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을 직접 채취하거나 검사 전 장을 비워야 하는 불편 없이 혈액검사만으로 대장암을 선별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내 연구진이 인공지능(AI)으로 혈액 속 암세포 유래 DNA를 분석한 결과, 대장암 환자 10명 중 9명을 찾아내는 진단 성능을 확인했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변정식·홍승욱 교수팀은 ‘세포유리DNA 혈액진단법’을 이용해 대장암 환자와 정상 대조군 등 1677명을 분석한 결과, 대장암 진단 민감도가 90.4%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임상소화기학회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미국소화기학회지(American Journal of Gastroenterology)’ 최근호에 게재됐다.
대장암은 국내 암 발생률 3위지만 조기에 발견하면 생존율이 95% 이상이다. 문제는 검진 과정에 대한 부담이다. 현재 국가암검진에서는 채변을 통한 분변잠혈검사를 우선 시행하고, 양성 판정을 받으면 대장내시경 검사를 권고한다.
분변잠혈검사는 대변을 직접 채취해야 하고 대장내시경은 검사 전 장을 깨끗하게 비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같은 불편 탓에 대장암 검진을 미루는 사람도 적지 않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대장암 검진 수검률은 44.4%로 주요 암종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분변잠혈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뒤 대장내시경을 받는 비율도 낮은 편이다.
연구팀은 액체생검·임상유전체 분석 전문기업 GC지놈과 함께 대장암 환자 302명과 진행성 대장용종 환자 108명, 정상 대조군 1267명 등 총 1677명의 검사 결과를 분석했다.
세포유리DNA 혈액진단법은 혈액에 존재하는 세포유리DNA의 특성을 분석해 암의 존재 가능성을 선별하는 방식이다. 암세포에서 유래한 세포유리DNA는 정상세포에서 나온 DNA와 비교해 길이와 절단 위치, 말단 구조 등에 차이가 있다.
연구팀은 채혈로 확보한 세포유리DNA의 유전정보를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으로 분석했다. 이어 DNA 절편의 길이와 말단 구조, 유전체 분포 등의 정보를 AI 딥러닝 모델에 적용해 대장암 여부를 예측했다.
검사 결과 대장암 진단 민감도는 90.4%로, 환자 10명 중 9명을 대장암으로 정확하게 선별했다. 기존 분변잠혈검사의 민감도인 70~80%보다 높은 수준이다.
정상인을 정상으로 판별하는 특이도는 94.7%였다. 정상인 100명 가운데 약 95명을 정확하게 구분했다는 의미다. 병기별 민감도는 1기 84.2%, 2기 85.0%, 3기 94.4%, 4기 100%로 나타나 초기 대장암에서도 비교적 높은 진단 성능을 보였다.
내시경으로 치료할 수 있는 초기 대장암은 90%의 민감도로 검출했다. 암으로 진행하기 전 단계인 진행성 대장용종의 민감도는 58.3%로, 기존 분변잠혈검사의 25~40%보다 높았다. 연구팀은 대장암뿐 아니라 암 전 단계 병변을 조기에 선별할 가능성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연구는 혈액검사가 당장 분변잠혈검사나 대장내시경을 대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장암 선별검사로 활용할 가능성을 확인한 연구 결과로, 실제 검진 체계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변정식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시경센터소장은 “이번 연구는 기존 검진 과정에서 느꼈던 부담을 줄이고 혈액검사만으로 편리하게 대장암을 선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며 “인공지능 딥러닝 모델을 활용해 혈액검사법의 정확도를 높인 것처럼 앞으로 다양한 의료 분야에서 AI 기술이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 대장암 검진 대상인 50세보다 젊은 20~40대에서도 대장암 발생이 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혈액진단의 편의성과 인공지능 기술을 결합하면 대장암 검진의 접근성을 높이고 조기 발견을 통해 생존율과 치료 후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변정식·양동훈·홍승욱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팀은 김남국 융합의학과 교수팀과 의료 분야의 인공지능 적용을 위한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조기 대장암 환자에게 내시경 치료와 외과적 수술 가운데 어떤 치료법이 적합한지를 판단하는 인공지능 적용 방법을 고안해 국제학술지 ‘장과 간(Gut and Liver)’에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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