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조직기증. 어쩐지 두렵고 어려운 단어의 조합이다. 하지만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선입견이 깨졌다. 긴장하고 있는 기자에게 KODA 대외협력팀은 “기증은 두려운 일이 아니라, 생명이 생명에게 이어지는 아름다운 연결”이라고 설명했다.
기증 희망 절차는 의외로 간결했다. 태블릿 PC를 통해 본인 인증을 거친 뒤 뇌사 시 장기기증, 인체조직기증 항목에 체크를 마치는 데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가족의 동의가 최종 관문’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내가 남긴 이 작은 기록이 훗날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슬픔 대신 고인의 마지막 뜻을 이해하는 위로가 될 것임을 깨달았다.
등록을 마치고 나오니 어쩐지 미소가 나고 마음도 가벼워진다.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을 때 내 육체가 누군가에겐 내일이 될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무겁게만 느껴졌던 단어들이 이제는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KODA 소속 대외협력팀 김윤식 과장은 국내 기증 현장의 최전선을 지키는 인물이다. 김 과장은 기증이 단순한 의료 행위를 넘어 한 인간이 세상에 남기는 가장 숭고한 약속이라고 말한다. 이식 대기자 5만여명, 1년에 3000명 이상이 이식을 기다리다 숨을 거두는 절박한 현실 속에서 기증 프로세스의 투명성과 가족의 동의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 전했다.
◆죽음과 삶의 연결…8시간의 긴박한 여정
-일반인들에게 ‘장기기증 절차’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환자가 뇌사 추정 상태가 된 순간부터 이식까지 어떤 일들이 벌어지나?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서구는 의료진이 뇌사 판정을 통해 사망을 이야기 하고, 우리나라는 뇌사장기기증자만 뇌사 판정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뇌사추정자 통보제’가 중요하다. 병원에서 뇌사가 의심되는 환자가 발생하면 법적으로 우리 기증원(KODA)에 통보하게 되어 있다. 한 해 약 2000건 이상의 연락이 온다.
통보가 오면 전국 5개 권역(서울·대전·광주·대구·부산)에서 대기 중인 80여 명의 코디네이터가 즉시 현장으로 출동한다. 가족들에게 뇌사가 무엇인지, 기증이 어떤 의미인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가족이 기증에 동의하면 전문의들이 참여하는 ‘뇌사판정위원회’가 열린다. 여기서 최종 판정이 나야 비로소 사망진단서가 발행되고 기증 수술이 시작된다. 이식까지 보통 8~10시간이 걸리는데, 이 모든 과정이 하루 안에 긴박하지만 정교하게 진행된다.”
-기증원(KODA)과 보건복지부, 그리고 병원의 역할이 각각 다르다고 들었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하나뿐인 존엄한 가치다. 어느 한 기관이 독점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철저히 분산 시스템을 택한다. 우리 기증원(KODA)은 ‘기증자’를 발굴하고 관리하며 가족을 예우하는 업무에 집중한다. 이 장기를 누구에게 줄지(이식 대상자 선정)는 보건복지부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에서 공정한 과정에 따라 결정한다. 실제 수술은 의료기관이 맡는다. 기증은 KODA, 선정은 복지부, 이식은 병원이 나누어 맡는 구조가 대한민국 기증 시스템의 신뢰도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희망자 모두 기증 가능한 것 아냐…이유는?
-현장에서 유가족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무엇인가?
“정말 가슴 아픈 질문이다. ‘정말 다시 깨어날 가능성은 없느냐’는 말이다. 심장이 뛰고 몸이 따뜻하니… 당연히 가족 눈에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뇌사’와 ‘식물인간’의 차이를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식물인간은 뇌의 일부가 살아있어 자가호흡이 가능하고 회복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뇌사는 다르다. 회복이 불가능하며, 인공호흡기를 달아도 결국 수주 이내에 모든 장기가 멈춰 사망에 이른다. 기증은 원한다고 모두 되는 것이 아니다. 기증자가 생전, 이 ‘불가피한 이별(뇌사)’ 앞에서 다른 생명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는 숭고한 결단이다.”
-고령이거나 지병이 있는 경우 기증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지 않다. 기증 희망 등록은 건강 상태와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약속이다. 실제 기증 시점이 오면 의료진이 수혜자의 입장에서 적합성을 엄격히 따진다. 암 환자였더라도 완치 후 5년이 지났다면 가능할 수 있고, 70대 기증자의 장기는 비슷한 연령대의 고령 대기자에게 이식될 수 있다. 나이보다 중요한 것은 장기의 기능적 상태다. 또한 청소년 기증자의 장기는 법적으로 동일 연령대 청소년에게 우선 연결되어 수명 연장의 가능성을 높인다.”
