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 KBO 신인드래프트가 열린 2019년 8월 26일. 모든 드래프트가 그렇듯, 프로 입문을 알린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행복으로 물든 하루이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우지 못할 아픔의 순간이기도 하다. 경남고 투수 이준우(키움)가 그랬다. 고등학교 동기들인 이주형(LG), 전의산(SSG), 장재혁(KIA) 등의 지명에 박수를 건네면서도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랬던 이준우는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을 건너 당당하게 KBO리그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영웅군단의 일원으로 꿈에 그리던 프로 선수라는 타이틀을 이름 앞에 새겼다. 지난 2일, 육성선수에서 정식선수로 전환돼 1군에 콜업됐다. 3일 KT전에 구원 등판해 데뷔전까지 치렀다. 꾸준히 기회를 받고 있다. 19일까지 9경기를 소화해 7⅔이닝 3자책점을 남겼다. 늘 그래왔듯, 차근차근 한걸음씩 내디디는 중이다.
◆매 순간을, 미소로

정신없는 훈련 중에도 밝은 미소가 시종일관 얼굴에 서려있는 투수다. 갑작스러운 인터뷰 요청에 “프로 오고 첫 인터뷰입니다”라며 또 한 번 환한 웃음을 건넸다. 그는 “콜업 전날에 숙소에서 야구를 보면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때 매니저님한테 전화가 오더라. ‘내일 수원 가야 된다’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게 꿈인 것 같다. 잡히지 않을 것 같던 순간이다. 기쁘기도 한데 사실 아직도 안 믿긴다. 마운드 올라갈 때까지도 실감이 안 났다”고 프로 선수로 거듭난 그 순간을 되돌려봤다.
이어 “진짜 야구만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대학팀에서는 그나마라도 단체 생활을 했지만, 독립리그 시절에는 모든 걸 혼자해야 했다. 밥도 혼자 해먹을 줄 알아야 했고, 경기나 훈련을 위한 이동에도 차가 없어서 친구 차를 얻어 탔다. 프로 팀에 오니 주변에 도와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이 계신다.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고 눈빛을 번뜩였다.
◆고진감래
전언대로, 그는 힘든 세월을 지나왔다. 드래프트 탈락에 굴하지 않고 동의대로 진학했다. 3년간 19경기 3승 무패, 평균자책점 3.54(27⅔이닝 11자책점)를 남기며 열정을 불태웠지만, 역시나 녹록지 않은 길이었고 스스로 만족할 수 없었다. 2023년 독립야구단 성남 맥파이스로 향했다. 환경을 바꾼 마지막 도전이라는 각오를 마음에 새기기 위함이었다. 지난해에는 2025 KBO 신인드래프트 트라이아웃에도 도전했다. 그러나 잇따른 실패가 그를 가로막았다.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안 힘들었다면 거짓말이다. 원래 표정이 항상 웃상이고 매사에 긍정적인 편이고 힘들더라도 티를 잘 안 내기도 한다. 그런데 2019년 드래프트도, 작년 트라이아웃도 실패하니까 그런 긍정적인 사고가 쉽지 않았다. 그냥 다 끝인 것 같았다”고 털어놓은 그였다.


포기는 없었다. 그는 “트라이아웃 실패 후로는 군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미련이 조금 남더라. 구단에서 테스트를 통해 육성 선수를 뽑는 기간도 있다. 보장할 수는 없지만, 그 기회가 만약 (군대 가기 전에) 온다면 뭐라도 해보고 그만둬야 마음 편히 입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 간다고 놀다가 덜컥 테스트 보면 후회할 것 같았기에 끝까지 열심히 운동했다”고 고백했다.
마침내 하늘이 웃어줬다. 성남 맥파이스 시절부터 함께 운동해왔던 지인들의 도움 속에 키움의 육성 선수 테스트에 임했고, 이를 통과했다. 101번의 번호를 받아들고 다시 꿈을 키웠다. 그 끝에 이제는 21번의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오르는 이준우가 자리했다.
◆혼자가 아니기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빼놓을 수 없다. 누구보다 간절히 아들의 도전을 지켜본 부모님은 2023년부터 힘든 서울 생활을 시작한 아들에게 묵묵한 뒷바라지를 건넸다.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생활비만큼은 아들이 걱정하지 않게 만들었다. 당연히 아들의 콜업 소식도 가장 먼저 전해들었다.
이준우는 “부모님이 둘 다 부산 분이시라 별 말씀은 안하시더라. 아버지는 그냥 ‘축하한다’ 한마디 하셨고, 어머니도 ‘고생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고 하시더라”며 “사실 저도 소식 전할 때 그냥 ‘내일 올라간다’고만 했다”는 유쾌한 에피소드도 전했다. 겉으로는 그랬지만, 누구보다 기뻤던 부모님이다. 이미 얼마 전 한화와의 고척스카이돔 3연전을 모두 보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다. “얼굴 봤는데도 별 말씀 안하셨다. 그냥 고기 먹고, ‘엄마 갈게요’라고 했다”는 후기도 덤으로 붙었다.

가족 못지않은 친구들의 존재도 큰 힘이 됐다. 부산에서 초등학생 시절부터 함께 야구를 해온 절친들이 언제나 함께였다. 그는 “리틀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이 나온 (이)주형이랑 한화의 (김)승일이 그리고 중학교 동기인 두산의 (최)종인이랑 (이)민석이 등이랑 아직도 ‘베프’로 지낸다. 단체 톡방에서 매일 이야기를 나눈다”며 “입대 준비할 때도 이 친구들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보자고, 놀지 말라고 쓴소리를 많이 해줬다. 다 친구들 덕분이다”고 말했다.
이어 “주형이는 언제 우리 팀 테스트 붙었냐고, 안 믿긴다고 함께 기뻐해줬다. 톡방에 있는 친구들이 다 (MBTI가) T다. 애들이 좋아해주면서도 ‘이제 아프면 안 된다. 기량도 더 나와야 된다’고 차갑게 말하더라. 다행히 나도 T라 다 같이 그런 반응이라 괜찮다”고 미소 지었다.
나아갈 일만 남았다. 이준우는 “첫 등판은 긴장해서 아무 것도 기억 안 나는데, 그나마 두세번씩 더 등판하면서 조금 나아졌다. 적응도 돼고, 마운드에서 어떻게 해야할지도 생각하는 여유가 조금씩 생긴다. 분위기도 더 즐길 수 있게 됐다”며 “휘황찬란한 목표는 없다. 늘 그래왔듯 매 순간 최선을 다할 생각이고, 그렇게 최대한 많은 경기를 뛰어보고 싶다. 팬들의 머릿속에 그저 마운드에서 씩씩하게 제 공을 던지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는 당찬 각오를 띄워 보냈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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