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이선균이 쏘아올린 연예인 마약 스캔들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가장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배우 이선균의 이미지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 박동훈 부장이다.
2018년 작품인 이 드라마는 삼형제 중 둘째 박동훈 부장(이선균)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박 부장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꾸역꾸역 회사를 다니는 흔한 중년 남자. 사내 정치에 익숙하지 않아 한직을 전전하던 중 아내의 불륜 사실까지 알게 돼 괴로워 한다. 그래도 그는 ‘어른’으로 할 일을 다 해내며 중심을 잃지 않는다.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아저씨 삼형제와 거칠게 살아온 한 여성이 서로를 통해 삶을 치유하게 되는 담담한 이야기는 국내는 물론 해외 반응까지 이끌어냈다.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는 “‘나의 아저씨’는 인간의 심리를 완벽히 묘사한 작품”이라며 “엄청난 각본, 환상적인 연출, 최고의 출연진에게 찬사를 보낸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올해 봄 작고한 영화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 역시 “‘나의 아저씨’는 어른을 위한 판타지다. 모두가 바라지만 현실에서는 본 적 없는 마음과 따뜻함이 담긴 판타지”라고 했다. 그는 이 드라마를 2회 이상 정주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 주변 지인들에게 ‘인생 드라마’가 뭐냐고 물어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답이 ‘나의 아저씨다’. 지향점이 모호한 현대사회에서 방향을 제시해 주고 ‘어른’의 의미를 돌아보게 해줬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번 마약 사건이 터졌다. 배우 이선균이 연루돼 경찰서 포토라인에 섰다. 나의 아저씨 팬들은 박동훈 부장 얼굴과 목소리가 오버랩되며 심리적 혼란을 겪는다. 유튜브 동영상 숏폼 서비스를 통해 드라마 명장면을 여러번 다시 봤다면 이 증상이 더 심하게 찾아올 것이다. 어둠 속 길잡이 역할을 해주던 존재가 마약 피의자 신분이라니. 기가막힐 노릇이다. 이 과정에서 팬들이 겪게 되는 심리는 일종의 인지부조화 상태에 가깝다.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Cognitive dissonance)란 자신의 태도와 행동 따위가 서로 모순되어 양립할 수 없다고 느끼거나 사태가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흘러가 버렸을 때 발생하는 불쾌감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다.
이론에 따르면 이선균을 비난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박동훈 부장이라는 존재를 추앙하던 자아는 자기합리화라는 보호장치를 발동한다. ‘배우 이선균과 극중 인물은 다른 사람이니까 나의 아저씨 박동훈 부장을 롤모델 삼아 살아야겠다는 내 결심은 계속 될 것이다’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둘을 분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뇌의 일정 부분이 둘을 거의 동일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사실이 아닐 것’이라 믿고 싶어 지기도 한다. 배우 이선균은 선한 이미지를 가졌으니까.
지난번 경찰 출석 때 이선균은 “혐의를 인정하냐. 조사에서 어떤 부분을 소명하겠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애매한 입장만 내놨다. 그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많은 분께 큰 실망감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지만 정작 팬들이 궁금했던 부분들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인지부조화 상태가 계속되면 의식적-무의식적인 초조감, 긴장감, 울렁감 등 일종의 불안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마약 투여 등 범죄에 대한 사실 관계를 더 명확하게 밝혀 팬들의 인지부조화를 해소해 주기를 배우 이선균에게 바란다.
전경우 연예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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