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왕이 된 남자’·‘신과함께’ 시리즈 굵직한 흥행작
"원작 작가 만나 영화화 작업 성사"
"원작의 광팬, 메시지 이어가려 노력"

한국영화는 유례없는 침체기를 겪고 있다. 손익분기점 돌파는커녕 100만 관객 돌파도 쉽지 않다. 업계의 시선은 자연스레 새로운 돌파구에 쏠려 있다. 올해 한국영화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이 주목을 한몸에 받는 이유다.
이 기대작의 중심에는 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의 원동연 대표가 있다. 기대만큼이나 제작을 이끈 원 대표의 어깨도 무겁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광해 왕이 된 남자’·‘신과함께’ 시리즈를 통해 수천만 관객을 극장으로 이끌었던 원 대표는 위기의 영화계에 새로운 상상력과 기획력을 불어넣을 준비를 하고 있다.
원 대표는 영화를 통해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평범한 인물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를 선보이며 젊은 세대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전독시’가 각기 다른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길 바라는 그의 진심이 이번 작품에 고스란히 담겼다.

원 대표는 23일 “모든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불안하고 하루에도 감정이 5만번은 요동친다. 거의 조울증에 가깝다”고 웃으며 작품 공개를 앞둔 소감을 밝혔다. 이어 “영화 일을 30년 넘게 하면서도 이렇게 사명감이나 책임감을 갖고 영화를 만들어 본 적은 없다. 저는 단지 상업 영화 제작자니까 투자해 주신 분들이 손해 보지 않으면 좋겠다는 게 기본적인 소망인데 본의 아니게 지금 대한민국의 영화인들이 저희 영화를 응원한다”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원 대표는 “전독시가 잘 돼야 극장이 부활하고 극장용 영화가 건재하다는 걸 입증할 수 있다는 영화인들의 바람을 잘 알고 있다”며 “끝까지 영화를 더 잘 만들어서 많은 관객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그가 느끼는 막중한 책임감을 전했다.
영화는 10년 동안 연재된 소설처럼 멸망해버린 현실에서 유일하게 결말을 알고 있는 인물 김독자가 소설 속 주인공 유중혁과 함께 세상을 구하기 위한 대장정을 그린 영화다. 배우 이민호·안효섭·채수빈·신승호·나나·지수 등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제작비는 올해 개봉하는 국내 영화 중 가장 높은 300억원이 투입됐다.

동명의 원작 웹소설은 2018년 연재 이후 누적 조회수 2억회를 돌파했다. 웹툰 또한 전 세계 20억 이상의 누적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웹소설계 초대형 IP로 꼽힌다. 영화화의 출발점은 2019년 원 대표 지인의 추천이었다. 당시 신과함께로 쌍천만 흥행 기쁨을 만끽하고 있던 원 대표에게 지인이 “웹소설계의 레전드로 인정받는 IP가 있다”고 전독시를 추천했다. 원 대표는 “그래서 읽어 봤더니 진짜 재미있더라. 저는 사실 게임도 잘 모르고 회귀물 같은 작품을 본 적이 없는데도 나 같은 사람까지 재밌게 읽을 정도로 새로웠다”고 전독시를 처음 접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전독시에 반한 원 대표는 직접 웹소설 연재 플랫폼에 연락을 취해 원작 작가와 만났고 영화화 작업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원 대표는 “CG(컴퓨터 그래픽)와 시각 효과가 많은 블록버스터 작품을 만든다는 건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당시에 ‘신과함께만 하면 그만해야지’ 했었는데 전독시를 만나게 되니까 거기에 또 확 빠져버려서 운명처럼 이 작품을 하게 됐다”고 돌아봤다.
원작 웹소설은 총 551화에 달하는 막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방대한 서사를 2시간의 영화로 압축하려면 각색은 필수다. 원 대표는 “신과 함께보다 10배는 더 길다. 아무리 프랜차이즈 영화라고 해도 한편마다 완결은 돼야 한다. 이야기를 끝맺음하지 않고 영화를 끝내버리면 관객은 ‘이게 뭐야’ 한다. 아무리 이 작품이 연작이라는 걸 관객이 알고 있어도 1편으로서의 완결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각색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원작 작가님에게 영화로도 꼭 가져가야 할 캐릭터라든지 버리면 안 되는 세계관 같은 것을 말해달라고 했다. 다만 영화적인 각색은 필요한데 그럼에도 작품의 세계관이나 철학, 메시지는 저희가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작가 또한 원 대표 말에 동의했고 영화 시나리오 또한 사전에 작가에게 공유됐다.
