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잘 띄지 않아도 꼭 필요한 플레이가 있다. 주자를 한 베이스 보내는 번트, 병살을 피하는 빠른 발, 경기 후반 빈자리를 채우는 수비. 하나하나는 작아 보여도 팀의 균열을 메우고 상대의 균형을 흔드는 플레이들이다. 유준규(KT)는 그런 몫을 차곡차곡 채우는 선수다.
29일 현재 KT 외야는 어느 때보다 빽빽하다. 출산휴가로 잠시 자리를 비운 샘 힐리어드를 비롯해 최원준과 안현민이 주축을 이루고, 기존 주전이었던 김민혁과 배정대가 출전 기회를 나눠 갖는다. 최근 끝내기 홈런을 터뜨린 장진혁까지 있다. 그 틈에서 유준규는 ‘쓰임새’로 승부한다. 선발 여부와 관계없이 경기 흐름에 맞춰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그만의 강점이다.
올 시즌 33경기서 타율 0.295를 작성하는 등 방망이 경쟁력도 보여주고 있다. 제한된 출전 속 3루타 2개와 도루 3개를 더했고, 희생번트는 네 차례 시도해 모두 성공했다. 대타와 대주자, 대수비를 두루 맡길 수 있는 만능 퍼즐이라는 평가다.
사흘 전 수원 두산전에서도 이 쓰임새가 번뜩였다. KT가 3-4로 뒤진 9회 말, 선두타자 대타로 나선 유준규는 상대 마무리 이영하의 2구째 직구를 받아쳐 우전 안타로 출루했다. 역전의 물꼬를 튼 순간이었다. KT는 이후 김현수의 끝내기 적시타로 5-4 승전고를 완성했다.
다음 날까지 그의 머릿속에 남은 건 안타보다 주루였다. 후속 한승택의 번트 때 2루에서 아웃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더그아웃서 이강철 KT 감독과 전날 9회 장면을 두고 꽤 긴 대화를 나눴을 정도다.
이 감독은 “발 느린 사람도 살 것 같은 타구인데 왜 죽었느냐”고 뼈 있는 농담을 건넸고, 유준규는 “스킵(투구에 맞춰 다음 베이스 쪽으로 리드 폭을 넓히는 동작) 타이밍이 늦었고 리드도 너무 어정쩡했다”고 되돌아봤다. 그러면서도 “팀이 이겨 정말 다행이었지만, 이 한 번이 크게 다가온다. 나갈 때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단 한 번의 플레이조차 허투루 넘기지 않는 데는 지난 공백의 영향이 크다. 지난해 1군 타율 0.118에 그쳤던 유준규는 올 시즌 초반부터 3할을 치며 조금씩 입지를 넓혔다. 흐름이 가장 좋던 5월29일 고척 키움전서 제동이 걸렸다. 머리 뒤로 넘어가는 타구를 잡으려 몸을 틀었다가 착지 과정에서 왼쪽 발목을 다친 것. 그는 “생각보다 야구가 잘됐고 기회도 많이 받고 있었다. 그때 다친 게 자신에게 한동안 계속해서 화가 날 정도로 속상했다”고 전했다.
당시 타구가 여전히 눈에 밟힌다. 끝까지 공을 쫓은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잡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은 오히려 자신을 더 채찍질하는 동력이 됐다. 당초 10주가 예상됐던 재활을 6∼7주 만에 마칠 만큼 회복에도 집요하게 매달렸다. 다만 곧바로 1군행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두꺼운 팀 뎁스 속에서 자리를 기다려야 했고, 공백으로 떨어진 경기 감각까지 완전히 끌어올리는 과정도 필요했다.
이 시기 이영수 육성군 타격코치의 조언이 큰 힘이 됐다. 기술적인 부분에 매달리기보다 잘됐을 때의 자신부터 되찾아보라는 주문이었다. 유준규는 “오래 쉬면서 티배팅 정도밖에 하지 못해 투수와의 타이밍을 잃을까 걱정이 컸다”며 “코치님께서 ‘너 정말 잘하고 있었다. 그러다 다친 것이니 불안해하지 말라. 1군에서 잘 쳤던 영상을 보면서 당시 어떤 루틴으로 하루를 보냈는지 떠올려보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사소한 부분까지 다시 맞췄다. 타격감이 좋았을 때의 출근 시간은 물론 들고 다니던 가방까지 떠올리며 야구장 안팎의 루틴을 되살렸다. 불안이 걷히자 스윙도 한층 과감해졌다. 그 결과 퓨처스리그(2군)서 타율 4할을 찍으며 무력시위를 펼쳤고, 확대엔트리 시행 첫날 당당히 1군의 부름을 받았다
마음 한편에는 가족을 향한 책임감이 자리한다. 부상으로 그라운드를 떠나 있는 동안 어린 딸을 함께 돌보며 아내가 홀로 감당해온 육아의 무게를 비로소 실감했다. 유준규는 “나는 좋아하는 야구를 하며 밖에 나와 있지만, 아내는 혼자 아이를 보는 시간이 많다. 또 (야구선수 남편인) 나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시간들도 있다. 정말 미안하다”며 “내가 야구를 잘해야 하는, 잘하는 수밖에 없는 이유”고 목소리를 높였다.
눈앞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다. 언제든 벤치의 부름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준비의 폭도 넓혔다. “중요한 순간 타격으로도, 발로도 해결할 수 있는 선수가 되려고 많이 준비했다”고 운을 뗀 그는 “어떤 역할이든 잘 해내 팀이 선두를 지키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야구선수는 결국 팬들로부터 인정받아야 하는 직업이다.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계속 고민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며 “팬들께 꼭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