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

검색

팬심을 숫자로 잰다?…패노메논이 놓친 것 [K-팝 팬덤, 무엇이 다른가]

입력 : 2026-08-17 14:05:00 수정 : 2026-08-17 13:57:08

인쇄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그룹 방탄소년단이 영상을 통해 팬덤 아미를 만나고 있다. 빅히트 뮤직 제공
그룹 방탄소년단이 영상을 통해 팬덤 아미를 만나고 있다. 빅히트 뮤직 제공

 

아티스트를 향한 팬들의 사랑을 숫자로 잴 수 있을까. 대중문화교류위원회가 추진 중인 K-팝 팬덤 시상식은 한 해 동안 가장 뜨거운 열정과 영향력을 보여준 팬덤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린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세어야 ‘가장 뜨거운 팬덤’이 될 수 있을까.

 

자발적인 팬덤 문화를 정부가 나서서 제도화하겠다는 방침에 우려가 쏠리자, 박진영 위원장은 “지독할 정도로 치밀하게 조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심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간 국내 시상식이 공정성 시비로 잦은 곤욕을 치른 만큼 데이터의 투명성과 평가의 신뢰 확보는 패노메논의 최우선 과제다. 그러나 정작 그 데이터가 팬심의 본질을 담아낼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2019년 서울광장에 모인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 뉴시스 제공
2019년 서울광장에 모인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 뉴시스 제공

◆ 결국 빅4 싸움?… 정량화의 함정

 

팬덤 규모를 측정하려면 앨범 판매량, 공식 팬클럽 가입자 수, 음원 스트리밍 횟수 등 정량적 지표가 필수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지표들이 막강한 자본력과 마케팅을 투입할 수 있는 대형 기획사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일부 아이유 팬이 앨범명과 타이틀곡, ‘아이유 컴백’ 등을 적은 종이 탈과 홍보 도구를 직접 만들어 서울 시내를 활보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뒤늦게 이를 접한 아이유가 팬들에게 직접 사인 CD를 선물해 훈훈한 뒷이야기까지 남겼다. 이처럼 팬들은 종종 자본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시간을 들여 자발적으로 가수의 컴백을 홍보하곤 한다. 진정성을 무기로 한 이런 활동에도 분명 열정이 있고,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며 영향력까지 만들어낸다.

가수 아이유 홍보를 위해 거리로 나선 팬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가수 아이유 홍보를 위해 거리로 나선 팬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하지만 패노메논의 평가 기준이 이런 순수한 열정을 잡아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단순히 SNS 언급 횟수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부정적 이슈로 인한 언급까지 성과로 카운트되는 역설이 생긴다. 애정의 밀도와 화제성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팬덤의 정량화는 시작부터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기존 K-팝 시상식도 이미 정량 평가를 기반으로 전문가 심사, 경우에 따라 팬 투표까지 반영해왔다. 그런데도 결과는 매번 수상자는 비슷하다. ‘팬덤에게 상을 준다’는 발상 자체는 새롭지만, 정작 그 팬덤의 크기를 만드는 것도 음반 판매량과 음원 순위, 대중적 인지도 같은 익숙한 지표라면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구조적인 우려도 있다. 대중문화교류위원회는 대형 기획사 4사와의 합작 법인 설립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이들 4사 대표가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위원으로 이미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속 아티스트들에게는 사실상 거부할 수 없는 일정이 되는 셈이다. 중소·신생 기획사 배제 우려도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순수한 애정과 헌신을 바탕으로 한 팬심에 순위표가 매겨진다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대중문화교류위는 팬덤이 K-팝을 부흥시켰다는 점에서 소비자 이상의 파트너십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들의 팬심이 정부의 수익사업으로 연계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팬심을 동력 삼아 발생하는 수익은 정작 팬들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정부가 부추긴 경쟁 속에서, 팬덤이 가져가는 건 찰나의 뿌듯함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오른쪽)과 박진영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왼쪽이)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출범식에서 K-팝 아이돌 포토카드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제공
 이재명 대통령(오른쪽)과 박진영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왼쪽이)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출범식에서 K-팝 아이돌 포토카드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제공

◆ 시작부터 ‘한국판 코첼라’…정체성 찾아야

 

봄부터 가을까지는 전국 곳곳에서 음악 축제가 이어진다. 겨울엔 한숨을 돌리지만, 정작 이 시기가 K-팝 업계에서 가장 붐비는 때이기도 하다. 각 그룹의 연말 콘서트와 팬미팅이 몰리고, 대형 시상식 일정까지 겹친다. 아티스트도, 팬덤도 한 해 중 가장 숨 가쁜 두 달을 보내는 시기에 정부는 여기에 2주짜리 축제를 하나 더 끼워 넣었다. 박 위원장은 “패노메논이 들어서면 아티스트들이 오히려 여기에 집중하며 어느 정도 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패노메논의 집중도는 올라갈 수 있지만, 아티스트의 휴식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의문점은 또 있다. 당초 코첼라 모델을 언급했던 위원회는 지난달 해외 순회 계획을 밝히며 롤라팔루자까지 모델에 포함시켰다. 1999년 시작한 코첼라는 지금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을 벗어난 적이 없다. 장소와 결부된 희소성과 분위기 자체를 브랜드로 지켜왔기 때문이다. 패노메논은 오히려 롤라팔루자와 가깝다. 롤라팔루자는 시카고를 본거지로 두면서 남미와 유럽으로 판을 넓힌 순회형 모델이다.

 

패노메논의 해외 첫 공연은 2028년 미국 LA에서 예정되어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패노메논의 목적은 코첼라 같은 브랜드를 만드는 데 있다기보다, K-팝을 발판 삼아 K-컬처 전반을 해외에 홍보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에 가까워 보인다.

 

코첼라도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시행착오가 있었다. 패노메논 역시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다만 시작도 하지 않은 채 1조원의 경제 효과만 기대하기엔 해결해야할 부분이 적지 않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