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실용성 더한 상품 선봬
팬덤 연령 높아지며 소비방식 변화
요즘 뭐가 뜨는지 모르겠다고요? 지금 세대가 열광하는 ‘새로운 장면’을 대신 찾아가봅니다. 변하는 세대, 달라진 감각. 지금 세상의 ‘새로운 장면’을 기록합니다. <편집자주>
“이 키링이 세븐틴 굿즈라고? 요즘 아이돌 굿즈는 이렇게 귀엽게 나오는구나.”
외형은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다. 알고 보니 세븐틴 멤버 ‘준’을 대표하는 미니틴 캐릭터 ‘열닫잠’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단순한 캐릭터 키링처럼 보이지만, 알아보는 팬덤끼리는 자연스럽게 결속된다.
최근 K팝 팬덤에서는 이른바 ‘일코(일반인 코스프레)’형 소비가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좋아하는 마음은 간직하되, 사회적 역할과 일상 속 맥락에 맞춰 표현의 수위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취향 문제가 아니라 K팝 유통 구조 자체를 바꾸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 팬덤 소비가 응원봉이나 슬로건 같은 ‘노출형’ 아이템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비노출형’이 대세다. 요즘 아티스트 캐릭터 IP 팝업을 둘러보면 아이돌과 전혀 상관 없는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나 캐릭터 숍에 가깝다.
일상 속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의류는 기본이고 심지어 배드민턴 세트, 선글라스, 괄사, 목욕가운, 다도용품, 냄비와 프라이팬까지 등장했다. 물론 아이돌 멤버의 얼굴이나 이름은 전면에 나오지 않는다. 굿즈들은 출근길 가방, 회사 책상, 집 안의 소소한 물건 속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드러낸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성인 팬덤의 영리한 선택
그룹 세븐틴을 좋아하는 30대 회사원 A씨는 가방에 포토카드 대신 개구리 캐릭터 키링을 단다. 멤버 디에잇이 제작에 참여한 캐릭터 ‘디팔이’다. 팬들 사이에서는 즉각적으로 알아보는 상징이지만,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귀여운 소품이다.
A씨는 “예전에는 포카(포토카드)를 걸고 다니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굳이 설명해야 하는 순간들이 잦아지더라. 굿즈를 사줄 것도 아니면서 훈수를 두는 사람도 늘었다”며 “다만 캐릭터 IP는 회사나 일상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된다. ‘유난’으로 보이지 않아도 돼 너무 편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인식은 성인 팬층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아이돌 팬이라는 정체성이 불편해지는 순간, 분명히 있다. 이제는 팬덤 활동이 특정 연령대의 전유물로 인식되지 않지만 과도한 노출에 대한 부담은 여전히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내가 만족하기 위한 소비’를 선택하게 됐다.
◆캐릭터 IP, 팬덤의 ‘분신’이자 대중적인 ‘브랜드’
이 흐름의 중심에는 완성도 높은 캐릭터 IP가 있다. 아티스트의 세계관과 감정을 담으면서도 외형적 부담을 줄인다. 업계 관계자는 “K팝 캐릭터 IP는 더 이상 팬굿즈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예를 들어 파우치와 의류·문구류는 굿즈이면서 동시에 생활용품”며 “일상에서 사용 빈도가 높을수록 재구매와 확장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진다”고 분석했다.
◆숫자가 증명하는 K팝 IP의 파워
이 같은 변화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하이브·SM·JYP·YG 등 국내 4대 엔터테인먼트사의 굿즈 및 MD 매출은 2025년 처음 1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된다. 팬덤 소비가 공연과 앨범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 속 라이프스타일 영역으로 확장되며 기획사 수익 구조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현재 이 흐름을 주도하는 기획사로 하이브를 꼽는다. 하이브의 경우 2019년부터 글로벌 팝업스토어를 본격 운영해 왔다. 지난해까지 전 세계 19개국 39개 도시에서 71개의 팝업스토어를 열어 누적 방문객 174만명을 기록했다. 2025년 상반기에만 63만 명이 하이브 팝업을 찾았다. 단일 팝업 기준으로는 세븐틴 광저우 팝업이 9만 명을 넘겼다. 이제 아이돌 캐릭터 IP 팝업은 단순 굿즈 판매를 넘어, 하나의 관광 콘텐츠로 기능하는 규모가 됐다.
보이넥스트도어의 캐릭터 ‘쁘넥도’ 홍콩 팝업에는 2만 5000여 명이 몰렸고,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캐릭터 ‘뿔바투’ 팝업 역시 시카고·방콕·싱가포르에서 총 2만여 명의 방문객을 기록했다.
하이브 측은 “투어 일정이 없는 도시에서도 팝업을 열어 팬과의 접점을 유지한다”며 “팝업은 앨범과 투어 사이 공백을 메우는 유통 장치이자, 팬 경험을 지속시키는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오프라인 유통시장에서도 변화는 분명하다. 최근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열린 보이넥스트도어 쁘넥도 팝업은 오픈 첫 주말부터 사전 예약이 마감되며 2주 내내 인산인해를 이뤘다.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세븐틴 ‘홀리데이 위드 미니틴’ 팝업 역시 전 회차 예약이 조기 마감됐다. 평일 방문객 다수는 성인 팬이었다. 이날 만난 한 방문객은 “미니틴 굿즈는 회사 책상에 올려놔도 부담 없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도 하이브와 글로벌 K팝 팬덤을 겨냥한 대규모 시즌 그리팅 팝업스토어를 열어 화제가 됐다.
