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없이 포털 사이트에서 몇 번의 터치만으로 스포츠를 즐기던 시대는 저물었다. 팬들은 요금제 가입 계정으로 각종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에 접속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유료화, 볼멘소리는 쏟아졌다. 각 종목 연맹·협회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거대 자본으로 성장한 OTT가 제시하는 거액의 중계권료를 보면 도저히 고개를 저을 수 없다.
한 프로스포츠 연맹 관계자는 “중계권료 수익은 살림의 반”이라며 “어느 연맹·협회든 각자의 발전을 위해 사업을 진행하려면 돈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했다. 일례로 한국프로축구연맹의 2024년 경영 공시에 따르면 연맹 총수입 453억원 중 중계권의 비중은 약 32%(144억원)에 달했다.
중계권료 상승은 연맹·협회에 매우 중요한 이슈다. 실제로 KBO는 2024시즌을 앞두고 티빙을 보유한 CJ ENM과 역대 최대 규모(3년 총 1350억원) 유무선 중계권 계약에 골인했다. 통신·포털 컨소시엄(네이버·카카오·KT·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과의 직전 계약(5년 1100억원)과 비교하면 연평균 금액이 2배(220억원→450억원) 뛰었다. 야구계가 쌍수를 든 배경이다.

KBO로부터 중계권 수익을 나눠 받는 구단들도 반가울 따름이다. 모 구단 관계자는 “포털 시절과 비교할 수가 없다. 매년 적자로 모기업 눈치만 보던 상황에서 중계권료 증가는 단비다. 최근 구단들이 앞다퉈 다양한 이벤트와 마케팅을 추진하는 것에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스포츠에 파고드는 OTT 열풍을 거스르기 힘든 이유다.
짙은 그림자도 바라봐야 한다. 인기의 한복판에서는 체감하기 힘들지만, 유료 중계의 벽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팬 유입을 떨어뜨릴 위험성이 있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열혈 팬이 아닌 유입층, 라이트 팬에게는 부담스러운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야구계 고위 관계자도 “KBO리그가 지금에 오기까지 포털의 엄청난 접근성이 한몫했음을 모두가 인정한다”며 “그나마 케이블 채널을 통해 매일 전 경기 중계가 계속되는 점은 다행”이라고 짚었다.
인기-비인기종목의 간극이 벌어지는 것도 중요한 이슈다. 인기 종목의 중계권료 급등을 가져온 시장원리는 반대로 비인기 종목에 한없이 차갑기 때문.
일례로 여자배구 대표팀이 한창 치르고 있는 2025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는 현재 국내 중계 플랫폼이 없다. 배구 관계자는 “VNL은 지난해까지 쿠팡플레이에서 중계가 됐는데, 올해는 성사가 안 됐다. 국제배구연맹 대회 운영권을 가진 발리볼월드 측에서 이번 중계권료를 세게 부르자 발을 뺐다고 들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프로화되지 않은 한 일반 종목 관계자는 “당장 인기가 없으니 중계하겠다는 OTT가 있을 리 없다. 어떻게든 노출돼야 팬들이 관심을 가지든가 할 텐데 이제는 중계조차 힘들다. 악순환인 셈”이라고 토로했다.
당장 OTT와는 연결되지 않은 V리그도 걱정이 크다. 한국배구연맹 관계자는 “KBSN과 맺은 중계권 계약이 종료될 때(2026∼2027시즌 이후)가 오면 여러 옵션을 고민해볼 수 있다. 하지만 유료 중계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섣불리 시도했다가 팬들이 외면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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