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부동산 시장의 요동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흥미롭게도 대중이 흔히 생각하는 정치 성향과 부동산 시장의 흐름 사이에는 의외의 역설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는 보수 정권에서 규제를 풀어 시장을 활성화하고, 진보 정권은 투기 억제와 실수요자 보호를 위해 규제를 강화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실의 흐름은 이 단순한 공식에서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참여정부 시절을 떠올려보자.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하고 다주택자에 대한 과세를 강화했으며, 분양가 상한제와 투기과열지구 지정 등 다양한 규제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시기 부동산 가격은 큰 폭으로 상승했다. 특히 강남을 중심으로 한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연일 최고가를 갱신했다. 당시에는 대출 규제보다는 세금과 공급 통제를 통해 시장을 조절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수요를 억제하지 못했고 오히려 매물 잠김 현상과 전세난, 가격 상승을 초래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강력한 대출 규제와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등 세제 강화, 다주택자에 대한 고강도 압박이 이어졌지만 시장은 정반대로 반응했다. 오히려 규제가 거셀수록 집값은 더 올랐다. 사람들이 ‘이번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심리에 몰렸고 제한된 공급 속에 수요는 점점 더 과열됐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중산층 아파트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상대적 박탈감은 2030세대의 패닉바잉으로 이어졌다. 정부의 의도와는 반대로, 규제는 투기 억제보다는 오히려 투기의 촉매가 되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이쯤에서 우리는 왜 진보 정권에서 부동산이 오히려 더 오르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해석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인 분석 중 하나는 진보 정권이 정책 목표를 ‘시장 억제’에 두는 동안 오히려 수급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수요를 누르되 공급 확대에는 소극적이거나 속도감이 떨어지는 탓에 결과적으로 매물 부족으로 인한 가격 상승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반면 보수 정권은 규제보다는 공급 확대나 개발 장려에 무게를 두기 때문에 일정 부분 수급 균형이 유지될 수 있다. 즉, 시장을 ‘억누르려는 정권’일수록 시장은 더 격렬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관찰은 진보 정권이 대출 규제에 강경하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를 위한 조치지만 실제로는 서민층이나 젊은 세대의 내집 마련 기회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다. 대출이 막히면 그들은 더 이상 자산 축적의 사다리에 오를 수 없고 오히려 현금 부자나 기존 자산가들에게 유리한 시장이 만들어진다. 시장은 이 같은 신호를 빠르게 해석하고, 자산에 대한 선점 심리를 부추긴다. 여기서 또다시 매물 잠김과 가격 상승이 이어진다.
최근의 인플레이션과 금리 흐름도 부동산 시장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고물가 속에서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유동성을 조이고, 이는 곧 대출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시장은 움츠러들고 자산 가격은 일시적으로 조정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금리 상승 국면이 고점을 지나고, 인플레이션이 점차 안정세에 접어들면서 금리 인하 가능성이 언급되면 시장은 다시 빠르게 반응한다.
특히 부동산 시장은 ‘선행 기대 심리’에 민감하기 때문에 금리 인하 시그널만으로도 거래량이 늘고 가격 반등 조짐이 나타난다. 실제로 과거 여러 차례 금리 인하기가 부동산 반등기의 서막이 되었고 이는 정책 당국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반복되어 왔다. 지금도 그 시기에 해당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이념 성향이 아니라 ‘시장과 얼마나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는가’라는 점이다. 시장은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억지로 누르거나 방향을 틀려고 하면 예상 밖의 방식으로 반응한다.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이 일관성 있는 정책과 장기적인 로드맵, 그리고 유연한 조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부동산 시장은 항상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게 된다. 수요와 공급, 세제와 대출, 기대 심리와 매물 흐름이 엮여 있는 이 복잡한 시스템에서는 어느 하나만 건드려서 바꿀 수 있는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권 교체와 함께 매번 새로운 접근을 내놓기보다는 오히려 ‘시장과의 협업’이라는 태도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유효할 것이다. 시장을 이기려 들기보다는 시장을 이해하고 함께 움직이는 정부야말로 진정한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진보 정권의 역설적 상승장을 돌아보며 우리는 단순한 규제와 억제의 프레임을 넘어 보다 정교하고 현실적인 시장 읽기의 필요성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지금의 시장은 정권이 어떤 색을 띠는가보다 그 정책이 얼마나 예측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진짜 필요한 것은 정권의 의지가 아니라 시장을 설득할 수 있는 일관된 전략이다. 그리고 그 전략은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현실에 기초한 유연함에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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