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귀인 끊이지 않아…향후 봉사하는 삶 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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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세 대담 중인 가수 함중아. 이수명리학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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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함중아(왼쪽)가 부산 삼락공원에서 명리학자 이수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수명리학회 제공 |
乾命(건명)
戊辛丙壬(무신병임)
戌亥午辰(술해오진)
壬子運(임자운)
나이 마흔을 넘은 한국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함중아와 양키스’의 추억을 기억한다. 혹 이 이름이 생소한 독자라면 지난해 개봉됐던 영화 ‘고고70’에서 유행하던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의 열광 장면을 한번 떠올려보라.
한국 그룹사운드 황금기의 말미인 1974년 ‘주간경향’컵 그룹쟁탈전에서 1등을 수상한 장본인이 바로 함중아다.
밴드 음악의 생명력은 자체로 곡을 만들고, 연주하는 실력에 달렸다. 함중아는 한국 록 2세대를 대표했던 주자로만 기억되기엔 다소 서운한 싱어송라이터 1세대다.
몇 주 전 부산에서 함 사장이 직접 경영하는 P호텔 나이트클럽에서 그를 처음 마주 대한 시각이 밤 10시를 훌쩍 넘긴 때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데도 보이지 않게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함 심성이 엿보였다. 이후에 한 번 더 만났을 때도 예절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수수하고 털털했다.
#겉은 차갑고 속은 따뜻한 남자
신해(辛亥)일에 태어나서인지 피부는 맑고 투명해서 창백하게 여겨질 정도다. 겉은 차갑고 속은 따뜻하다. 그러면 대개 ‘좋은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떨어지지 않는다.
1952년 임진(壬辰)생이니 상관기(上官氣)가 화개성(華蓋星)를 딛고 투출(透出)한 격인데 재주가 비상하고 총명한 인사다. 생시(生時)에 인수(印綬)가 투(透)했으니 겉으로는 세상사에 초연한듯해도 연구와 학업의 의욕이 식지 않는다.
인수(印綬)가 왕(旺)하면 예의와 염치를 아는 법이고 자비가 있다. 팔자(八字)에 좋은 것은 진신(眞神) 임수(壬水)가 투(透)한 것이고, 불리한 점은 정관(正官) 병화(丙火)를 면대한 것이다. 이른바 가란진(假亂眞)의 형국이 된 셈인데 이점이 우여곡절의 시초가 된다.
명서(命書)에 이르길 상관견관(上官見官)이면 백 가지 말썽을 부른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삶이 평탄치 않았다.
아버지의 재혼과 의붓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촉발된 복잡한 가정사로 인해 형제가 뿔뿔이 흩어지는 불운이 시작됐다. 형 함정필과 함께 포항의 고향을 뒤로 하고 파주로 올라와 펄벅재단에서 성장했다. 근래에 혼혈이 아닌 사실이 알려졌지만 이전까지 많은 대중들은 그를 혼혈가수로 기억했다. 게다가 그룹의 이름마저 ‘양키스’였으니 오해할 만도 했다.
한편 지지(地支)의 네 글자는 조습(燥濕)이 적절히 배합됐고 병화(丙火)와 계수(癸水)의 한난(寒暖)을 고루 구비한 절충(折衷)의 묘를 살렸다. 한난조습(寒暖燥濕)을 모두 갖추면 삶에 두 가지 뚜렷한 혜택이 따른다. 먼저 절대 고립(孤立)되는 법이 없다. 위기에 처하고 무너져도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귀인(貴人)이 나서게끔 돼 있다.
지금 그를 측근에서 보좌하는 매니저인 김남주 씨의 인상은 의리파의 전형으로 보였다. 간단히 말해 인덕(人德)은 타고나 평생 의식(衣食)을 잃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리고 일단 운(運)이 터지기 시작하면 신속하게 발전한다. 그는 1978년 ‘안개 속에 두 그림자’를 터뜨리며 단박에 그룹사운드의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윤수일과 함께 혼혈가수로 명성…2003년 관재 겪기도
함중아의 음악사에 윤수일이 빠질 수 없다. 특별한 인연으로 엮인 두 사람은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라이벌로 관계로 발전했다. 1975년은 한국 록 음악사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연예계 전반에 불어 닥친 대마초 광풍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이후의 갭을 메우며 수면 위로 부상한 함중아와 윤수일은 혼혈가수로 주목받으며 한국 그룹사운드의 중심으로 급부상했다. 먼저 윤수일이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대히트를 치자 함중아의 ‘안개 속의 두 그림자’로 맞불을 놓았다. 1981년에 국민가요 ‘아파트’가 대박을 터뜨리자 ‘내게도 사랑이’로 팽팽한 기세를 올렸다. 이후 ‘카스바의 연인’에 이르기까지 스테디셀러 음악 세계를 이어갔다.
2003년 계미년(癸未年)에 한 차례 관재(官災)를 겪었다. 상관운(傷官運)으로 접어들자 인수무토(印綬戊土)는 합거(合去)되고, 술미형(戌未刑)으로 병화정관(丙火正官)이 입묘(立墓)된 까닭이다. 그러나 곧 재기했다. 항상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신세대들은 함중아라는 가수를 잘 모르지만 부산 사람들은 노소를 막론하고 다 안다. 영남 일대에서 이 사람은 ‘밤의 황태자’로 널리 이름을 떨쳤다. 오랜 기간 이 지역의 어지간한 호텔 나이트클럽은 죄다 거리며 운영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부산 사상 지역에 위치한 파라곤호텔 나이트클럽을 인수해서 처음으로 자신이 1대 주주인 CEO로 경영수완을 과시하고 있다. 나이 서른에 못 미치면 아예 출입조차 불가한 7080세대를 위한 컨셉트로 설정된 이곳은 주말에 문전성시다. 현재도 직접 무대에 서기를 마다하지 않는 현역 가수인 그는 오랜 기간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이 사람은 시지(時支) 월살(月煞)의 작용으로 향후 봉사하는 삶을 계획하고 실천하게 된다. 그래서 이왕이면 크게 성공을 거머쥐는 행운이 이어지길 기원한다.
글=이 수(명리학자, 이수명리학회 설립자)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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