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걸그룹 리센느 리더 원이의 단독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이하 ‘안원잘부’)가 구독자 20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 5개월여 동안 밀어닥친 ‘리센느 현상’ 진원지 역할을 맡아온 채널이다. 그룹 공식 계정도 아니라 일개 멤버 단독 채널이 이 정도 규모에 이르렀단 점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 확장 속도 차원에선 가히 전무후무한 수준. ‘안원잘부’가 구독자 10만 명을 돌파한 게 불과 4개월 전, 5월4일이다. 100만 돌파는 6월20일 이뤄졌다.
‘안원잘부’ 영상 조회수로 넘어가면 얘기는 좀 더 거창해진다. 저 엄청난 구독자 수도 개개 영상 조회수에 비하면 저평가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 ‘리센느 현상’ 시발점이 된 멤버 미나미의 ‘갸루’ 캐릭터 등장 편, 3월6일 업로드된 ‘갸루 출신 일본인에게 일본어 배우기’부터 9월6일 현재까지 23편의 영상 평균 조회수는 681.5만 뷰다. 한두 영상이 폭발적으로 흥해 나온 평균값조차 아니다. 23편 중 500만 뷰 이상이 16편, 그중 1000만 뷰 이상 영상도 4편이나 된다. 나아가 시간이 지날수록 조회수가 상향 안정돼 가는 추세도 보인다. 고정 시청층을 탄탄히 붙잡고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러니 ‘안원잘부’는 현시점 아이돌 자체 콘텐츠 채널 차원을 크게 뛰어넘어 ‘제2의 무한도전’ ‘금요일 7시의 무한도전’이란 소리까지 듣고 있는 셈. 아이돌 채널 성격이라기보다 ‘국민예능’ 계열에 더 가까워지고 있단 얘기다. 구독자 100만 돌파 기념 Q&A 영상에서 ‘안원잘부’ 윤성원 PD가 밝힌 바대로 “국내 구독자 비중이 99%”란 점을 고려해 보면 더더욱 그렇다.
여기서 잠시 상황을 정리해 보자. 지금 시점에서 ‘리센느 현상’을 돌이켜보면 사실 꽤나 복잡한 조건과 경로를 거쳤단 점을 알게 된다. 그 시작점이 된 “거제 야호”부터가 그렇다. 한국에선 산 정상에 올라 외치는 구호 정도로 알려진 ‘야호’가 일본에선 주로 젊은 여성층이 사용하는 가벼운 인사란 차이 탓에 국내 대중엔 어딘지 부조리한 감각으로 와닿았다. 도저히 의도한 결과라 보기 힘들지만, 어찌 됐든 그 점 탓에 부조리 유머를 즐기는 국내 젊은 층 사이 밈으로 떠올랐고, 곧 리센느란 팀과 그 근원지인 ‘안원잘부’ 채널에의 관심도 생성됐다.
문제는 그 이후다. ‘리센느 현상’은 흔히 데뷔 후 2년 동안 빛을 보지 못한 중소기획사 팀의 분전이란 점에서 ‘언더독 감성’을 동력으로들 거론하고, 또 그런 해석이 딱히 틀린 것도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지금 같은 지점까지 이르진 못한다. 역주행 계기가 된 노래는 음원 차트에서 성과를 보일 수 있어도 흥한 패턴이 단조로워 오래 관심을 유지하진 못한다. 저 ‘언더독 감성’은 휘발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팀이 인지도를 쌓아 일정 궤도에 오르고 나면 응원 심리도 그만큼 약화되고 동력도 고갈되게 마련이다.
리센느 경우 여기서 역할한 게 ‘안원잘부’다. 채널 속 영상들은 ‘언더독 감성’을 건드리는 측면도 없진 않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멤버들 캐릭터 성립 부분이다. 쉽게, 대형기획사 팀들조차 멤버들 각자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1~2년씩 걸린단 작업을 불과 수개월 내 간단히 이뤄냈다. 일부 멤버들은 고향을 탐방하는 로컬리티 콘셉트로, 고향이 수도권이어서 이렇다 할 로컬리티가 성립되지 않는 멤버들은 ‘주목받지 못한 멤버들’ 콘셉트로 다양한 각도에서 각자 캐릭터화를 시도하고 그 바탕에서 특징적 면면들을 부각시켰다.
