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꿈꾼다.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기록을 남기며, 수많은 갤러리의 박수를 받는 순간을 그린다. 하지만 모든 선수의 골프 인생이 그렇게 빛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정상에 서기 위해 달리고, 또 누군가는 그 무대에 다시 서기 위해 기약 없는 시간을 견딘다. 조용히 은퇴를 알린 조은채(31)에게 골프는 열정 그 자체였다.
조은채는 지난 1일 제주 엘리시안 제주 컨트리클럽에서 막을 내린 S-OIL 챔피언십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가족과 지인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보고 서로 마음을 나누며 조용히 작별을 고했다.
그가 걸어온 길의 무게까지 조용한 것은 아니었다. 2014년 프로 무대에 뛰어든 조은채는 이듬해 처음 KLPGA 정규투어 시드를 확보했다. 당시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10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는 녹록지 않았다. 이후 정규투어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고, 지난 10년 동안 정규투어 출전은 단 7개 대회에 그쳤다.
익숙한 무대에서 밀려났지만 골프채를 놓지는 않았다. 드림투어를 오가며 다시 기회를 기다렸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도전을 이어갔다. 기다림은 길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11월 시드순위전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했다. 11년 만에 다시 정규투어 출전권을 손에 쥐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는 정규투어 한 시즌이 조은채에게는 오랜 시간 포기하지 않고 버텨온 노력의 결실이었다.
돌아온 무대에서의 첫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2026시즌 국내 개막전 더 시에나 오픈 1라운드에서 3언더파 69타를 적어내며 공동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선 무대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보여줬다. 이후에도 매 대회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더 높은 곳을 바라봤고, 한 타라도 더 줄이기 위해 고민했다. 남자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쇼트게임을 보완하는 등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았다.
물론 결과가 모든 노력을 대변하지는 못했다. 정규투어 우승이라는 꿈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누군가의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화려한 커리어를 쌓지도 못했다. 그러나 선수의 가치는 트로피의 개수나 상금 순위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를 준비하고, 수없이 반복되는 실패 앞에서도 다시 골프채를 잡았던 시간 역시 분명한 성취다.
조은채는 자신만의 골프 인생을 완주했다. 정규투어에서 밀려났을 때도, 다시 기회를 얻기까지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 때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자리에서도 묵묵히 땀을 흘렸고, 다시 출발선에 설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그에게 골프는 단순히 우승을 향한 경쟁이 아니라 끝까지 놓을 수 없었던 꿈이자 삶이었다.
생애 마지막 투어 대회 라운드를 마치고 클럽하우스로 향하던 조은채의 눈에는 눈물이 글렁그렁 맺혔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자신의 은퇴를 축하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가족, 동료, 팬, 관계자들에게 애써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나눴다. 그가 끝내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후회보다 후련함이, 아쉬움보다 감사함이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 시간 자신을 믿고 응원해 준 이들 앞에서 마지막까지 웃는 모습으로 작별을 고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달려온 시간이었기에, 마지막 순간만큼은 슬픔보다 환한 미소로 자신의 골프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우승으로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만, 누군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과정으로 기억된다. 조은채가 걸어온 길이 그렇다. 이제 투어에서 그의 이름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오랜 시간 누구보다 뜨겁게 골프를 사랑했고, 자신의 가능성을 믿으며 묵묵히 도전했던 한 선수의 발자취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화려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치열했고, 정상에 서지 못했기에 더 오래 자신을 증명해야 했던 시간. 그의 골프 인생에 박수를 보낸다.
제주=권영준 기자 young0708@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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