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 경쟁력마저 좀먹는 인명 경시 마인드가 버젓이 이 땅에
대한민국에서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이 사랑하는 경쟁력! 그런데 사람 목숨과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사회나 집단은 오히려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극단적으로 국가 간 경쟁력 대결이 펼쳐지는 전장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곤 한다.
1941년 12월 8일. 일본 해군은 함대와 항공모함에 폭격기 등 비행기를 실은 채 북태평양의 차가운 바람과 파도를 맞으며 돌고돌아 비밀리에 하와이에 접근했다. 화창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이날 일본군 전투기와 폭격기가 하와이 진주만에 정박 중이던 미국 태평양 함대를 모조리 폭침시켰다. 일본의 대승이었고 미국에는 치욕의 날이었다. 기습공격의 이점을 살리기도 했지만 일본군 전투기 및 폭격기 조종사들은 오랜 전쟁과 훈련을 거친 베테랑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의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일본군 주력 전투기였던 제로센은 더 빠른 속도와 함께 항공모함에서 이착륙이 쉽게 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가볍게 만들어야 했다. 당연히 총에 맞으면 산산이 부서지곤 했다. 이후 미국과의 공중전에서 제로센은 잇달아 격추당했다. 비행기보다 더 문제는 항공 베테랑들의 손실이었다. 애당초 일본군 수뇌부에게 전투기 조종사들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었던 셈이다. 이후 일본군 수뇌부는 더 최악의 선택을 내린다. 조종사가 모자르자 훈련이 덜된 견습생으로 시작해서 전쟁 말기에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 학생들을 동원해 카미카제(神風∙신풍) 특별공격대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비행기에 폭탄을 실고 적의 군함이나 항공모함을 향해 추돌하는 자살폭격대였다. 제법 미군에게 심리적 충격을 준 이 카미카제 특공대는 전쟁을 지연시키는 데에만 효과적이었다. 미국의 공세를 물리치거나 전세를 역전시키는 등 전략적으로는 무의미한 인명 소모 행위였을 뿐이다.
당시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 육군을 이끌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자서전에서 “조종사라는 고급 인력을 무의미하게 소비하다니. 나였으면 그런 명령을 내린 놈을 그 자리에서 쏴 죽였을 것”이라고 일본군 수뇌부를 비판할 정도였다. 인명 경시는 결국 한 나라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망국에 이르게 한다는 교훈을 보여주는 사례다.
대한민국에서는 전시도 아닌, 평시에 극도로 위험한 시설도 아닌데 자꾸만 일하는 사람이 죽어나가는 일터가 있다. 최근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50대 여성 근로자 A 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상반신이 끼여서 사망했다. 뜨거운 빵을 식히는 작업 과정에서 제품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하는데, A 씨는 벨트가 잘 돌아가도록 윤활유를 뿌리는 과정에서 기계에 몸이 끼인 것이다. 경찰이 확보한 이 공장 노동자 진술에는 공장이 이른바 풀가동 상태일 때에는 컨베이어 벨트가 삐걱대 몸을 깊숙이 넣어 윤활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고 한다. 이번 사고가 나자 대부분의 반응은 비슷했다. “또?” 그동안 SPC 계열사 생산 현장에서 이처럼 사망 및 부상 사고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는 2022년 10월 20대 여성 근로자가 소스 교반기에 끼어 사망했다. 이 공장에서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업 중 손가락이 기계에 끼어 골절상을 당하거나 20대 외주업체 직원이 컨베이어가 내려앉는 사고로 머리를 다치기도 했다. 또 성남 샤니 제빵공장에서는 2023년 8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반죽 기계에 끼어숨졌다. 이 공장 역시 사망 사고 외에도 손 끼임 등 사고가 잇달았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인명 사고가 계속 난다는 건 분명히 원인이 있을 것”이라며 “해당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의아해 했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미 비슷한 문제로 불매운동이 일어나면서 애꿎은 가맹점주들만 손해를 보기도 했다. 요즘 한국의 먹거리 문화는 해외에서 그야말로 핫하다. 이런 상황에서 SPC 공장에서 벌어지는 인명사고는 한국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일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식재료를 이용해 먹거리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가족일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다. SPC는 당장 공장 가동부터 멈추고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 원인을 찾고 바꿔야 할 것이다.
한준호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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