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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살목지’는 맞고 ‘파묘’는 아니다?…흥행 기록의 함정

입력 : 2026-05-10 10:57:35 수정 : 2026-05-10 10:5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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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한국 공포영화 ‘살목지’가 누적 관객 272만 명을 돌파하며 2018년 작 ‘곤지암’의 268만 9877명을 넘어섰다. 9일까지 누적 관객 수는 296만6643명. 그런데 ‘곤지암’ 기록을 넘어서던 시점, 짐짓 기묘한 언론미디어 보도가 한동안 이어졌다. ‘살목지’가 역대 한국 공포영화 흥행기록 2위로 올라섰단 보도다. 역대 1위는 2003년 작 ‘장화, 홍련’의 314만6217명 기록이며, 지금 흥행 추이대로라면 역대 1위 기록 경신도 먼일은 아니란 것.

 

어딘지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당장 2년 전 개봉해 1191만 관객을 모은 ‘파묘’도 엄연히 공포영화로 분류되는데 말이다. 여기서 많은 보도가 그 이유를 붙인다. ‘파묘’는 오컬트 장르로 분류돼 정통 공포물과는 구분하는 시각이 있단 것. 그런데 이런 관점이라면 인플레이션 적용 역대 세계 공포영화 흥행 1위를 지키고 있는 1973년 작 ‘엑소시스트’도 오컬트 서브 장르인 관계로 공포영화가 아니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여전히 ‘엑소시스트’는 수많은 역대 공 포영화 베스트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클래식임에도 말이다.

물론 ‘파묘’ 외에도 이상한 ‘제외’는 더 있다. 재개봉 포함 1157만 명을 동원한 2016년 작 ‘부산행’도 저 공포영화 분류에선 빠졌다. 좀비물이 공포 장르에서 제외되는 일 자체가 상당히 어색하기도 하거니와, 그나마 ‘부산행’은 어드벤처 성격이 강한 2013년 작 할리우드 좀비영화 ‘월드워 Z’보다 공포 장르 성격에 훨씬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서브장르 포문을 열어젖힌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과연 공포영화가 아닌 걸까.

 

그러고 보면 저 까다로운 공포영화 규정에선 688만 관객을 불러 모은 2016년 작 ‘곡성’ 역시 빠진단 점을 알 수 있다. ‘곡성’은 또 왜 공포 장르가 아닌 걸까. 이쯤 되면 저 ‘정통 공포영화’ 개념이 정확히 뭘 가리키는지 궁금해진다. ‘양들의 침묵’ 같은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도 공포영화 리스트에서 발견되는 해외 기준을 따르자면 560만 관객이 극장을 찾은 2013년 작 ‘숨바꼭질’도 ‘살목지’ 위에 있어야 하지만, ‘거기까진’ 생각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결국 이 모든 게 ‘기록 경신’이란 한국 극장가 고정 홍보 코드 탓에 벌어지는 일이라 봐야 한다. 밴드웨건이 워낙 빈번히 일어나는 시장, 그렇게 ‘남들도 다 보고 있다’는 정보가 장르 관계없이 대중을 극장으로 부르는 파워 키워드인 시장이다. 단관 개봉 시절만 해도 영화 신문광고 기본은 극장 앞으로 장사진을 이룬 인파 사진 첨부였다. 이런 밴드웨건 유도에서 가장 효과적인 툴 중 하나가 바로 ‘기록 경신’을 소재 삼은 경마식 보도 유도 보도자료 배포다.

 

그럴 수밖에 없다. 숫자가 계속 어딘가를 향해 올라가는 현장을 보여주며 대중이 어딘가로 급히 몰리고 있단 인상, 이 새로운 흐름에서 뒤처지면 안 되겠단 인상을 강하게 주니 효과도 그만큼 배가된다. 영화 산업 입장에서도, 언론미디어 입장에서도 상업적으로 윈윈이 된다. 그러다 보면 ‘파묘’도 ‘부산행’도 ‘곡성’도 공포영화 흥행 기록을 말하는 덴 제외가 되고 만다.

