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국내 극장가 화제는 한국 영화 ‘만약에 우리’와 ‘신의 악단’의 예상 밖 쾌거다. ‘만약에 우리’는 7일까지 245만4260명, ‘신의 악단’도 106만5870명을 동원한 상황. 이중 첫 반응은 신통치 않았으나 상당한 뒷심을 보여줘 결국 100만 관객을 돌파한 중·저예산 영화 ‘신의 악단’ 쪽에 시간이 지날수록 큰 관심이 모인다. 손익분기점은 대략 70~75만 관객 선으로 이미 돌파한 지 오래고, 여전히 일간 흥행 2위를 지키고 있어 더욱 그렇다.
‘신의 악단’은 기독교 영화다. 그중에서도 북한 실태와 연결한 설정. 대북 제재로 돈줄이 막힌 북한에서 국제사회의 2억 달러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북한 보위부가 가짜 기독교 찬양단을 급 조하며 벌어지는 얘기를 다뤘다. 북한이탈주민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해 제작됐다. ‘공조’ ‘육사오’ ‘사랑의 불시착’ 등 북한 관련 콘텐츠 자문을 맡아온 작가들도 각색을 담당했다.
크게 보면 ‘신의 악단’ 성공도 근래 극장용 영화의 핀포인트 전략을 충실히 따른 결과라 볼 수 있다. 대중이 ‘다른 레저거리가 떠오르지 않아’ 극장을 찾던 시대는 지나고, 점차 ‘그 영화를 꼭 봐야만 하는 사람들’만 극장을 찾는 현실에 적응한 콘텐트란 얘기다. 사실상 마니아 전략에 더 가까워진 셈이다. 지난 한 해를 휩쓴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만큼이나 기독교 등 종교 관련 콘텐트도 비슷한 맥락에서 그 흥행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 지난해 7월 개봉한 기독교 애니 메이션 ‘킹 오브 킹스’가 예상을 깨고 132만 관객을 동원한 것도 단순히 미국서 흥행에 성공 했다는 소위 ‘국뽕’ 요소 탄력을 얻은 것만은 아니었단 방증이 되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기독교 영화 흥행 신화가 쓰인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란 부분이다. 기독교 영화 전성기, 아니 종교영화 자체의 전성기는 엄밀히 1980년대였다. 당시 개신교 계열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낮은 데로 임하소서’ ‘죽으면 살리라’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 가톨릭에서도 ‘초대받은 사람들’ ‘초대받은 성웅들’ 등이 나왔고, 불교 계열에서 역시 ‘만다라’부터 ‘아제 아제 바라아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등을 탄생시켰다. 심지어 증산도 영화 ‘화평의 길’, 무속신앙 관련 ‘피막’ ‘불의 딸’ ‘태’ 등도 등장했다.
1980년대엔 왜 그리도 종교영화들이 쏟아져 나온 걸까. 개신교 중심 어마어마한 기독교 교세 확장이 이뤄지고 경제 성장과 함께 정신세계 자체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한층 높아지던 시절 이란 배경 외에, 1980년대는 한국 영화의 절대 위기 시점이란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 한국 영화산업 자체가 생존 위협을 받는 시점이다 보니, 앞서 언급했듯 ‘그 영화를 꼭 봐야만 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똑같은 핀포인트 전략으로 종교영화가 선택돼 영화산업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주던 시절이란 것. 그렇게 영화산업과의 상부상조 협동체제가 이뤄져 한국 영화 명맥을 이어냈다.
1980년대 상황은 확실히 심각했다. 할리우드 영화나 홍콩 영화 등 해외영화 수입이 증가함에 따라 한국 영화에 대한 대중의 애착과 신뢰는 끝없이 추락했다. 1970년대만 해도 그 당시 유행하던 ‘바보들의 행진’ 등 청춘영화, ‘고교얄개’ 등 청소년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등 호스테스영화 등이 받쳐주며 한국 영화 시장점유율 50%를 넘는 해도 없지 않았지만, 1980년대엔 단 한 번도 해외영화를 넘어선 적이 없었다. 겨우겨우 ‘애마부인’ ‘변강쇠’ ‘뽕’ 등 에로영화 프랜차이즈로 버텨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한국 영화에 대한 인식은 점차 악화 일로를 걸었다. 그런 식으론 도저히 루카스-스필버그, 성룡-주윤발의 시대에 대항할 수 없었던 셈이다.
그런 흐름이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져, 1992년 한국 영화시장의 한국 영화 점유율은 18.5% 까지 떨어졌다. 이런 때 시장 한 켠을 받쳐주던 게 저 종교 영화들이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만다라’ 등 히트작들도 쏟아졌고, 무엇보다 일정 수 이상의 탄탄한 관객 베이스를 보장해 준단 부분이 컸다. 그리고 지금이다. 1980년대가 한국 영화의 위기였다면, 지금은 한국 영화 해외영화 할 것 없이 극장용 영화 자체의 위기 상황이다. 미래 미디어 지형이 향후 어떤 식으로 변모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어찌 됐든 지금은 산업 붕괴를 막기 위한 연착륙 전략으로서 종교영화도 중급영화 시장에서 충분히 역할 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트렌드성 짙은 블록버스 터들은 그 나름의 역할을 담당해야겠지만, 산업 밑바탕이 되는 최저한도 보장 노선에서 종교 영화를 비롯한 핀포인트 전략 상품들이 활약해야 한단 얘기다.
끝으로, 화두가 된 ‘신의 악단’을 좀 더 살펴보자. 일단 북한 관련으로 풀어내는 기독교 영화는 그 접근 차원에서 역사가 짧지 않다. 2008년 미국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에도 출품됐던 ‘크로싱’이 먼저 떠오른다. 2014년 북한 지하교회와 인권 실태를 다룬 ‘신이 보낸 사람’이 당시로서 깜짝 흥행 수준이었던 42만 관객을 동원한 적도 있다. 한편, ‘신의 악단’이 찬송가를 통해 일종의 뮤지컬적 효과를 내는 부분도 사실 방법론 자체는 꽤 오래됐다. 앞선 1980년대 기독교 영화들이 많이 설정한 방식이며, 그런 탓에 1982년 작 ‘죽으면 살리라’에선 애초 가수 이자 뮤지컬배우인 윤복희를 캐스팅하기도 했다.
이렇듯 오랜 형식을 조합한 형태임에도 흥행 성공에 이른 건, 점차 마니아 시장화되는 한국 영화시장 흐름 외에 단순히 그런 형식 자체가 ‘오랜만’이기에 들어맞았단 해석도 가능하다. 남발하면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상황처럼 해당 종교의 신자들조차 외면하는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참고해 볼 만한 게 미국 사례다. 2006년 작 ‘믿음의 승부’ 이후 꾸준히 중급영화 시장에서 활약해 온 셔우드 픽쳐스처럼 다양한 소재를 개발해 볼 필요가 있고, 근래 ‘사운드 오브 프리덤’ ‘카브리니’ 등으로 화제가 된 엔젤 스튜디오처럼 기독교를 둘러싼 정치 지형도와 맞물려 다양한 이슈들을 소화하는 방향도 있을 수 있다.
한 번 성공했다고 계속 똑같이 나아가선 곤란하고 그를 바탕으로 꾸준히 진화를 거듭해야 한단 얘기다. 사실상 모든 대중문화 콘텐츠에 해당하는 금언이겠지만, 생존 위기에 놓인 한국 영화산업 허리에 해당하는 중급영화 시장 차원에선 더더욱 절실한 자세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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