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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계 ‘일베’ 주의보 [낙인 찍는 사회]

입력 : 2026-07-27 13:02:00 수정 : 2026-07-27 13: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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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제공
뉴시스 제공

사실 확인보다 낙인이 먼저 붙는다. 수 년 전 사건이 다시 소환되고, 무심코 쓴 표현이 증거로 둔갑한다. 낙인이 먼저 찍히고 해명은 늘 뒤늦다.진위와 무관하게 꼬리표로 남는 낙인 중에서도 일베 의혹은 지독하게 치명적이다.

 

 

◆‘일베’가 뭐기에

 

일베의 정식 명칭은 ‘일간베스트 저장소’다. 2000년대 초반 국내 최대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에서 파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해당 사이트의 인기 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 욕설이나 음란물이 포함되거나 기괴한 내용의 글은 운영진에 의해 삭제되곤 했다. 이 삭제된 글이 모여 일베의 시초가 됐다. 백업의 용도를 넘어 점차 직접 글을 쓰는 독립 사이트로 굳혀진 것으로 보인다. 

 

일베 이용자들은 텍스트에 의미를 입혀 강한 어조와 억양을 살린 표현들을 즐겼다. 지역 비하나 특정 성별을 비하하는 용어들도 만들었다. 특히 문제가 불거진 건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과 경상도 사투리 어미 ‘∼노’를 결합하면서 부터다. 특정 대상을 조롱하는 목적으로 쓰인 이 표현은 이용자간의 결속을 다지며 유행처럼 번져갔다. 두드러지는 정치색도 일베가 가진 특징이다. 

 

일베 이용자들은 각종 사회 이슈에 대한 비하와 조롱에 앞장섰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이고 희생자를 비하하는 글을 올렸다. 익명성에 기대어 분란 조장을 선도했고, 사회적 통념과 윤리를 파괴함은 물론 인간의 존엄성마저 져버리는 행위들을 지속했다.

 

한동안 공영방송의 뉴스 그래픽에 일베 로고를 합성한 이미지를 몰래 넣는 사고들도 빈번하게 생겨났다. 이들은 ‘일베식 사고’를 하지 않고서는 분별조차 어려운 은근한 표식들을 새겼다. 합성 이미지의 발각, 진위 조사, 공식 사과의 패턴이 반복되면서 대중의 피로도는 가중되어 갔다. 자연히 ‘일베’ 키워드를 향한 반감은 거세졌다. 

 

 

◆일베로 보는 조롱과 혐오 문화

 

조롱과 혐오의 문화는 사회 전반으로 퍼져갔다. 비단 일베뿐 아니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지금도 이용자들간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건강한 토론은 커뮤니티가 가지는 순기능이지만 일베의 경우 역기능에 가깝다. 

 

사회 전반에 걸쳐 일베를 경계하고 이들을 색출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일베 용어로 ‘추청’되는 표현을 썼다가 낙인 찍히는 사례도 다수다. 이제 어디까지가 ‘일베 말투’이고 아닌지 기준조차 불명확해졌다. 각종 SNS와 커뮤니티는 어느새 비판보다 비난이 앞서고 이해보단 혐오의 시선을 내보인다. 

 

문제는 만연화 된 해당 말투가 온라인을 타고 다수의 이용자들에게 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흡수로 특정 어미나 말투의 어원도, 의미도 알지 못하고 사용하고 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사투리 용법에 맞게 활용한 표현에도 사상 검증의 잣대를 들이대 억울한 사례를 남기기도 한다. 맥락 없는 쓰임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라도 하지만 교묘한 침투는 의중을 따지기 조차 어려워졌다. 의도 없는 말에 의도를 찾아내고, 의도한 말엔 깜빡 속아넘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웹툰 김부장, 외모지상주의 일부.
웹툰 김부장, 외모지상주의 일부.

◆‘김부장’도 찍혔다…문화계 일베 주의보

 

문제는 낙인의 근거다. 명확한 증거 없이 ‘일베’라는 프레임 안에 가두고 평가를 내린다. 과거의 SNS의 글이나, 스치듯 언급했던 방송 자료화면들도 끌어 모아 논란을 증폭시켜 억울한 사례들도 생겨난다. 

 

지난 25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김부장’도 때아닌 몸살을 앓았다. 원작 웹툰의 제작을 담당한 박태준 작가를 둘러싼 일베 의혹을 ‘끌올(끌어올리다)’한 것이다. 이달 초 한 유튜브 채널에서 박 작가의 2015년 작품 ‘외모지상주의’의 여러 장면을 언급했다. 스톱워치로 잰 5분23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논란이 일었다. 여기에 상점 간판에 적힌 ‘Rock Owling’은 서거 장소인 부엉이 바위를 떠올리게 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2021년 박 작가의 또 다른 웹툰에서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조롱하는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일었다. 박 작가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논란 당시 “어처구니가 없다”는 글로 심경을 대변했다. ‘김부장’ 작품 자체는 물론 현 제작진, 배우들과는 관계 없는 사안이지만 제작 관계자가 일베 이용자라는 의혹이 있었다는 이유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배우 류준열. 뉴시스 제공
배우 류준열. 뉴시스 제공

10여 년 전 배우 류준열도 일베 논란에 곤혹을 치렀다. 암벽 등반하는 모습을 찍은 자신의 사진을 공유하며 쓴 ‘엄마 두부 심부름 가는 길’이라는 글이 타깃이 됐다. 일부 누리꾼들은 ‘두부’가 일베 회원들이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할 때 쓰는 단어라고 지적하며 논란을 키웠다. 지나친 마녀사냥이라는 우려가 나왔지만 시작된 의혹의 불꽃은 꺼질 줄을 몰랐다.

 

당시 라이징 스타로 각광 받던 류준열은 빠르게 사태 수습에 나섰다. SNS에 글을 올려 “두부는 어린시절 심부름 내용의 일부였다. 일베가 결코 아니고 일베 언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동료들도 류준열 옹호에 발 벗고 나섰다. 소속사는 “결과를 정해 놓고 가설을 제기하며 끼워 넣기 식의 공격을 하는 악의적인 안티의 행동이며 표현의 자유를 벗어난 허위 사실”이라고 강한 비판과 함께 법적 대응에 나서며 일단락 됐다. 

 

‘일베’라는 낙인은 혐오와 조롱의 상징이 됐다. 대중문화계에서 가장 예민한 금기어로 연예인에게는 스치기만 해도 위험한 소재다.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의혹은 온라인을 타고 순식간에 몸집을 불린다. 정체를 감춘 이들이 만들어낸 프레임 앞에서 당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억울함을 해명하는 것뿐이다. 의혹 하나로 무차별적 공격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은 대중문화계가 처한 낙인의 민낯을 보여준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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