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투수가 하나둘 자취를 감추는 시대, 고영표(KT)는 도리어 더 선명하게 번뜩인다.
상대 팀은 현미경을 들이밀 듯 투구 패턴을 파고들고, 잠수함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좌타자는 늘었다. 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ABS)의 압박까지 거세졌다. 더는 ‘생소함’만으로 버틸 수 없는 무대다. 고영표는 그때마다 생존의 답을 새로 써 내려가며 잠수함 선발의 명맥과 에이스의 무게를 함께 지키고 있다.
29일 현재 고영표는 올 시즌 18경기에 등판해 8승6패 평균자책점 3.88을 써냈다. 더불어 104⅓이닝을 책임지며 국내 투수 가운데 이 부문 2위에 올라 있다. 특유의 정교한 수싸움을 앞세워 볼넷은 13개만 내준 반면 삼진은 무려 111개(4위)나 수확했다.
직전 등판인 하루 전 창원 NC전에선 7이닝 2피안타 1볼넷 10탈삼진 무실점의 빼어난 투구로 승리투수를 품었다. 최근 기세가 워낙 매섭다. 이달 3경기에서 평균자책점 0.98을 기록했다. 마법사 군단의 후반기 선봉장이라는 평가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갈수록 보기 어려운 투구폼이라는 점에서 그의 활약은 더욱 돋보인다. 28일까지 10개 구단 1군 등록 투수 명단을 살펴보면 언더핸드는 전체 143명 가운데 7명, 4.9%에 불과하다. 2016년 같은 날에는 123명 중 15명으로 12.2%를 차지했다. 10년 사이 인원은 절반 아래로 줄었고, 비중도 7.3%가량 하락했다.
한때 신재영(은퇴)과 박종훈(SSG), 우규민(KT), 이재학(NC), 한현희(롯데), 임기영(삼성) 등이 프로야구서 선발 마운드를 호령했다. 말 그대로 ‘잠수함 선발 전성시대’였다. 이제는 꾸준히 1군 로테이션을 소화하는 선수조차 좀처럼 찾기 어렵다. 고영표에게 ‘희귀종’이라는 표현이 따라붙는 이유다.
이유 있는 ‘쇠퇴’ 현상이다. 우완 언더핸드는 우타자에게 낯선 궤적으로 위력을 발휘하지만, 좌타자에게는 공이 상대적으로 오래 보이는 약점이 있다. 그런데 1군 야수 엔트리의 좌타자 비중은 2016년 39.0%에서 올해 45.2%로 높아졌다.
스위치 타자까지 포함하면 좌타석에 들어설 수 있는 타자는 47.8%에 달한다. 여기에 낮은 코스와 스트라이크존 경계선을 폭넓게 활용해온 잠수함 투수들에게 ABS 도입도 만만치 않은 과제로 다가왔다.
고영표 역시 시행착오를 피하지 못했다. ABS가 처음 도입된 2024년에는 18경기서 6승8패 평균자책점 4.95로 흔들렸다. 주무기인 체인지업이 존 하단에 걸리지 못하고 일찍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지난해 출발과 함께 코칭스태프와 전략데이터 부서의 도움을 받아 공이 더 늦게 가라앉도록 궤적을 조정하고 피치 터널을 가다듬었다.
그렇다고 안주하지 않는다. 리그에서 손꼽히는 학구파 투수답게 좌타자와 ABS에 맞설 해법을 꾸준히 찾아왔다. 지난해 커터를 장착해 승부의 폭을 넓힌 데 이어 올 시즌에는 수평 움직임을 키운 스위퍼까지 시도하고 있다. 싱커와 체인지업 중심의 기존 투구에 좌우 움직임과 높은 코스 활용을 더하는 등 달라진 시대에 맞는 생존 공식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격랑 속에서도 더 높은 곳을 향해 떠오른다. 변화가 닥칠 때마다 키를 고쳐 잡아온 고영표의 항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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