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언 디자이너
배달 환경 반영 기능성 웨어로
라이더 동선·불편 사항 등 체크
4~6번 샘플링 단계 거쳐 탄생
박준영 디자이너
안전 장비는 전문 업체와 협업
신제품 기획땐 라이더복 착용
배달 체험 통해 현장 테스트
안채빈 디자이너
배민 브랜드 상징 민트색 웨어
소속감·책임감 동시에 일으켜
소비자 신뢰도 높이는 효과도
배달의민족 라이더들은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띈다. 민트색 조끼와 헬멧, 탑박스까지 한 톤으로 맞추고 도심을 가로지른다. 브랜드 컬러 하나가 서비스의 얼굴이 됐다. 바쁜 일상을 보내는 사람에게 맛있는 식사와 디저트, 심지어 생필품을 가져다주는 라이더들의 민트색은 반가움의 상징이다.
이 배경에는 라이더를 위한 브랜드 ‘배민라이더웨어’를 전개하는 우아한청년들 브랜드확산팀이 있다. 이곳 디자이너들은 워크웨어나 아웃도어 의류가 아니라 ‘배달을 위한 옷’을 설계한다. 안채빈·이재언·박준영 디자이너는 ‘라이더가 더 안전하고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옷’을 목표로 제품 기획부터 생산·품질관리까지 전 과정을 직접 챙긴다. 이들은 “수익보다 중요한 건 라이더와의 신뢰”라고 입을 모은다.
지금까지 출시된 배민라이더웨어는 제품은 19종에 이른다. 회사는 직접 모든 것을 만들기도 하고, 오랜 제조 기술을 보유한 전문 기업과 힘을 합쳐 고퀄리티의 제품을 선보인다.
◆워크웨어는 있는데, 왜 라이더웨어는 없을까
“작업복은 많은데, 왜 라이더 전용 옷은 없을까.”
배민라이더웨어는 이름만 보면 일반 커머스 브랜드 같지만 출발부터 다르다. 시작은 단순한 의문이었다. 박준영 디자이너는 ‘현장에서 느낀 불편’을 계기로 문제의식을 키웠다. 그는 코로나19 시기 배민커넥트에 나서던 당시 다이소에서 구매한 보냉가방을 들고 배달을 뛰어야 했다. 배달 수요는 폭발했지만 장비는 임시방편에 가까웠다.
이재언 디자이너에게 배달은 생활과 맞닿아 있었다. 부모님이 배달음식을 취급하는 식당을 운영했고 대학 시절에는 배민커넥트로 용돈을 벌었다. 그는 “이제는 이 생태계 안에서 직접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라이더웨어 화보와 비주얼 전반을 맡고 있는 안채빈 디자이너는 B2C 브랜드 출신이다. 고객 피드백을 접하기 어려웠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라이더와 가까이에서 의견을 주고받는다. 그는 “현장에서 ‘이 조끼 진짜 좋다’는 말을 들을 때 큰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했다.
우아한청년들은 라이더를 동반성장 파트너로 정의한다. 이 때문에 라이더웨어 역시 ‘얼마를 남길 것인가’보다 ‘얼마나 합리적으로 제공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배달의민족이 그동안 라이더에게 각종 물품을 무상 지원해온 이력 때문에 초반에는 ‘상업화로 방향을 튼 것 아니냐’는 오해도 있었다. 이들은 제작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상세페이지와 앱 공지를 통해 가격 산정과 원가 구조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우려를 줄였다.
세 사람은 “배민라이더웨어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브랜드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브랜드의 진심은 꾸준한 설명과 실천에서 나온다”며 “원가를 유지하면서도 품질을 높인 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것이 우리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여름엔 아스팔트 열기, 겨울엔 손 얼었다”… 극한의 현장 테스트
브랜드확산팀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의류를 만들기 위해 책상보다 도로 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신제품을 기획할 때마다 디자이너들이 직접 라이더복을 착용하고 배달 체험에 나선다. 더운 날 아스팔트 열기에 팔이 그을리고 겨울이면 손끝이 얼어붙는다. 라이더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디자이너에게는 문제를 발견하는 첫 단계다. 팀원들은 이 과정에서 얼굴에 일광화상을 입기도 했다. 그는 “유독 우리가 현장에 나가는 날 현장 날씨가 혹독하다”고 회상했다.
현장에서 얻는 인사이트는 곧바로 제품에 반영된다. 티셔츠 하나를 만들 때에도 10여 가지 원단을 입고 뛰어보며 통기성과 땀 건조 속도, 피부 쓸림 여부를 수치로 축적한다. 팔을 뻗을 때 당김이 있는지, 주머니 깊이는 충분한지, 비에 젖었을 때 무거워지지 않는지 등은 현장에서만 드러나는 문제다. 안채빈 디자이너는 “디자인은 책상 위가 아니라 바깥에서 나온다”며 “우리는 공장과 도로를 함께 뛰는 팀”이라고 말했다.
이재언 디자이너는 라이더웨어가 기존 운동복이나 기성복과 다른 점을 ‘환경과 시간’에서 찾는다. 운동복은 짧은 활동 시간에서의 착용을 전제로 한다. 반면 라이더는 하루 종일 비·먼지·바람을 맞는다. 쉽게 때가 타지 않아야 하고 내구성이 뛰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다. 예를 들어 반사 소재가 들어가는 위치를 조금만 바꿔도 야간 시인성은 크게 달라진다.
