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긋지긋했던 악몽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잠에서 깨어나려 한다. 그리웠던 가을야구, 그보다 더 간절했던 우승까지 바라보려 한다.
1982년 출범한 한국프로야구에서 우승하지 못한 세월이 가장 긴 2팀은 바로 롯데와 한화다. 롯데는 1992년 한국시리즈(KS) 우승이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었고, 한화는 1999년에 유일하게 트로피를 들었다. 롯데는 33년간, 한화는 26년 동안 우승을 맛보지 못했다. 부산과 대전의 팬들의 가슴에 한(恨)이 맺혀 있는 이유다.
우승은커녕 가을야구와도 쉽게 연을 맺지 못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기록한 롯데의 순위를 모은 ‘8888577’의 숫자열은 악몽의 비밀번호로 야구 팬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역경을 딛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연속 가을야구에 진출하며 팀 컬러를 바꾸는 듯했지만,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다시 암흑기가 찾아왔다.
이 기간 팀을 거쳐간 감독 및 감독대행은 총 15명에 달한다. 백인천, 양상문, 강병철, 양승호, 김시진 등 숱한 레전드들도 모두 결과를 내지 못했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기운을 받아보려 했던 2번째 외인 사령탑 래리 서튼 감독도 결국 실패를 겪었다.
한화는 ‘만년 꼴찌’라는 가슴 아픈 타이틀이 붙어있다. 창단연도인 1986년에 처음 최하위(7위)를 찍었던 한화는 2000년 이후 무려 8번의 꼴찌를 기록했다. 8∼10구단 각 체제 아래 모두 최하위를 기록한 유일한 팀이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의 순위를 묶은 ‘5886899678’은 롯데 못지 않은 임팩트를 남긴 비밀번호가 됐다.

롯데와 마찬가지로 한대화, 김응용, 김성근, 한용덕 등 내로라하는 명장들이 불명예를 씻고자 도전장을 내밀어봤다. 특히 김응용, 김성근 감독은 각각 해태(현 KIA)와 SK(현 SSG)에서 왕조를 일군 수장이었지만, 예외없이 모두 한화에서 무너졌다. 감독들의 무덤이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여러 문제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한화는 그중에서도 ‘행복수비’라는 자조적 표현에서 알 수 있는 부실한 수비가 언제나 발목을 잡았다. 또 번번한 외인 에이스들의 부재에도 항상 울어야 했다.
롯데는 이대호라는 거인들의 상징이 있던 시기마다 원대한 꿈을 꿨지만, 그의 조력자만 발굴하다가 허무하게 시즌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마운드에도 이렇다 할 얼굴은 없었다. 롯데 에이스라고 하면 여전히 최동원, 염종석의 이름이 떠오를 정도다.
올해는 다르다.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힘겹지만, 차근차근 지웠다. 한화는 최근 자유계약(FA) 시장에서의 공격적인 투자로 채은성, 안치홍, 심우준 등 경쟁력 있는 얼굴들을 채워 공수 안정감을 더했다. 외인 스카우트 부문에도 힘을 기울여 올해 코디 폰세와 라이언 와이스라는 굵직한 원투펀치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

롯데도 마찬가지다. 이대호의 바통을 전준우, 정훈이라는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이어받은 가운데 윤동희, 나승엽, 고승민 등 그 다음을 준비할 미래의 주축들이 고루 성장했다. 마운드에는 박세웅이라는 새로운 안경 에이스가 나타나 중심을 잡아주는 상황이다.
순위표 윗공기를 양껏 들이마시며 과거는 과거일뿐이라고 외치고 있는 두 팀이다. 길고 길었던 우승 갈증을 씻어낼 절호의 찬스, 두 손에 꽉 움켜쥘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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