유통업계에서는 “K팝 팝업은 체류 시간과 구매 전환율이 모두 높은 콘텐츠”라며 “이는 쇼핑몰을 단순 상업 공간이 아니라 문화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캐릭터 IP가 만든 ‘얼굴 없는 비노출형 제품’
캐릭터 IP의 원조는 방탄소년단(BTS)과 IPX가 함께 선보인 ‘BT21’이다. 이를 기점으로 K팝 캐릭터는 ‘팬들만 아는 캐릭터’에서 ‘누구나 써도 되는 브랜드’로 진화했다. 팬덤의 정서적 결속력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한 이 사례는 K팝 IP 비즈니스의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IPX는 캐릭터 기획 단계에서부터 ‘팬이 아닌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디자인’을 핵심 기준으로 삼아 왔다. IPX는 “과거에는 아티스트의 외형을 그대로 차용한 캐릭터가 주류였고, 이는 대체로 팬덤 내부에서만 소비되는 한계를 가졌다”며 “반면 BT21은 기획 초기부터 멤버들이 직접 디자인에 참여하고,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며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IPX 측은 이러한 접근이 팬들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직접 만든 분신’이라는 정서적 애착을 제공하면서도, 일반 대중에게는 디자인적으로 완성도 높은 캐릭터로 인식되도록 심리적 진입 장벽을 낮췄다고 설명한다.
IPX는 이후 ▲아이브의 ‘미니브 미니니’ ▲NCT드림의 ‘드리미즈’ ▲에이티즈의 ‘마이티즈’ ▲제로베이스원의 ‘제로니’를 통해 공식을 반복한다. 캐릭터 IP는 팬덤 안에서는 연결고리로 작동하고, 팬덤 밖에서는 귀여운 아이템으로 소비된다.
IPX는 캐릭터 IP가 글로벌 브랜드로 안착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으로 ‘보편적 감성’과 확장성을 꼽는다. ▲일상에서 반복 사용이 가능한 실용성 ▲팬 여부와 무관하게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디자인 완성도 ▲시즈널 이슈와 트렌드에 맞춘 빠른 MD 기획력이 결합되며 캐릭터는 더 이상 팬덤 내부에 머무는 굿즈가 아닌,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IP성패, 아티스트 참여가 만드는 결정적 차이
캐릭터 IP의 성패를 가르는 또 하나의 축은 아티스트의 직접 참여다. 단순 라이센스 상품과 달리, 아티스트가 기획과 설정에 관여한 경우 팬들의 몰입도는 확연히 달라진다.
IPX는 아티스트 참여에서 비롯되는 가장 큰 시너지를 진정성과 고유한 창작 감각으로 본다.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캐릭터는 단순한 비주얼을 넘어, 그들만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와 감정을 지닌 존재로 확장된다. 이는 팬들의 몰입도와 애착을 높이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최근 IPX가 지드래곤과 함께 선보인 ‘조앤프렌즈(ZO&FRIENDS)’도 여기에 부합한다. 실제 지드래곤은 IPX와 2년에 걸쳐 기획부터 디자인, 네이밍, 세계관까지 함께 만들어나갔다. 조앤프렌즈는 이후 다양한 브랜드와의 확장성을 입증하며 캐릭터 IP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캐릭터를 넘어 아예 아티스트 자체를 브랜드화한 사례도 있다. 르세라핌은 아티스트의 메시지를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문법으로 풀어내며, 하나의 브랜드로 소비되는 흐름을 보여준다.
르세라핌은 2023년 4월 첫 정규 앨범 발매와 함께 라이프스타일 머치를 처음 선보였고, 이후 매년 ‘신상’을 선보이고 있다. 첫해에는 애슬레저룩과 액세서리를 중심으로, 2024년에는 아웃도어 룩을 일상복처럼 풀어낸 ‘고프코어’ 콘셉트로 라인업을 확장해 패션·라이프스타일 아이템 30여 종을 선보였다. 자동차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피치스’와의 협업 역시 팬덤을 넘어 일반 소비자까지 끌어안은 사례다. 2024년에는 아예 멤버들이 제작 전반에 참여한 공식 캐릭터 ‘핌즈 클럽’을 론칭해 캐릭터 IP까지 확장했다.
◆캐릭터 굿즈, 성인 팬덤이 만든 새로운 균형점
캐릭터 굿즈의 부상은 성인 팬들이 선택한 가장 현실적인 애정 표현 방식이다. 사회인으로서의 일상을 유지하면서도 취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욕구가 K팝 소비를 공연장 밖 일상으로 확장시켰다. ‘알아보는 사람끼리만 통하는’ 비노출형 소비 역시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를 생활 영역으로 옮겨놨다.
그 결과 아티스트는 단발성 유행을 넘어 장기적으로 소비되는 ‘라이프스타일 아이콘’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K팝 산업의 새로운 구조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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