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더 보답하겠습니다.”
부딪히고 좌절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미국프로농구(NBA) 진출이란 꿈을 향한 발걸음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타고난 하드웨어에 경험이 쌓이면서 육각형 포워드로 성장한 이현중. 한국에 아시안게임(AG) 금메달을 안기며, 한국 농구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갈 에이스임을 제대로 입증했다. 그가 써 내려갈 다음 페이지가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이현중은 21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코트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날카로운 눈빛을 보였던 모습과 달리 검정테 안경을 쓴 순수한 청년의 모습으로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현장에서 한국 여자 농구 레전드이자 어머니 성정아 대한농구협회 이사와 만나 환한 미소로 끌어안았다.
남자 농구대표팀은 이번 AG에서 드라마를 연출했다. 불안한 전력에 우려의 시선이 많았지만, 6전 전승으로 정상까지 직행했다. 2014 인천 대회 이후 12년 만이자 AG 통산 5번째 금메달이다.
순탄하지 않았다. 컨테이너형 숙박 시설에 배정돼 호텔로 이동하기 전까지 몸을 구겨 지내야 했고, 결승전 당일 오전엔 버스가 도착하지 않아 훈련이 취소됐다. 이런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끈끈한 팀워크와 조직력. 그 중심에는 이현중이 있었다.
AG 무대서의 활약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이현중은 6경기서 평균 24점, 9.7리바운드, 2.3스틸을 기록했다. 특히 경기당 4.2개의 3점슛을 터뜨렸다. 토너먼트서 더욱 빛을 발했다. 8강 요르단전에서 28점 9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올렸고, 4강 이란전에선 양 팀 최다인 26점과 함께 리바운드를 14개나 잡아냈다.
결승전은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27점을 폭발했고, 3점슛 5개를 꽂아 넣었다. 전반은 5점에 그쳤지만, 3쿼터에 3점슛 3개를 포함해 13점을 몰아넣었다. 한국은 39-38로 경기를 뒤집었고, 이후 리드를 한 번도 내주지 않았다. 이현중은 우승 확정 후 눈물을 흘렸다. 그는 “각 팀의 에이스를 맡는 선수들이 헌신하면서 열심히 뛰었다”며 “우승을 위해 노력한 선수, 팬, 코칭스태프가 떠올랐다”고 소감을 전했다.
떡잎이 남달랐다. 농구 DNA로 가득찼다. 어머니 성 이사는 한국 여자 농구 레전드다. 선수 시절 대표팀 에이스로 1984 LA 올림픽 은메달 획득을 이끌었고, 1990 베이징 AG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현중이 이번 대회에서 정상에 오르며 ‘모자(母子) 금메달 리스트’라는 진기록도 세웠다. 아버지 역시 하승진을 길러낸 이윤환 삼일고 농구부 감독이다.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삼일고를 졸업하고 미국 데이비슨대에 입학해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무대를 경험했다. 하지만 2022년 NBA 드래프트에서는 발 부상 등의 이유로 지명 받지 못했다. 포기하지 않았다. 서머리그를 두드렸고, 호주를 거쳐 일본에서 활약했다. 2025~2026시즌에는 일본 B.리그 나가사키 벨카에서 팀의 창단 첫 우승과 정규리그 1위를 이끌었다. 리그 베스트5에도 선정됐다.
NBA 문을 다시 두드린다. 올 여름 샌안토니오 스퍼스 소속으로 서머리그에 참가했고, 이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 이그지빗 10 계약을 맺었다. 1년 비보장 최소 연봉 계약이다. 능력을 인정받으면 투웨이(G리그 병행하며 NBA 최대 50경기 출장) 계약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번 AG 우승으로 병역 특례 혜택을 받게 되면서 NBA 도전은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이현중은 오는 26일 미국으로 향한다. 그는 “월드컵과 올림픽도 나가고 싶다. NBA도 가고 싶다. 아직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며 “병역 혜택을 받은 만큼 우리나라를 위해 더 뛰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