◆1만 건 넘는 라이더 의견, 데이터로 쌓다
배민라이더웨어의 핵심 경쟁력은 ‘배달 환경을 그대로 반영한 기능성’이다. 현장에서 포착한 불편 개선이 곳곳에 반영된다. 우아한청년들은 여름·겨울 커피트럭 이벤트를 열고 라이더의 생생한 반응을 듣는다. 세 사람은 “보온·보냉 성능, 통풍, 가벼움 같은 요소가 단순 편의가 아니라 ‘생존 조건’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고 말했다.
출시 전 제품을 라이더에게 먼저 보여주는 ‘우아한 라이더 모임(우라모)’도 운영한다. 이 자리에서 포켓 위치나 수납 구조에 대한 의견이 쏟아진다. 전사 품평회에서는 직원들이 직접 샘플을 만져보고 원단과 디테일을 검토한다.
라이더 의견 수집은 한두 번의 간담회로 끝나지 않는다. 우아한청년들은 라이더 커뮤니티, 배민커넥트비즈 협력사, 앱 설문, 오프라인 행사 등을 통해 꾸준히 피드백을 모아 왔다.
지금까지 수집한 라이더 의견은 1만 건을 훌쩍 넘는다. 이 데이터는 단순한 경험 공유에서 그치지 않고 제품 개발의 기준점으로 쓰인다. 이 같은 방식으로 탄생한 첫 제품은 헬멧과 조끼다. 헬멧은 바이크를 탈 때 필수품이고, 조끼는 라이더들의 소지품 보관 역할을 톡톡히 하는 아이템이다. 배민 조끼는 출시 직후 완판을 이어가며 대표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배민조끼는 ‘가성비 좋은 배달 조끼가 있으면 좋겠다’는 요청에 만들어진 제품이다. 팀은 꼭 필요한 기능만 남기고, 가격은 기존 제품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춰 완판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배민라이더웨어 의류에 부착된 자석 고리와 다수의 포켓, 조절 스트랩 등은 라이더 의견을 토대로 추가한 기능이다. 이재언 디자이너는 “라이더가 어떤 동선을 밟고 어디에서 불편을 겪는지 관찰한 내용이 디자인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올 겨울 출시한 패딩은 라이더의 동작을 기준으로 설계했다. 핸들을 잡은 자세에서 팔이 당기지 않도록 일반 기성복보다 소매 길이를 길게 잡고 어깨와 상단부에는 민트색과 반사띠를 적용해 야간 시인성을 높였다. 글로벌 유명 스포츠웨어와 같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고스펙 제품이지만 가격은 5만원 대다.
◆배달환경 그대로 반영한 기능성 디자인
하나의 제품은 4~6차례 샘플링 단계를 거친다. 디자이너들이 직접 공장을 찾아다니고 해외 생산처와 원가 협상을 진행하며 가격을 낮춘다. 생산처도 단일 공장이 아니라 여러 곳을 비교해 가장 의도에 맞게 구현한 곳을 선택한다. 중국의 수많은 공장들을 돌아다닌다. 세 디자이너는 “현장을 알아야 디자인할 수 있다”며 “우리는 디자이너이자 배달원이고 물류 담당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박준영 디자이너는 “안전과 직결된 장비는 전문 제조사와 협업하는 방식이 적합했다”며 “국내 헬멧 제조사 ‘홍진’과 함께 협업해 제품을 출시했다”고 소개했다.
안채빈 디자이너는 “좋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을 동시에 잡는 게 제일 어렵다”며 “힘들게 만든 뒤 ‘착한 가격인데 부자재까지 신경쓴 게 느껴진다’는 후기를 보고 정말 보람을 느꼈다”며 웃었다.
◆민트색이 가져온 신뢰, “배민이다”에서 “믿을 수 있다”까지
배민라이더웨어의 핵심 가치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세 디자이너는 한 목소리로 ‘신뢰’라고 답했다. 민트색 장비가 갖는 상징성도 여기에 더해진다. 거리 한복판에서 민트색 조끼나 가방이 보이면 시민들은 곧장 ‘배민’을 떠올린다. 이재언 디자이너는 “이같은 인지가 곧 안심과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수치도 이를 뒷받침한다. 우아한청년들이 배달앱 이용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80%가 민트색 라이더 장비에서 신뢰도·호감도·안전성을 느낀다고 답했다. 브랜드 인지도가 라이더 개인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는 구조다. 라이더 커뮤니티에는 ‘배민 조끼를 입고는 신호위반을 못 하겠다’는 글도 자주 올라온다. 라이더웨어가 소속감과 책임감을 동시에 일으키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안채빈 디자이너는 “민트색 라이더웨어를 입은 라이더가 보이면 초등학생들은 적극적으로 반가움을 표현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며 “브랜드를 상징하는 컬러와 의류가 라이더에게 자부심으로 이어지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라이더웨어는 패션 영역으로도 스며들고 있다. 배민라이더웨어 론칭 이후, 도시 위 라이더를 콘셉트로 한 광고·화보가 늘고 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와 협업한 패션 화보, 아이돌이 배달 가방을 메고 무대에 오르는 연출 등도 등장했다. 세 디자이너는 “워크웨어가 패션 장르가 된 것처럼 라이더웨어도 하나의 시장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들은 “그 시작점에 우리가 서 있다는 책임감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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