아이돌 상품은 결국 캐릭터성이 알파이자 오메가고, 흡인력 있는 캐릭터성 기반으로 노래와 관련 상품들을 소비시키는 모델이란 대전제가 그렇게 충족된다. 그리고 이 같은 캐릭터성의 빠른 확립은 곧 ‘안원잘부’가 왜 ‘제2의 무한도전’ 소릴 듣는지, 어째서 ‘국민예능’이 돼간단 해석을 낳는지에 대한 답이 된다. ‘무한도전’ 등 리얼리티 예능은 고정 출연자들이 명확한 자기 캐릭터 바탕으로 서로 부딪히고 소통하며 벌어지는 소동극 패턴이기 때문이다.
또 있다. 다양한 세대가 반응하는 ‘국민예능’의 조건에 대해서다. 관련해선 좀 멀리 돌아가, 20여 년 전 KBS2 ‘겨울연가’ 위시로 한국 트렌디드라마가 일본에서 선풍을 일으키자 일본 언론미디어가 조명한 ‘다양한 세대가 즐기는 한국 드라마’ 원인 분석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특히 왜 20대 청춘들 얘기에 중장년 여성층이 반응하고 있느냐는 데 대한 해석 부분. 단적으로, 한국 트렌디드라마는 일본의 그것과 달리 주인공 청춘남녀만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게 아니란 점이다. 그 부모 세대, 때론 조부모 세대도 함께 얽혀 두 사람 운명에 중요 역할을 맡고, 그밖에 회사 동료나 상사, 어린 10대 형제자매 등 다양한 연령대 캐릭터들이 비중을 갖고 만들어내는 세계관이란 것. 그렇기에 어느 세대라도, 특히 웬만한 트렌디드라마에선 소외되고 마는 중장년층이라도 공감하고 개입해 볼 만한 세계관이 갖춰져 있더란 분석이다.
‘안원잘부’에도 그렇게 다양한 연령대가 반응할 구석이 많다. 일단 리센느 멤버 부모들 존재감이 상당히 크다. 그중 부모 이름까지 유명세를 탄 경우도 존재한다. 가족 외에 멤버 원이 고향 거제의 분식포차 사장, 미나미 고향 치바의 서예 선생 등 로컬리티와 만난 중노년층 게스트 캐릭터들이 더 등장해 중요 역할을 맡고, 성수동의 젊은 의류 편집샵 직원도 첫 출연에서 인상을 남겨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한편, 무대와 설정도 기존 아이돌 자체 콘텐츠와는 다른 점이 많다. 아이돌 팬층이 주로 관심갖는 아이돌 활동 영역이나 휴양지 단체여행 콘텐츠 등은 공식 계정에서 다루고, ‘안원잘부’는 보다 넓은 층에 어필하는 테마로 접근한다. 아이돌 자체 콘텐츠 외피를 쓴 ‘국민예능’은 그렇게 복잡한 경로를 통해 탄생된 셈이다.
물론 ‘안원잘부’가 ‘리센느 현상’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진 않는다. 역주행 시점에 다양한 우연들도 많이 겹쳤고, 그 이전 ‘어찌 됐든 노래는 좋은 팀’으로 여겨졌단 점도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안원잘부’가 그간 K팝 마케팅에서 중요 역할을 차지해 온 자체 콘텐츠 제작과 배급에 일종의 신기원을 마련하고 있단 점 역시 부정하긴 힘들다. ‘안원잘부’ 이전까지만 해도 ‘금요일 7시의 무한도전’이 된 아이돌 자체 콘텐츠 채널이란 상상조차 힘든 일이었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콘텐츠 완성도와 감성 차원을 넘어 아이돌 자체 콘텐츠가 나아갈 방향성 부분에 또 다른 의미와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 계속 연구돼야 할 필요가 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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