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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라고’ 정신이 필요한 시대, ‘비틀쥬스’ 김준수를 본다 [별별토크]

입력 : 2026-03-13 06:54:00 수정 : 2026-03-12 17:5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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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집이 통째로 뒤틀리고 거대한 뱀이 객석을 집어삼킬 듯 입을 쩍 벌린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기괴한 퍼펫들이 쏟아내는 시각적 폭격 속에서, 초록색 머리의 한 남자가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다. 바로 뮤지컬 비틀쥬스의 주인공 김준수다.

 

그동안 주로 신비롭고 무게감 있는 역할을 맡아온 그가 이번에는 비속어를 섞어 쓰며 무대를 헤집고 다니는 ‘악동 유령’으로 완벽히 변신했다. 연습실에서의 ‘현타’를 극복하고 기어코 무대 위에서 ‘날아다니게’ 된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연습실에선 현타의 연속… 욕설과 슬랩스틱에 익숙해지기까지”

 

김준수에게 이번 작품은 그야말로 ‘도전’ 그 자체였다. 그는 스스로를 “누군가를 웃기는 걸 좋아하고 동생들 사이에서는 개그맨으로 통한다”고 말하면서도, 본격적인 코미디극의 무게는 달랐다고 털어놓았다.

 

“지금까지 항상 멋진 척하는 역할을 많이 해왔는데, 본격적으로 코미디를 하려니 고민이 많았다. 특히 연습 과정에서 ‘현타’가 자주 왔다. 형광등 조명 아래에서 생전 안 해보던 야한 농담이나 욕설을 뱉어야 하는데, 그 자체가 익숙지 않아 처음엔 참 민망했다. 슬랩스틱 동작들도 구현하기가 쑥스러워 연습실에서는 끝까지 해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인간이 아닌 캐릭터 특유의 발작적인 템포와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대사를 입에 붙이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였다. “버튼만 누르면 랩 하듯이 대사가 튀어나와야 했다. 그 작업이 너무 힘들어서 연습하며 10번은 후회했다. ‘내가 미쳤었나’ 싶더라”며 웃는다.

 

▲추한 괴물 대신 ‘금쪽이’ 유령… 나만의 옷을 입다

 

원작의 비틀쥬스는 늙고 흉측한 이미지다. 김준수는 이를 그대로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강점을 살린 새로운 해석을 연출진에 제안했다.

 

“원래는 늙고 추한 할아버지 같은 캐릭터다. 하지만 나이가 100억 살인데 외모가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대사도 내 옷이 아닌 것 같아 ‘이 자식’이나 ‘얘’로 바꿨다. 대신 나는 ‘금쪽이’ 같은 면모를 강조하고 싶었다. 외로움도 타고,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운 유령. 그래야 리디아와 결혼하려는 설정도 덜 흉측해 보이고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는 매력이 생길 거라 믿었다.”

 

그는 “무조건 오리지널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했다면 못 했을 것”이라며, 연출진과의 긴밀한 소통 끝에 탄생한 ‘김준수표 비틀쥬스’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핵심은 ‘어쩌라고’의 기세

 

데뷔 이후 줄곧 완벽한 가창력으로 승부해온 그였지만 비틀쥬스에서만큼은 우선순위를 바꿨다.

 

“이 작품은 유일하게 노래 고민을 안 한다. 이전엔 넘버를 얼마나 클리어하고 감동적으로 부를까 고민했다면, 지금은 이 캐릭터를 얼마나 재밌고 납득되게 표현할지가 먼저다. 대사 톤과 몸짓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비틀쥬스는 무엇보다 ‘기세’가 중요하다. 내가 부끄러워하는 순간 끝이다. 어떤 돌발 상황이 생겨도 ‘어쩌라고’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한다.”

 

실제로 그는 무대 위 실수를 유연하게 넘기는 여유도 갖게 됐다. “한번은 무대 장치가 떨어져 큰 소리가 났는데, 오히려 관객에게 조용히 하라고 화를 내며 비틀쥬스답게 넘겼다. 진지한 극이었으면 큰일 났겠지만, 이 작품에선 그런 의외성이 더 큰 시너지를 낸다. 요즘은 장치 실수 없이 완벽하게 끝나면 오히려 아쉬울 정도다.”

 

뮤지컬계의 최정상에 서 있는 그가 굳이 이토록 힘든 코미디극에 도전한 이유는 명확했다. 배우로서의 ‘스펙트럼’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준수는 자기한테 잘 맞는 것만 골라서 한다’는 평가를 알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 작품까지 잘 해내면 더 이상 그런 말이 안 나오겠다 싶었다. 캐스팅 기사가 떴을 때 모두가 ‘엥? 김준수가 왜?’라며 의아해하셨는데, 공연이 끝나고 나서 ‘잘했다’는 소리를 들으니 정말 뿌듯하다. 주위에서 편한 길 가라고 말려도 나는 도전하는 게 재밌다.”

 

그는 비틀쥬스가 주는 묵직한 메시지에 대해서도 애정을 드러냈다. “단순히 웃고 끝나는 게 아니라, 죽음을 역설적으로 다루며 살아있을 때 삶을 더 소중히 대하자는 따뜻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좋은 작품에 참여하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무대 위에서 팔다리를 떼어내고 온몸을 비틀며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김준수를 보고 있으면, 그가 겪었을 ‘현타’의 시간들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케 한다. 자신을 완벽히 내려놓고 ‘기세’로 일궈낸 그의 비틀쥬스는, 그가 왜 대체 불가능한 배우인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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