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계에 오르기 전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다. 수업 대신 연습실로 향하고 휴대전화는 회사에 맡긴다. 아이돌을 꿈꾸는 10대 연습생들의 일상이다.
K-팝이 세계적인 문화산업으로 성장하면서 초등학생 희망 직업에서도 아이돌 등 미디어 분야 종사자가 꾸준히 상위권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무대 뒤 연습생들은 과도한 체중 관리와 학습권 침해, 사생활 통제에 노출돼 있다. K-팝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라도 미성년 연습생과 아이돌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6일 가요계에 따르면 아이돌 그룹의 연령대는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데뷔한 보이그룹 코르티스는 2005년생 제임스를 빼면 주훈·마틴(2008년생), 성현·건호(2009년생) 등 멤버 모두가 10대다. 같은 해 데뷔한 걸그룹 키키의 막내 키야는 2010년생으로, 데뷔 당시 중학생 나이였다. 이달 데뷔한 A2O 라이트는 멤버 전원이 2008~2013년생으로 평균 연령이 14.9세다.
기획사들이 어린 연습생을 선호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찍 발굴할수록 회사가 원하는 콘셉트에 맞춰 오래 육성할 수 있고 데뷔 후 활동 기간도 길어진다. 연습생 시절부터 데뷔에 이르는 과정을 팬들과 공유하면서 어린 멤버의 성장 서사 자체가 상품이 됐다.
문제는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아이들의 권리와 건강이 뒷전으로 밀린다는 점이다. 데뷔 경쟁에서 밀려서는 안 된다는 압박 속에 과도한 훈련과 외모 관리가 일상이 되고 성장기 아이들의 건강과 학업, 사생활까지 흔들리고 있다. 이 같은 우려는 최근 공개된 아이돌·연습생 면접조사에서도 확인됐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등 방송·노동·아동 관련 단체들이 참여하는 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는 연습생 경험이 있는 16명을 인터뷰한 결과를 발표하고, 현행 육성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인권 문제를 짚었다.
가장 두드러진 문제 중 하나는 건강권 침해다. 특히 여성 연습생들은 키에서 몸무게를 뺀 값이 110~125 수준이 되도록 감량 압박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몸무게를 재기 전 식사와 수분 섭취를 끊는 등 무리한 방법으로 체중을 줄이려 한 사례도 있었다. 탈수와 빈혈, 실신을 비롯해 영양실조와 생리 불순 등 건강 이상을 경험했다는 응답도 나왔다.
학습권도 위협받았다. 연습생들은 훈련 일정에 맞추려고 수업에 빠지거나 조퇴했고 현장체험학습이나 진단서로 결석을 처리하기도 했다. 일부 기획사는 학교를 그만두거나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말 것을 제안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생활 통제도 심각했다. 일부 기획사는 연습생의 휴대전화를 거둬가거나 메시지와 사진첩, SNS 계정을 들여다봤고, 비밀번호 제출까지 요구했다.
K-팝의 국제적 위상과 달리 연습생 단계의 아동·청소년을 지킬 제도는 여전히 허술하다. 현행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의 보호 규정은 데뷔 후 제작 활동을 전제로 하고 있어 정식 데뷔 전 연습생은 사실상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업계 자율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훈련 환경을 점검하고 학업과 휴식 시간을 보장하며, 사생활 침해를 막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부담은 데뷔와 함께 끝나지도 않는다. 데뷔 이후에도 아이들은 외모와 말 한마디까지 대중의 평가대에 오르고 악성 댓글과 각종 논란을 직접 감당해야 한다. 보호 장치가 연습생 시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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