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이돌 그룹 리센느의 멤버 원이가 자체 유튜브 콘텐츠에서 던진 “무섭노”라는 한마디가 온 인터넷을 달궜다. 제작진의 말에 경남 거제 출신인 원이가 무심결에 맞장구를 친 장면이었다.
이 모습은 뜻밖의 논란으로 번졌다. 극우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일간 베스트 저장소) 논란이다. 방송사 PD가 문제를 제기하고 정치권과 시민단체 인사가 가세하더니 급기야 원이가 출연한 경기도교육청 영상까지 비공개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기자가 이 소동을 보며 처음 든 생각은 하나다.
‘아…진짜 뭐라카노?’
극우 커뮤니티의 조롱성 은어를 떠올리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제는 해명의 대상이 되는 걸까. 오히려 그 음침한 인터넷 하위문화와 거리가 먼 정상적인 대중일수록 “무섭노”라는 말에서 아무런 정치적 혐오를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제 경상도 사람은 방송이나 SNS서 고향 사투리를 쓰기 전, 인터넷 커뮤니티의 은어 사전부터 펼쳐봐야 하는 사회다.
◆‘-노’는 원래 경상도의 말이다
경상도 방언에서 의문문 어미는 다음과 같은 규칙에 따라 구별되어 사용된다. 예·아니요로 답하는 질문에는 ‘-나’다. 예를 들어 “밥 먹었나?”, “집에 가나?”에 쓰인다. 이유·장소·상태 등을 묻는 질문에는 ‘-노’다. “와 그라노?”, “어데 가노?”, “뭐 하노?”가 그렇다.
원이의 사례처럼 “무섭네”와 같이 감탄의 의미를 담아 사용하는 경상도 방언 화자의 자연스러운 용법이다. 국립국어원 역시 경상 지역에서 의문을 나타내는 종결어미로 사용된다는 취지로 답변한 바 있다. 물론 세부적인 사용 범위에는 지역이나 세대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문법적으로 완전히 틀린 파괴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대중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맥락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일베에서는 문장 끝에 무차별적으로 ‘노’를 붙이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이는 명백히 비판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그 이후다. 사회가 본래의 방언보다 일베의 용법을 절대적인 판단 기준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정작 먼저 그 말을 사용해 온 지역민들이 자신의 고향 말을 검열하고 해명해야 하는 기괴한 상황이 벌어졌다.
◆일베 앞세운 공적 인물들…더 세심히 확인했어야
이 논쟁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은 공적 인물들의 성급한 개입 때문이었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는 사투리 용법과 일베 용법을 구별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게시하며 논쟁에 참여했다. 조수진 노무현재단 이사는 초기에 “무섭노”를 일베식 표현으로 판단했다가 이후 젊은 세대의 언어와 생략 용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며 원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들을 무작정 ‘정치적으로 악용했다’고 일괄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 다만 이들은 정치적 상징과 혐오 표현에 누구보다 민감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한 개인에게 무거운 낙인을 찍기 전 그 말이 나온 지역적 맥락과 실제 용례를 더 세심하게 확인했어야 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왜 다수가 혐오 집단의 은어를 외워야 하나
이번 논란은 한 아이돌의 해프닝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과잉 검열 문제로 확장되어야 한다.
일베라는 특정 집단의 은어와 혐오 상징이 앞으로 더 늘어난다면, 우리 대중은 그만큼 더 많은 단어를 그들에게 내어주고 도망쳐야 하는가. 혐오 집단이 우리말의 사용 범위와 한계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둘 순 없다.
사투리와 혐오 표현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특정 집단이 오염시킨 말을 사회 전체가 포기해야 하는가. 타인의 말 한마디를 검증할 때 낙인을 찍는 사람에게는 어떤 확인 책임이 있는가.
원이는 결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이번 논란이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들이다. 사투리는 사투리대로 지키고, 혐오는 의도와 맥락에 따라 정확히 가려내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도 확인했다.
지난 십여년 간 기자는 부산서 평생 써온 ‘-노’를 개인 SNS에 쓸 땐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었다. 혹시 오해받지 않을까, 혹시 구구절절 해명해야 하지 않을까. 참, 요즘은 물건을 집거나 크기를 가리키는 당연한 집게손가락 손모양조차 남성 혐오 커뮤니티의 상징이라며 눈치를 봐야 한단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소수의 비뚤어진 혐오 집단이 우리말을 훔쳐 가고 우리 손짓을 오염시켰다고 해서, 왜 다수의 정상적인 대중이 그들의 눈치를 보며 스스로를 검열해야 하는가. 소수에게 휘둘려 우리의 당연한 일상을 포기하지 말자. 그들이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사투리는 사투리고, 손가락은 손가락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이슈 덕에 빼앗긴 사투리를 되찾은 기분이다. 그러니 원이야, 진짜 고맙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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