작가에게 말한 대로 원 대표는 전독시가 주는 메시지를 영화에 고스란히 담으려 애썼다. 애초에 자신이 전독시에 반한 이유를 영상화 작업을 거치면서 소홀히 할 이유가 없었다. 원 대표는 “지금 영화를 관람하는 젊은 세대는 과거보다 훨씬 풍요롭고 발전된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동시에 상실감이 많고 상대적인 박탈감도 많지 않나”라며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은 앞으로도 더 많이 갖고 어려운 사람들은 더 어려워진다. 자기 존재에 대한 의미나 가치를 찾기 힘든 상황”이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주인공 김독자는 지방대를 나와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게임 회사를 다니는 비정규직 직원이다. 자기 존재에 대해서 한 번도 의미나 가치를 가져본 적 없고 어디 가서 주목받은 적도 없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바로 세상을 구한다”며 “전독시가 가진 메시지는 정말 많지만 저와 감독이 집중한 건 전 세계의 젊은 세대에게 ‘당신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사람이다. 당신 같은 사람들이 세상을 구한다. 그러니까 자신을 미워하지 말고 응원하고 스스로를 믿어라’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렇다고 대놓고 위로한다거나 메시지와 철학을 강조하면 보는 사람이 재미가 있겠나”라고 반문하며 “그저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한국에서 이런 새로운 시도를 했구나’하는 마음으로 2시간을 즐기길 바란다. 영화라는 건 일상에 지치고 삶이 힘들 때 해방구처럼 2시간 동안 극장에서 웃고 즐기고 박수 치는 기능만 해도 엄청나게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고 바랐다.
각색하는 과정에서 일부 원작 팬들에게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지수가 연기한 이지혜는 이순신 장군을 배후성으로 둬 무기로 검을 사용하지만 영화에선 총을 사용한다. 원 대표는 “영화가 만약 원작처럼 캐릭터의 배후성을 다 묘사한다면 이야기가 너무나 두터워진다. 배후성이 왜 캐릭터를 선택했는지, 배후성의 의미가 무엇인지 등 이순신 장군처럼 다 아는 배후성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인물의 배후성도 수십개가 나오니까 그걸 일일이 다 설명하기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배후성 묘사를 없앤 캐릭터가 많다”고 해명했다.
또 “굳이 이지혜가 총을 든 이유는 유중혁, 김독자, 정희원 등 다른 캐릭터들이 다 칼을 무기로 든다. 영화에서는 무기의 변별력도 있어야 한다. 이지혜가 칼을 쓰는 캐릭터 중 한 명에 그치는 게 아니라 총으로만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원 대표는 “저와 감독이 원작의 광팬이다. 원작을 미치도록 사랑하지 않으면 이 영화를 왜 만들려고 했겠나. 5년 동안 제 운명을 걸 정도로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만들었다. 원작에 비해 미흡하고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 겸허히 받아들이겠지만 원작의 광팬이 작품을 망가뜨리고 훼손하진 않는다. 원작의 정신과 메시지만큼은 이어가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개봉을 한 달여 앞두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벌써 흥행 바람을 타고 있다. MG(최소금액, 미니멈 개런티) 계약 방식의 해외 배급은 이미 ‘신과함께’를 넘어섰다. IP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큼 영화에 대해서도 해외 기대치가 높다는 뜻이다.
‘미녀는 괴로워’·‘신과 함께’에 이어 또 인기 IP를 영상화했다. 프랜차이즈 영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하는 원 대표다. 그는 “큰 제작비가 들어가는 영화를 선호한다고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사실 어떻게 그러겠나. 손익분기점이 높으면 당연히 엄청난 부담”이라고 말했다. 다만 “신과함께나 전독시 같은 프랜차이즈가 우리나라 영화 시장에 캐시카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어 “지금 할리우드를 먹여 살리는 것도 슈퍼맨·어벤져스 등 다 프랜차이즈다. 일회성의 오리지널 작품도 중요하지만 한국에도 프랜차이즈가 자리매김하게 하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리얼라이즈는 철저한 기획력 중심의 제작사다. 평균 3년 이상의 시나리오 개발 기간을 거친 뒤에야 감독과 배우를 비로소 캐스팅한다. 원 대표는 “광해라는 인물을 2012년에 소환한 이유는 그때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우리에게 진정한 리더란 누구인가 찾는 시기였기 때문”이라며 “지금의 현대인과 맞닥뜨리는 지점은 무엇일지 고민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이 시대에 화두가 될 만한 얘기가 아니면 선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하찮은 것 같고 별 이야기가 아닌 것 같지만 동시대에 사는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선택한다”며 “양극화 속에서 개인화하는 현실 속에서 전독시 주인공 김독자가 ‘새로운 결말을 쓰겠다’며 동료들과 함께하는 이야기가 2025년에 필요하면서도 중요한 메시지로 작용할 것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천만 영화가 즐비하던 과거는 옛이야기가 됐고 올해 최고 흥행 영화 야당은 불과 330만 관객을 모았다. 원 대표는 “이런 상황이 오래되면 영화산업 회복하지 못할 정도의 위기로도 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면서도 “영화산업은 위축되고 쪼그라들 때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이후에 한국 콘텐츠가 가장 섹시해졌다.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을 통해서 한국 콘텐츠가 재미있고 매력적이라는 것이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 우리도 변화가 올 때가 됐는데 모두가 다 고통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제작사는 제작사대로, 투자사는 투자사대로, 극장은 극장대로 서로 조금씩 뼈를 깎는 고통이 동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 고통 없이 산업이 혁신의 길을 걸어갈 수는 없다”며 “과거 우리나라에 일본 문화시장이 개방되면서 출판만화시장이 거의 궤멸했는데 그때 웹툰이 나왔다. 극장을 중심으로 한 한국영화 유통의 방식도 좀 더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특히 “제일 중요한 건 관객에게 만족감을 주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가뜩이나 자기 삶이 힘든데 대중이 사명감으로 영화관을 와야 하나”라고 반문하며 “만족감을 주는 콘텐츠를 만든 다음에 대중이 극장으로 오게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이 한국영화 살리겠다고 자기 돈을 내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봐주지 않는다. 이 힘든 시기에도 영화를 잘 만들 고민을 해야 한다”고 직언했다.

