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사의 손끝에서 시작된 얼음이 무대를 뒤덮는다. 순식간에 솟아오른 얼음궁전, 그리고 화려한 조명. 시시각각 달라지는 무대 풍경에 눈을 뗄 틈이 없다. 스크린에서나 가능할 줄 알았던 마법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익히 아는 장면인데도 새삼 놀랍다. 디즈니의 마법이 무대 위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한국 초연으로 관객과 만난 뮤지컬 ‘겨울왕국’은 동명 애니메이션의 환상적인 세계를 무대 위에 펼쳐놓는다. ‘알라딘’, ‘라이온 킹’을 제작한 디즈니 시어트리컬의 작품답게 볼거리가 풍성하다.
◆박진주, 인생 캐릭터 만났다…정선아와 빚어낸 자매의 온기
화려한 무대에 뒤지지 않는 건 배우들의 존재감이다. 특히 안나 역의 박진주는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안나가 박진주를 만나기 위해 기다려온 인물처럼 느껴질 정도다.
특유의 능청스러운 표정과 재빠른 대사,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몸짓이 안나의 성격과 꼭 맞아떨어진다. 마음이 급해 말부터 쏟아내고, 기쁜 감정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억지로 웃기려 들지 않아 더 재미있다. 드라마와 예능에서 보여준 박진주의 장점들이 무대 위에서 한꺼번에 빛을 발한다.
무엇보다 박진주의 안나가 사랑스러운 건 그 밝음 뒤에 외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언니와 단절된 채 자란 안나는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이 누구보다 간절하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고, 거절당해도 다시 다가가는 이유다. 박진주는 이런 안나의 마음을 지나치게 꾸미지 않는다. 장난스럽게 웃고 떠들다가도 언니를 향한 그리움이 드러나는 순간에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경쾌한 노래와 대사 사이로 외로움이 비친다. 웃음과 애틋함을 오가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박진주가 연기하는 안나는 귀여운 공주에 머물지 않고, 마음을 주고받고 싶은 옆집 동생처럼 느껴진다.
정선아의 엘사도 빼놓을 수 없다.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시선을 붙드는 존재감이 남다르다. 특히 대표 넘버 ‘렛 잇 고(Let It Go)’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얼음 궁전이 모습을 드러내는 화려한 장면에서도 정선아의 존재감은 중심을 잃지 않는다.
정선아와 박진주의 호흡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정선아가 감정을 눌러 담은 엘사를 보여준다면, 박진주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안나를 그려낸다. 언니는 동생을 지키기 위해 거리를 두고, 동생은 그 거리를 좁히려고 애쓴다.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두 인물이기에 함께하는 장면에서 감정이 더욱 풍성해진다. 정선아가 묵직하게 극을 이끌고 박진주가 경쾌한 에너지를 보태면서 두 자매의 관계도 설득력을 얻는다.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두 배우가 만났을 때 얻어지는 시너지다.
◆눈앞에 펼쳐진 얼음 마법…올겨울 가장 근사한 이벤트
음악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 ‘Love Is an Open Door’, ‘Let It Go’ 등 영화에서 사랑받은 노래에 뮤지컬을 위해 새롭게 만든 12곡이 더해졌다. 귀에 익은 멜로디가 라이브로 울려 퍼지는 즐거움에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재미까지 있다.
이야기는 사실 익숙하다. 얼음 마법을 숨기려는 언니와 그런 언니에게 다가가려는 동생의 여정이다. 결말을 알고 보는 공연이지만 무대에서 만나는 ‘겨울왕국’은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눈앞에서 바뀌는 무대와 배우들의 노래, 살아 움직이는 올라프와 스벤까지.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반가운 장면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노르웨이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의 자연과 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무대와 의상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영상과 조명, 특수효과가 맞물려 얼음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올라프와 스벤은 정교한 퍼펫 예술을 통해 생명력을 얻었다. 인형을 움직이는 배우가 눈에 들어오다가도 어느새 캐릭터의 표정과 몸짓을 따라가게 된다.
연말연초를 앞두고 이만한 이벤트도 드물 듯하다. 아이들에게는 좋아하던 캐릭터가 눈앞에 나타나는 특별한 경험이고, 어른들에게는 잠시 동화 속에 다녀온 듯 하다. 가족과 함께해도 좋고, 연인이나 친구와 겨울의 추억을 만들기에도 제격이다.
엘사 역에는 정선아·정유지·민경아, 안나 역에는 박진주·홍금비·최지혜가 출연한다. 크리스토프는 차윤해와 신재범이 연기한다. 한스 역은 김원빈과 황건하, 올라프 역은 정원영·한규정·이창호가 맡는다.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되고 있으며 내년 3월 1일까지 막을 올린다. 제작사는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2027년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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