◆남겨진 이들을 위한 예우
-기증 후 고인 예우와 비용은 어떻게 되나?
“기증은 숭고한 나눔이기에 검사, 수술 등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 수술은 보통 8~10시간 정도 소요되며, 하루 안에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어 장례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시신을 정중히 예우해 인도한다.”
-본인이 ‘희망 등록’을 했더라도 가족이 반대하면 기증을 못 한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사실이다. 희망 등록은 법적 강제성이 없는 본인의 의사 표시다. 최종 결정권은 선순위 유가족에게 있다. 그래서 평소 가족들에게 자신의 뜻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환자가 생전에 희망 등록을 해둔 경우, 유족들은 ‘이것이 고인의 마지막 유지’라고 생각해 훨씬 편안하고 자부심 있게 기증에 동의하신다. 반면 정보가 전혀 없던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사고 앞에 당황하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증 과정에서 대외협력팀과 코디네이터는 유족의 슬픔을 어떻게 보듬나?
“전국에서 활동 중이신 코디네이터 분들은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경력을 가진 간호사 출신 전문가들이다. 하지만 이들도 사람인지라, 특히 어린 자녀를 보내야 하는 현장에서는 함께 고통을 느낀다. 우리 기증원에는 10여 명의 사회복지사로 구성된 ‘가족관리팀’이 따로 있다. 장례 행정 지원은 물론,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유족들을 위해 한국심리학회와 연계한 전문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증 후에도 자조 모임을 열고 기념 액자를 전달하며, 그분들이 ‘생명 나눔 가족’으로서 자부심을 잃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한다.”
◆장기(Organ)를 넘어 조직(Tissue)으로, 100명을 살리는 나눔
-장기기증 외에 ‘인체조직기증’은 무엇이 다른가?
“장기기증은 뇌사 시에만 가능하지만, 인체조직기증은 심장이 멈춘 사후에도 가능하다. 뼈, 피부, 혈관, 인대 등을 기증하는 것인데, 화상 환자나 사고로 신체 일부를 잃은 분들의 기능적 장애를 개선해준다. 한 명의 기증자가 최대 100명까지 도울 수 있어 파급력이 엄청나다. 다만 인식의 문턱이 높다. 장기기증은 ‘생명을 살린다’는 직관적 이미지가 있지만, 조직기증은 아직 생소해 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다시 걷고, 다시 일상을 찾는 기적을 선물하는 일이다.”
-일각에서는 ‘유명인이면 장기를 빨리 받는 것 아니냐’는 불신도 존재한다.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순위 산정은 복지부 산하 기관에서 전산화된 원칙에 따라 이뤄지고, 적합성 검사는 기증원에서 별도로 수행한다. 돈이나 권력으로 이 순위를 뒤바꿀 수 있는 틈이 없다. 모든 수혜자는 국가 병원 시스템에 등록되어 면역억제제를 처방받아야 하므로, 소위 말하는 ‘장기 밀매’ 같은 괴담은 현대 의료 체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영화적 상상일 뿐이다.”
◆옵트-아웃(Opt-out)과 선한 영향력
-기자는 김경식 홍보대사와의 인터뷰로 옵트-아웃을 알게 됐다. 기사를 읽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 제도를 처음 알게 된 이들도 많을 것이다.
“스페인 같은 기증 선진국은 인구 100만 명당 기증자가 40명이 넘는다. 우리나라는 8~9명 수준이다. 제도의 차이도 크다. 프랑스나 영국, 스페인은 모든 국민을 기증자로 간주하되 원치 않는 사람만 거부 의사를 밝히는 ‘옵트-아웃’ 제도를 시행한다. 우리나라는 본인이 직접 신청해야 하는 ‘옵트-인’ 방식이다. 하지만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다. 과거 김수환 추기경님의 안구 기증이 문화적 변곡점이 됐듯, 기증을 무서운 희생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나눔으로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최근 드라마나 연예인들의 참여로 인식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마지막으로 기증을 망설이는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장기기증 희망 등록은 언제든 취소할 수 있는 아름다운 약속이다. 평소 건강할 때 홈페이지나 우편을 통해 3분만 투자해 뜻을 남겨주시길 바란다. 기증은 두려운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명이 다른 이에게 이어지는 아름다운 연결이다.”
장기기증 희망 등록 방법
온라인: KODA 또는 KONOS 홈페이지(본인 인증 후 3분 내 완료)
방문: 전국 보건소, 의료기관, 운전면허시험장 등 300여 곳
전화: 1544-0606(신청서 우편 수령 후 작성 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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