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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 끝없는 복제∙변형…옥승철, 원본의 의미를 묻다

입력 : 2025-09-17 17:44:59 수정 : 2025-09-17 17: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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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타이레놀이 설치된 모습. 신정원 기자

옥승철 작가가 디지털 시대 속 원복과 복제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옥 작가는 다음 달 26일까지 롯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롯데뮤지엄에서 첫 개인전 ‘프로토타입(PROTOTYPE)’을 진행한다.

 

이번 첫 개인전은 그동안 ‘왜 비슷한 표정의 캐릭터를 그릴까’, ‘작품을 아우르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생각했던 궁금증을 해소하는 시간이다. 서브컬처에 어울리는 캐릭터, 일본풍이라는 단편적인 해석만 오갔을 뿐 옥 작가의 작품에 대한 해석이 제대로 전달된 적은 없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SNS와 서브컬처 팬들 사이에 회자된 그의 이미지가 어떤 맥락에서 탄생했고, 어떤 의미로 변주돼왔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전시명부터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프로토타입은 본래 대량 생산 전 시험 제작되는 시제품을 뜻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옥 작가는 하나의 고정된 원형이 아닌 계속해서 호출되고 변형될 수 있는 유동적인 데이터베이스로 해석한다. 디지털 이미지가 단 하나의 완성본이 아닌, 무수한 버전으로 존재하고 유통되는 오늘날의 이미지 환경을 반영한다.

높이 2.8m에 이르는 신작 조형물 프로토타입. 신정원 기자
조형물 프로토타입을 회화로 표현한 모습. 신정원 기자

400여평에 이르는 공간에 꾸며진 전시는 가운데 십자 복도를 중심으로 프로토타입-1, 프로토타입-2, 프로토타입-3으로 구성됐다. 걸어들어가는 복도부터 독특한 분위기다. 크로마키 초록색을 모티프로 한 녹색 조명이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상징함과 동시에 전시장으로 로딩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전시에선 그동안 그림으로만 관객을 만나왔던 작가의 색다른 조형 전시를 감상할 수 있었다. 높이 2.8m에 이르는 대형 조형물 세 점이 가장 먼저 관객을 맞이했다. 무채색과 무표정한 얼굴의 작품은 기본값이라는 시각적 조건을 보여줬다. 이어지는 작품들이 이 모습을 기반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것을 전하고자 함을 알 수 있었다.

 

헬멧과 고글을 착용한 인물을 그린 회화 시리즈도 눈에 띄었다. 그중 두 얼굴이 겹쳐있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이는 주변 환경과 타인을 모방하며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자아의 상태를 나타낸다. 왜 헬멧과 고글이었을까. 눈은 가렸지만 입은 뚫려있는 장비, 이는 온라인상에서 익명성을 방패 삼아 책임 없는 말로 갈등을 유발하고, 타인과의 경계를 흐리는 현대적 소통의 이면을 드러낸 것이다. 이 역시 전시의 주제와 일맥상통한다. 입에서 출발한 말이 어떻게 증폭되고 확산되며, 결국 정체성과 관계마저 와해시킬 수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옥승철 작가의 헬멧 시리즈. 신정원 기자

옥 작가의 작품을 보면 분명 붓칠로 색을 입힌 회화지만 붓 자국이 하나도 안 보일 정도로 깔끔하다. 벡터 그래픽으로 먼저 제작한 이미지를 물감으로 칠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도 디지털 이미지의 가벼움과 예술 작품의 무거움이 충돌하며 발생하는 모순을 드러낸다. 하나의 기본값을 다양한 형태의 초상으로 만드는 그 과정조차도 작가는 의미를 두고 있다. 

 

옥 작가는 “작품들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변형되는 샘플링의 과정에 존재하며, 관객은 각자 자신이 가진 원본을 향해 접근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며 “이를 통해 작가와 관객 모두가 복제된 이미지를 만들고, 유통하며, 소비하는 동일한 흐름 위에 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특히나 이번 전시는 작가의 초기 작업물부터 신작까지 아우른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지금은 누군가의 소장인 그림도 한자리에 모아 작가의 예술 세계를 조망한다. 

옥승철 작가의 첫 개인전 프로토타입 전시장 입구 전경. 신정원 기자


신정원 기자 garden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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