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오브 라이프, 클로즈유어아이즈를 잇달아 론칭한 이해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이제 버추얼 그룹까지 품었다. 비록 무대 위에서 빛을 보진 못했지만 10년 연습생 경험을 자양분 삼아 제작자로 성공 신화를 쓰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최근 K-팝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직무다. 뮤직비디오, 앨범 아트, 무대 연출과 세계관 등을 총망라하는 시각적 정체성을 담당해 아이돌그룹의 음악을 하나의 브랜드이자 문화적 서사로 만들어낸다. 이러한 면에서 이해인은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키스 오브 라이프의 초창기 디렉팅을 맡아 중소의 기적을 보여줬고,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을 맡아 클로즈유어아이즈의 탄생을 함께한 데 이어 비주얼 콘셉트 및 브랜딩을 총괄하고 있다.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와 만난 이해인은 25일 “키스 오브 라이프는 멤버도 스태프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출발했다”고 고백했다. 걸그룹 청춘 공식을 깨고 힙합과 알앤비 중심의 팀을 꾸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함께 숙소 생활을 한 나띠를 주축으로 확실한 개성을 갖춘 멤버들을 모았다. 멤버 전원 솔로 프로젝트라는 파격적 기획을 내세운 키스 오브 라이프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반면 클로즈유어아이즈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시작점이었다. 멤버의 구성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누구에게도 어울릴 만한 기획을 구상했다. 시청자의 관심이 신인 그룹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속도전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이들의 성공을 발판 삼아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팅 및 아티스트 브랜딩 전문 레이블인 AMA의 CCO(Chief Commercial Officer)를 맡아 버추얼 걸그룹 오위스(OWIS)를 론칭한 것. 아이돌을 꿈꾸던 소녀는 어느새 사업가가 되어 후배들을 육성하고 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이해인은 17살에 홀로 서울에 올라와 27살까지 연습생 생활을 했다. 오랜 시간, 여러 회사를 거쳤지만 데뷔의 길은 멀기만 했다. 엠넷 ‘프로듀스 101’과 ‘아이돌학교’에 출연했지만 데뷔는 번번이 불발됐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들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으로 돌아왔다. 수없이 많은 월말평가를 거치며 자신만의 답을 내렸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시간 속에 생각과 고민들을 일기장에 정리하면서 스스로의 가치관을 세웠다.
인간관계에서 얻은 배움도 적지 않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만난 인연들만 100여 명이 넘는다. 여러 엔터사를 거치며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도 키워냈다. 각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알게 됐고, 실력뿐 아니라 서사를 통해 팬과의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도 몸소 터득했다.
크고 작은 시련을 겪으며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웠다. 궁금한 것은 물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도 한몫했다. 그는 “좋은 어른들을 만난 덕에 새로운 방법을 많이 알게 됐다. 마지막 연습생을 플레디스에서 했는데, 유독 한성수 대표님께 질문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며 “대화가 중요하다. 물어보면 알려주는 어른들이 많이 있으니 대화 속에서 배움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지나고 보니 모든 순간이 의미 있었다. 이해인은 “이상한 사람도 만나봤지만, 그만큼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인생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지난 인연들과 오랜 관계를 쌓아가다 보니 20대에 가장 중요한 건 ‘내 편’을 만드는 것이었다”며 “100세 시대이지 않나. 좋은 건 가지고 가면서 지난 일은 털어버리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업계의 선배이자 인생 선배로 아이돌을 꿈꾸는 세대를 향한 한 마디를 부탁하자 그는 “작은 것에 예민할 필요가 없다. 평가 한 마디에 불안감을 느끼기 보단 본질을 파고 들어야 한다”고 했다. 30대에 접어들며 ‘꼼수는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남이 잘 된다고 부러워할 필요도, 내가 안 된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다. 잘 하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나를 발전시키고자 하면 언젠가 빛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10여년 간 달려온 가수의 꿈을 접고 제작자의 길을 택했다. 초반엔 무대를 포기할 수 없어 슬픔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마음의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 게 아니다 보니 그땐 지금의 일이 얼마나 멋진지 몰랐다”며 “한 번 사는 인생이니 다양한 일을 해보는 게 좋다. 바쁜 일정에 잠을 못 자도 일하는 게 즐겁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제 사업가의 입장에서 어떤 아이템이 조직에 매출을 가져다줄 지 고민하고 있다. 연습생들의 인생을 책임질 제작자로서 결정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그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나를 믿고 시작해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다”며 “직원들이 걱정없이 오래 다닐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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