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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에서 생산자로, K-팝 팬덤의 존재감 [K-팝 팬덤, 무엇이 다른가]

입력 : 2026-08-17 14:03:00 수정 : 2026-08-17 18:4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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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뉴진스 팬들이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앞에 하이브를 규탄하는 트럭 시위를 진행했다. 뉴시스 제공
그룹 뉴진스 팬들이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앞에 하이브를 규탄하는 트럭 시위를 진행했다. 뉴시스 제공

 

2000년대 이후 급속화된 K-팝 시장의 부흥은 대형 연예기획사들의 전략적 움직임만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가수와 소속사가 팬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면, 팬들은 그 팬심을 팬덤으로 확장하기 위한 자발적 움직임에 나섰다. 단순히 가수와 음악을 소비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발로 뛰는 프로슈머(Prosumer) 팬덤은 가수, 소속사와 함께 K-팝 부흥을 위한 삼각 편대를 이뤘다. 

 

박진영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위원장은 “K-팝 팬덤은 다른 음악 팬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정부가 팬덤 시상식이라는 초유의 이벤트, 패노메논을 기획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K-팝 팬덤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K-팝 팬덤은 스타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 가수 1등 만들기’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인지도를 높이고 음원 순위를 끌어올리는 등, 본래 소속사가 힘써야 할 영역까지 팬들이 자발적으로 파고든다.

그룹 H.O.T.와 젝스키스의 팬덤 일화를 다룬 tvN '응답하라 1997'. 방송화면 캡처
그룹 H.O.T.와 젝스키스의 팬덤 일화를 다룬 tvN '응답하라 1997'. 방송화면 캡처

◆팬덤 문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팬덤이란 가수, 배우 등 유명인이나 특정 분야를 좋아하는 사람, 혹은 그 무리를 의미한다. K-팝은 1990년대 후반 아이돌 1세대 때부터 이미 상당한 조직력을 갖고 있었다. 공식 팬클럽의 서열이 존재했고, 가수를 상징하는 색상과 응원 도구, 단체 서포트 문화도 이때 생겨났다.

 

다만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CD를 음반 판매점에서 구매하고 콘서트 티켓을 예매하려면 은행 앞에 줄을 서야하던 시대다. 정보는 대부분 오프라인 커뮤니티 안에서만 공유됐고, 소통 수단도 휴대폰 문자메시지나 이메일이 전부였다. 내 가수를 위해 더 많이, 더 열심히 소비하는 데 머물렀다.

 

IT 인프라의 발달은 오프라인 팬덤의 문법을 지웠다. 흐름을 바꾼 건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의 등장이다. 국내 팬카페 중심이던 소통 구조가 SNS로 넘어가면서, 국경을 넘은 실시간 소통이 가능해졌다. 팬덤은 더 능동적이고 글로벌한 조직으로 발전했고,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 구체화된 문화 속에서 더욱 치열한 경쟁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

 

이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방탄소년단 팬덤 아미의 행동력이다. 화양연화로부터 이어진 세계관 서사는 매 앨범마다 단서를 심어놓는 방식으로 짜였다. 이 파편적인 서사를 함께 해독해가는 과정이 팬들 사이에 공동체 의식을 심어줬다. 가사와 뮤직비디오 속 상징적 이미지를 해석하며 2차, 3차 콘텐츠가 만들어졌고, 각 언어권의 해석이 빠르게 번역·유통되며 언어와 문화 장벽을 넘어 서로의 이해를 돕는 문화가 자발적으로 확산했다. 

2017 드림콘서트가 열린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 현장. 뉴시스 제공
2017 드림콘서트가 열린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 현장. 뉴시스 제공
2022년 서울 송파구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 28회 드림콘서트' 현장. 뉴시스 제공
2022년 서울 송파구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 28회 드림콘서트' 현장. 뉴시스 제공

◆ 홍보도 팬덤의 몫

 

영상 공유 문화의 발달로 팬들이 직접 경험을 공유하는 리액션 영상, 팬캠, 브이로그도 유행했다. 알고리즘을 탄 영상의 확산은 가수를 잘 모르는 대중에게도 존재를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방탄소년단이 시리즈에 걸쳐 전개해온 '러브 유어셀프' 캠페인의 해시태그를 팬들이 직접 달고, 기부 릴레이 프로젝트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문화 공동체로서의 위상을 높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건모, 신승훈, 조성모 등이 앨범을 냈다 하면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던 2000년대 초반과 달리, 음악 소비의 추세는 음반에서 음원으로 옮겨갔다. 팬들의 투 트랙 전략이 시작된 이유다. 아티스트가 커리어 하이를 달성하도록 음반 판매량을 끌어올리면서, 동시에 대중의 선택을 받는 증표인 음원차트 상위권까지 노리는 물밑 작업이 함께 진행된다.

 

4세대 팬덤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플랫폼 방침에 맞춰 신곡 순위를 끌어올릴 스트리밍 전략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총공팀이 존재한다. 시차를 고려해 국가별 스트리밍 가이드를 배포하고, 팬들의 자발적 모금을 받아 가동된다. 방송 점수를 얻기 위해 라디오에 직접 신청곡을 넣기도 한다. 특정 날짜와 시간에 맞춰 해시태그를 올리는 SNS 총공 전략도 빠지지 않는다. 방탄소년단이 굴지의 팝스타들을 제치고 미국 빌보드 뮤직 어워드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을 수상한 배경에도 아미의 이런 조직적 움직임이 있었다. 순위 등락에 따라 팬들끼리 서로를 북돋우고 채찍질하는 것도 총공 문화의 일부다. 금전적 보상이 없는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노동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조직된 ‘내 가수 알리기’는 콘텐츠 소비에서 그치지 않고, 성금 기부와 쌀 화환, 숲 조성 등으로도 뻗어나갔다. 과거 콘서트장 앞 조공 트럭이 하던 역할을, 지금은 온라인으로 조직된 기부와 캠페인이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제 28회 드림콘서트'에서 관중들이 망원경으로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뉴시스 제공
'제 28회 드림콘서트'에서 관중들이 망원경으로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뉴시스 제공

◆ 감독관이 된 팬덤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챙긴다. 컴백 프로모션부터 활동 기간 내내 실시간 피드백을 통해 활동의 방향을 좌우하기도 한다. 최근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수빈과 범규가 출연한 유튜브 콘텐츠 짠한형 신동엽 예고편이 비공개로 전환된 일이 대표적이다. 예고편에서 수빈을 향한 부적절한 신체 측정 요구로 성희롱 논란이 일자 팬들의 강력한 항의가 이어졌고, 제작진은 결국 해당 내용을 삭제했다.

 

방탄소년단은 2018년 우익 성향 논란이 있던 일본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와의 협업이 방시혁 당시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친분으로 추진되자 팬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해당 인물의 우익 성향과 과거 여성 혐오 논란이 문제로 지적됐고, 소속사는 결국 협업 취소를 발표하며 팬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과도하게 선정적이거나 위험이 따르는 안무 수정도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다. 트럭 시위는 이제 팬덤의 항의 문화를 대표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어쩌면 소속사보다 더 아티스트의 이미지 보호와 무대 완성도를 위해 힘쓰는 이들이 바로 팬덤이다. 트렌드를 적극 반영해 홍보와 마케팅에 팔을 걷어붙이고, 필요할 땐 감독관을 자처해 목소리를 낸다. 이 적극적인 움직임이야말로 K-팝 산업의 성장을 지탱해온,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자산이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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