원 대표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긴 영화는 지난해 천만 돌풍을 일으킨 ‘파묘’다. 오컬트가 워낙 마이너한 장르였던 탓에 그 누구도 흥행을 예상하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원 대표는 “관객이 따라가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천만 관객이 넘었다. 그걸 보고 ‘이제 장르의 구분도 없고 우리가 변명할 거리는 아무것도 없구나. 완성도만 있으면 어떤 장르나 고정관념이 상관없이 잘 되는구나’라고 느꼈다”고 떠올렸다. 어떤 장르든 파묘처럼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든다면 관객은 기꺼이 돈을 내고 영화관을 찾는다는 것이다.
원 대표는 “드라마든 판타지든 장르 특성에 맞게끔 제대로 어필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 장르에 맞는 관객이 기대하는 이야기를 잘 만들어야지 그냥 이야기만 잘 만들면 안 된다”며 “꼭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만 실패하는 게 아니라 관객이 기대하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전했다. 완성도뿐 아니라 영화의 절대적인 공급량 문제도 지적했다. 원 대표는 “지금은 제작되는 영화량이 기본적으로 너무 적다. 디폴트 값이 작으니까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 확률도 훨씬 적은 것”이라며 “공급량을 늘리게끔 국가가 도움을 줘야 한다. 마중물이 절실한 상황”이라고도 당부했다.
업계에 30년가량 몸담고 있는 제작자지만 처음부터 영화 프로듀서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경희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한 그는 개그맨과 코미디 작가가 꿈이었다. 원 대표는 “개그맨 시험에서 떨어지고 코미디 작가가 되려고 1995년에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 각본을 썼다. 웃기려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영화가 돼서 30살 늦은 나이에 영화계에 들어왔다”고 영화에 입문한 계기를 회상했다.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영화는 그의 운명이 됐다. 원 대표는 “영화인 중에서 영화를 업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영화를 좋아하니까 영화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저는 완전 행복한 사람이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됐고 직업으로 먹고살 수 있다. 좋아하는 일로 직업으로 삼고 먹고 살 수 있다는 건 엄청 행복한 사람이라고 본다”고 미소 지었다.
제일 보람을 느꼈던 순간을 묻자 원 대표는 “제 이메일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신과 함께’를 본 어떤 관객이 ‘세상이 0.1%쯤 착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제 영화가 세상을 바꾸고 변화를 끌어내지는 못하겠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이 기획의도에 맞게 생각해 준다는 것을 만약에 느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요즘 제가 던지는 화두가 ‘자신에게 잘해라’다. ‘왜 이렇게 자기반성을 많이 하고 스스로를 못살게 굴어서 안달이냐. 세상에서 가장 큰 응원군은 본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저희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끝으로 젊은 영화 제작자나 프로듀서 지망생을 향해 “제가 영화로 성공한 게 43살이다. ‘미녀는 괴로워’ 전까지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모든 꽃이 봄에만 피면 좋겠지만 모든 꽃은 봄에만 필 수 없다”고 운을 뗐다.
이어 “영화는 직업이기도 하지만 저희 후배들에게는 아마 꿈이기도 할 거다. 직업은 바꿀 수 있겠지만 꿈은 바꾸기 힘들다”며 “시장이 안 좋아서 여러 가지로 고통을 겪고 있는 후배들에게 힘내라고, 현실의 문제가 있겠지만 잘 견디고 힘내서 꽃을 피울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꿈을 계속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현실 대신 꿈을 유지하라는 게 어떻게 보면 무서운 말일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 건 축복이라는 얘기는 꼭 해주고 싶다”고 진심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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