유도회장.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조용철 대한유도회장.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결과로 증명했다. 조 회장은 1984 LA 올림픽 남자 95㎏ 이상급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 최중량급 메달(3위)을 따냈고, 이듬해 서울 세계선수권에선 당대 최강자 사이토 히토시(일본)를 꺾고 한국인 최초로 남자 최중량급 정상에 섰다.

 

화려한 성과가 고통까지 지워준 것은 아니었다. 무릎 통증은 선수 생활 내내 따라붙었고, 재발한 부상이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도 그를 괴롭혔다. 물러서지 않았다. 조 회장은 “잠을 잘 때조차 끙끙 앓았던 기억이 난다. 가족들이 보기 힘들어했을 정도”라면서도 “경기장 위에서 할 수 있는 건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뿐이었다. 여기서 멈추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견뎠다”고 털어놨다. 이 집념은 서울 올림픽 동메달로 이어졌고, 그는 두 대회 연속 시상대에 섰다.

 

◆사람을 키우는 운동 ‘유도’

 

현역 생활을 마친 뒤엔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국가대표 코치와 대학 강단을 거치며 수많은 후배를 만났다. 가장 큰 보람 역시 제자들이 성장하는 순간이었다. 조 회장은 여자 유도 무대를 호령했던 김미정, 문지윤 등을 떠올렸다. 선수들이 기술을 몸에 익힐 때까지 직접 받아주며 훈련을 도왔고, 결실의 순간도 가까이서 지켜봤다.

 

선수로 정상에 섰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그는 “선수 때보다 더 많이 메쳐졌던 것 같다. 그렇게 노력한 선수들이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니 정말 기뻤다”며 “내가 금메달을 딸 때보다 더 기뻤던 것 같다”고 웃었다.

 

기술만 잘 가르친다고 좋은 선수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터. 조 회장이 긴 시간 후배들을 보며 가장 중요하게 여긴 기준은 태도였다. 훌륭한 선수가 되기 전에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믿음이다. 그는 “운동을 잘한다고 해서 인성이 안 되면 안 된다. 그건 운동 잘하는 기계일 뿐”이라며 “항상 인성이 먼저 돼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힘줘 말했다.

 

조용철 대한유도회장.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조용철 대한유도회장.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유도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도 결국 ‘사람을 키우는 운동’에 닿아 있다. 유도는 상대를 꺾는 종목이기 전에 예의를 배우는 운동이다. 시작도, 끝도 인사다. 조 회장은 “처음 인사할 때는 상대에게 ‘잘 부탁합니다’라는 뜻이고, 끝나고 나서는 ‘잘 받아줘서 감사합니다’라는 의미”라며 “유도는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운동”이라고 했다.

 

선수가 끝내 정상에 서지 못하더라도, 훈련을 통해 몸에 밴 성실함과 책임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터. 조 회장은 이 대목에 의미를 뒀다. 그는 “운동을 하며 힘든 시간을 견뎌낸 선수들은 그 과정에서 얻은 마음가짐으로 어디서든 자기 몫을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수장의 무거운 어깨

 

현장의 더 세밀한 곳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위치다. 조 회장이 행정가로서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한국 유도가 지속적으로 선수를 키워낼 수 있는 구조다. 반가운 변화가 감지된다. 생활체육 유도 인구가 늘고, 대회 참가자도 많아지는 흐름이다. 저변이 넓어져야 재능 있는 선수가 나오고, 그중 일부가 전문체육으로 연결되는 선순환도 가능해진다.

 

물론 큰 고민은 다른 곳에 있다. 조 회장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학교 체육의 위축이다. 엘리트 선수들이 충분히 훈련하고 실전 경험을 쌓을 시간이 줄어들면, 생활체육에서 발견한 재능도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 유소년 경기까지 빠짐없이 챙겨본다는 그는 “현장에서 자기 기량을 키우는 시간도 학업의 일종으로 봐줘야 한다”며 “이 시간이 막히면 선수 육성이 어렵다”고 말했다.

 

학습권을 가볍게 보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선수의 배움이 교실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훈련과 대회 출전도 몸으로 기량을 익히는 중요한 과정이다. 조 회장은 학생 선수를 획일적인 기준으로 바라보기보다 종목의 특성과 성장 단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대한체육회 등 상급 단체와도 현실적인 접점을 찾기 위해 계속 소통할 계획이다.

 

조용철 대한유도회장.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조용철 대한유도회장.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AG 대표팀을 향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개최지가 일본이라는 부담은 있지만, 조 회장은 선수들이 준비한 만큼 흔들림 없이 제 기량을 펼치길 바란다. 그는 “후배들이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처럼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는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했다.

 

특히 기대를 거는 지점은 그가 과거 길을 열었던 중량급이다. 여자 78㎏ 이상급 이현지와 남자 100㎏ 이상급 김민종이 이번 AG 출전권을 따낸 바 있다. 나아가 조 회장은 이들과 선발전서 경쟁했던 김하윤과 이승엽까지 콕 집어 언급했다. 당장의 대표 선수만이 아니라, 같은 체급 안에서 서로를 밀어 올리는 구도가 한국 유도의 경쟁력을 키운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라이벌의 존재가 서로를 자극한다. 두터운 경쟁 속에서 함께 올라가야 높은 무대에서도 버틸 힘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팬들에게는 믿음을 부탁했다. 대한유도회가 부족한 점을 돌아보고, 더 공정하고 투명한 협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지켜봐 달라는 뜻이다. 조 회장은 “격려해 주고 힘을 주시면 더 열심히 해나갈 수 있다. 한국이 세계 유도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종원 기자 johncorners@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