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걸렸지만, 그만큼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머릿속에 아로새겼다.
원태인(삼성), 노시환(한화), 김기훈, 변우혁(KIA) 등 쟁쟁한 선수들의 이름이 불렸던 2019 KBO 신인드래프트. 당시 KIA가 2차 1라운드라는 높은 순번에서 지명한 한 우완 투수가 있다. 195㎝의 든든한 신장에서 강속구를 뿌려냈던 덕수고 투수 홍원빈이다.
높았던 기대감, 하지만 기다림은 길었다. 좀처럼 올라오지 않는 경기력 속에 올해까지 햇수로 7년간 1군 마운드를 한 번도 밟지 못했다. 내내 퓨처스리그를 누볐던 그는 51경기서 5승18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10.48(91이닝 106자책점)의 초라한 성적표만 제출했다. 고질적인 문제점인 불안한 제구가 항상 문제였다. 퓨처스에서 소화한 91이닝 동안 내준 볼넷만 110개, 몸 맞는 공도 21개였을 정도로 존 안에 공을 넣기가 너무나 힘겨웠다. 150㎞를 가볍게 넘는 패스트볼에도 그를 쉽게 1군에 부를 수 없던 까닭이다.
긴 기다림이 드디어 끝났다. 지난달 30일 대망의 콜업을 받은 그는 3일 잠실 두산전에서 꿈에 그리던 데뷔전을 치렀다. 팀이 11-2로 크게 앞선 가운데, 9회말을 정리하라는 임무가 떨어졌다. 비록 처음 상대한 김민석을 볼넷으로 내보냈지만, 늠름하게 피칭을 이어갔다. 이선우를 플라이로 잡아내고 김동준에게 안타를 맞아 1사 1,3루에 몰렸다. 여기서 박준순에 희생플라이를 내줘 아쉬운 실점 1개가 쌓였다. 하지만 이어진 대타 김인태를 루킹 삼진으로 솎아내면서 데뷔전을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피칭을 마치고 만난 그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홍원빈은 “상상했던 것만큼 정말 기쁘고 이런 건 아니다. 그래도 7년 동안 준비한 게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한 것 같다. 기다려주신 팬분들과 감독, 코치님 그리고 팀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밝게 웃었다.
이날 그가 던진 투심 패스트볼은 시속 154㎞를 마크하며 KIA 원정팬들의 큰 환호성을 부르기도 했다. 정작 그는 그 뜨거운 함성을 못 느꼈다. 데뷔의 떨림 때문이었다. 그는 “경기에 집중하느라 정말 아무것도 못 느꼈다. 구속도 제대로 못봤다”고 수줍게 미소 지었다.
첫 타자 볼넷의 순간은 역시 아쉬웠다. 꼬리표처럼 붙는 문제점을 시작부터 노출했기 때문일 터. “내가 워낙 볼넷을 많이 주는 투수였기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는 그는 “선두타자 볼넷은 항상 피하려고 한다. 그래도 과거에는 터무니 없는 공을 많이 던졌다면, 지금은 긴장감 속에서도 내 공을 던질 수 있다는 느낌과 손 감각이 생겨서 덜 흔들릴 수 있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어 “다 경험이다. 퓨처스에서도 그런 경기를 많이 해봤다. 코치님들께서 볼넷 안 주려 하지 말고 삼진을 많이 잡으라고 하라는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덕분에 그 다음 걸 생각하면서 투구할 수 있었다”는 씩씩한 한마디도 덧붙였다.
설레는 처음을 드디어 만들어냈다는 성취감이 더 큰 하루다. 그는 “(콜업 이후) 호텔에서 쉴 때도 경기에 나서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도 최대한 ‘언제 던지지’라는 생각보다는 언제라도 나가게 되면 딱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준비하고자 노력했다”고 떨렸던 지난 며칠을 돌아봤다.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이미지트레이닝을 열심히 한 덕에 그나마 긴장을 덜해서 내 공을 던질 수 있었다”는 한마디에는 작지만 확실한 자신감도 엿보였다.
지칠 법한 기다림도 마다하지 않은 그의 부모님도 아들의 설레는 처음을 함께 했다. 홍원빈은 “집이 마침 서울이어서 부모님이랑 형까지 모두 다 와서 오늘 경기를 끝까지 다 보셨다. 감사한 분들이 정말 많지만 11살 때부터 야구 시작해서 지금까지 기다려주신 부모님께 제일 감사하다”는 애틋한 메시지도 띄웠다.
나아갈 일만 남았다. 그는 “1군에서 필승조 형들 보면서 정말 멋있고 섹시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직 많이 멀었지만, 언젠가는 필승조로 팀의 승리를 위해 좀 더 많은 경기를 나가는 게 다음 목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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