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아무리 시계바늘을 당겨도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외면하면 경기는 빨라질 수 없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올 시즌 스피드업 기조를 더 강화했지만, 개막 한 달을 지난 프로야구의 체감 속도는 기대만큼 빨라지지 않았다. 시간을 줄이려는 제도 위에, 마운드의 제구 난조가 겹쳤다.
피치클락은 정식 도입 2년 차인 올해부터 한층 타이트해졌다. KBO는 주자 없을 때 20초에서 18초, 주자가 있을 때 25초에서 23초로 줄였다. 마운드 방문 시간 축소, 타자 준비 규정 강화 등 세부 장치도 손질했다.
불필요한 지연을 걷어내겠다는 의지는 분명했다. 그러나 4월까지 현시점 정규이닝 평균 경기시간은 3시간4분, 연장 포함 평균은 3시간8분이다. 이 흐름이라면 지난해(3시간2분)에 이어 올해도 ‘3시간’의 벽을 깨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팬들이 느끼는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원인은 마운드 위에 있다. 피치클락은 경기 곳곳에 숨겨진 쓸데없는 자투리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스트라이크를 대신 던져주지는 못한다.
올 시즌 137경기에서 볼넷 1117개가 나왔다. 지난해 4월26일과 2024년 4월25일은 모두 138경기 시점이었는데, 볼넷은 각각 1059개, 1037개였다. 올해는 1경기를 덜 치르고도 최근 2년 비슷한 시점보다 각각 58개, 80개 많다.
볼넷은 곧 경기 흐름과 직결된다. 투수가 빠르게 승부하지 못하면 볼카운트부터 시작해 주자가 쌓인다. 벤치는 마운드를 한 번 더 살피게 되고, 불펜 가동도 빨라진다. 투수 교체가 잦아질수록 경기 리듬도 끊어지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화다. 한화 투수진의 볼넷 허용은 144개로 10개 구단 중 가장 많다. 경기시간도 길다. 경기당 3시간16분으로 리그 최장이다. 비단 ‘평균’ 수치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1일에는 대전 홈에서 KT와 올 시즌 리그 최장 기록인 4시간19분 혈전을 벌이기도 했다.
다른 팀들 역시 제구 난조와 긴 승부로 경기를 늘어뜨리는 장면들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현장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야구계 관계자는 “타자들의 비약적인 발전 속도를 투수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크다. 심지어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BS) 적응 속도에서도 차이가 난다는 평가가 있다. 초창기만 해도 투수들이 앞서가는 듯했지만, 이젠 타자들의 활용 능력이 더 좋다는 것. 타자들은 존의 특성을 빠르게 해석해 적극적으로 수싸움을 끌어가는 반면, 투수들은 존 안에서 확실하게 승부하지 못해 불리한 카운트에 몰리는 장면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마운드가 타자와의 힘겨루기에서 주도권을 잃는 장면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시계는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공은 자꾸 먼 길을 돌아간다. 투수들이 스트라이크존 안에서 더 적극적으로 승부해야 경기 흐름도 살아날 터.
한국 투수진 경쟁력과도 맞닿아 있다. 국제대회서 비슷한 고민을 드러났다. 한국은 올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17년 만에 8강에 올랐지만, 도미니카공화국과의 8강전에서 0-10 콜드게임 완패를 떠안아야만 했다.
대회 5경기 동안 피홈런 10개와 볼넷 22개를 내줬고, 실점은 29점에 달했다. 직구 평균 시속도 146.3㎞로 참가 20개국 중 18위에 그쳤다. 류지현 대표팀 감독이 “전체적으로 프로 투수 쪽의 육성이나 이런 부분들을 한 번쯤은 생각해야 되는 시기”라고 말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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