 

이 같은 속성에서 같이 놓고 볼 만한 근래 보도가 또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이르면 오는 7월부터 입장권통합전산망 흥행 집계 기준을 기존 관객 수에서 매출액 중심으로 변경할 계획이란 보도다. 기존 관객 수 지표의 한계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이미 각 극장 체인과 배급사들 대상 의견 수렴도 마무리된 상태란 것. 곧 기존 ‘1000만 영화’에서 국내 극장 매출액 ‘1000억 영화’ 정도로 대박 영화 기준 통칭이 대체될지 모른단 얘기다.

 

사실 오래된 과제다. 세계 20대 영화시장 중 관객 수 중심으로 흥행을 집계하는 나라는 이제 한국과 프랑스 둘뿐이다. 그나마 프랑스조차 엄밀히 행정통계 성격이 강해 한국서 통용되는 박스오피스 흥행 지표와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이면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엄연히 산업 통계로서 작동해야 할 지표이지만, 요일 및 시간대별 요금 차등과 각종 할인 및 무료 초대권, 애초 요금이 다른 프리미엄 상영관 확대로 이제 관객 수와 실제 매출액은 간극이 커졌다. 이러면 사람 ‘머릿수’가 아니라 엄연히 ‘돈’으로 움직이는 산업 흐름과 손익구조를 단박에 파악하고 변화를 포착하기 어렵다. 또 홍보 효과를 노리고 관객 수만을 늘리기 위해 각종 과다 할인과 무료 초대권 남발 등이 이어져 실질 수익성은 악화되는 왜곡된 구조도 남는다.

 

그럼에도 한국영화산업이 관객 수 기준 흥행 집계를 이토록 오래, 아니 주요 영화시장 중 사실상 최후까지 고집해 온 까닭도 위 ‘밴드웨건의 왕국’ 차원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엄밀한 매출액 기준보단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관객 수 기준이 밴드웨 건 심리 자극 차원에서 더 유리했단 것이다. 그럼 그렇게나마 자리 잡은 관객 수 기준을 왜 이제 와서 또 바꾼다는 걸까. 이 점이 관전 포인트라 볼 만하다.

 

이제 관객 수 기준으론 기록 경신이 내주는 ‘바람몰이’를 기대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란 해석 이 많다. 한국은 2021년부터 1949년 집계 시작 후 처음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특히 만성 출산율 저하로 한창 대중문화를 왕성하게 소비할 10~30대 인구가 대폭 감소하는 추세다. 이러면 관객 수 기준으론 앞으로도 계속 신통치 않은, ‘바람’을 일으키지 못할 반향만 남게 된다. 저 까다롭고 이해하기 힘든 공포영화 기준도 이런 현실에서 똬리를 틀었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점점 무리가 가는 홍보를 반복하느니, 인플레이션 따라 숫자도 올라갈 수밖에 없는 매출액 기준이 흥행산업 특유의 기록 경신 화제성 및 밴드웨건 효과를 유지하는 데 유리하단 판단이었을 수 있단 얘기. 가정이긴 하지만, 시기적으로 그런 유추를 해보는 게 어색하진 않다. 저 ‘모호한 기준으로 만들어내는 기록 경신 홍보’로 돌아가 보자. 이런 건 물론 영화시장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K팝 시장에선 ‘5세대 논쟁’이란 게 또 있었다. 애초 ‘K팝 세대론’ 자체가 부실한 근거로 주창된 논리이긴 해도, 언젠가부터 등장한 ‘K팝 5세대’ 표시는 와중에도 또 너무 뜬금없는 얘기란 것. 그럼에도 몇몇 기획사발 보도자료와 팬덤 주장으로 밀어붙인 5세대 주창 본질은, 새 트렌드 인상을 주려 한 의도와 함께 새로 등장한 팀들 내에서만 통용되는 경쟁 및 기록 경신 홍보를 보다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한 꼼수였단 해석이 많다.

 

어디서나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특별한 비판도 없다. 아무리 산업 생존은 준엄한 문제이고 그를 위한 가지각색 홍보 전략엔 상당 부분 면죄부가 주어지는 현실이라 해도, 이처럼 어지러운 기준과 규정으로 빚어지는 혼란 역시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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