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팔로우’로 유명한 데이비드 로버트 미첼 감독이 공룡을 미국 교외 주택가로 불러들였다. 지난달 26일 국내 개봉한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은 앤 해서웨이와 이완 맥그리거가 부부로 호흡을 맞춘 SF 생존 영화다.
제작비 8500만 달러(약 1152억원)를 들인 이 작품은 8월 말 기준 북미에서 4108만 달러(약 557억원), 전 세계에서 9488만 달러(약 1286억원)를 벌어들이며 제작비를 넘어섰다. 국내에서는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4위로 출발했다.
영화의 배경은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인 1982년이다. 평화롭던 교외 마을 오크 스트리트가 정체불명의 우주적 현상으로 하루아침에 통째로 뜯겨 나가 선사시대에 떨어진다. 익숙하던 골목과 마당은 순식간에 공룡의 사냥터로 바뀌고 육지와 하늘은 물론 물속까지 거대 포식자들이 점령한다.
아비규환을 방불케 하는 상황에서 주인공 데니즈(앤 해서웨이)와 그녀의 남편 그레그(이완 맥그리거), 천문학도를 꿈꾸는 딸 오드리(메이지 스텔라)와 아들 브라이언(크리스천 콘버리)이 함께 위기를 견딘다. 이웃들이 흩어지고 마을의 질서가 무너지는 동안 가족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버텨낸다.
이번 작품은 거대한 포식자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볼거리였지만 개인적으론 사람들의 반응이 더 눈에 들어왔다. 평소처럼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는데 눈앞에 육식공룡이 돌아다니고 있다. 자고 일어났더니 마을 전체가 선사시대로 이동해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하루아침에 믿기 힘든 현실을 마주한 등장인물들은 극심한 혼란과 공포에 빠진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집 안으로 숨어들거나 무작정 달아난다. 아이들은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어른들 역시 패닉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현실에서도 비슷한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교통사고다. 교통사고는 불과 몇 초 사이에 벌어지기 때문에 미리 대비할 시간이 없다. 사고 처리가 끝난 뒤에도 당시의 장면이 반복해서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갑자기 공룡이 나타나는 영화 속 상황과 비교하면 충격의 정도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 중에서도 교통사고는 큰 혼란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순간이다. 크게 다치지 않았더라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사고 당시의 장면이 계속 떠오르며, 비슷한 상황만 마주해도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버릴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갑작스러운 충격이나 스트레스로 심신이 불안정해진 상태를 경계(驚悸)와 정충(怔忡)으로 설명한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작은 소리에도 잘 놀라며 잠들기 어렵거나 악몽을 꾸는 증상이 여기에 속한다. 외상이 크지 않아도 나타나며 불안과 불면이 지속되면 통증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져 신체 회복까지 더뎌진다. 실제로 환자의 심리적 안정 여부는 전체적인 치료 예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에 한의치료에서도 사고 후 나타나는 통증뿐 아니라 불안과 긴장, 수면장애 등 심리적 증상을 함께 살핀다. 침·약침, 추나요법, 한약 등 다양한 치료를 환자의 증상과 상태에 맞춰 적용해 회복은 물론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는 데도 초점을 둔다.
실제 이러한 접근이 임상에서 어떤 효과를 보이는지는 여러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중 자생한방병원이 SCI(E)급 국제학술지 ‘통합의학연구(Integrative Medicine Research)’에 게재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자.
교통사고 후 3일 이내 입원한 환자 50명을 대상으로 일반적인 한의통합치료만 받은 25명과 심리적 안정을 목적으로 약침 치료를 매일 1회 추가한 25명으로 나눠 경과를 비교했다. 그 결과 병원 불안 및 우울척도인 HADS(0~42)의 총점은 약침 치료를 병행한 군이 15.84점에서 6.82점으로 낮아졌다.
병행하지 않은 군은 15.04점에서 9.11점으로 감소해 약침 치료를 병행한 군에서 불안·우울 등 심리적 스트레스의 개선 폭이 더 크게 나타났다.
환자의 심리 상태 안정은 통증 회복에 영향을 끼친다. 비록 영화 속 주민들에게는 달아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었지만 현실에서 놀람은 치료할 수 있는 증상이다.
사고나 큰 충격을 겪은 뒤 두근거림이나 불면, 반복되는 악몽이 2주 넘게 이어진다면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전문적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몸에 남은 상처만큼 마음에 남은 놀람도 회복이 필요하다.
이진호 자생한방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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