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킹 오브 킹스’의 북미시장 흥행 화력이 여전하다. 11일(현지 시간) 북미 개봉해 첫 주말 흥행 2위를 차지하며 국내는 물론 북미서도 화제를 모은 한국 애니메이션 말이다. 첫 주말 1937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기염을 토하더니, 그 다음 주에도 1757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전 주 대비 불과 9.3% 하락한 수익을 보여줬다. 25일 현재까지 북미 총수익은 5164만 달러. 신작들이 대거 개봉해 순위와 수익은 많이 떨어졌지만, 이대로도 6000만 달러 수익은 너끈하단 예상이다. 발표된 1500만 달러 제작비로 이 정도 수익이면 중저예산 영화로서 보기 드문 성공이다. 특히 소재상 2차 시장서도 일정수준 이상 호응을 기대할 수 있어 더더욱 그렇다.
국내서도 이미 수차례 보도된 대로, ‘킹 오브 킹스’는 한국의 특수효과 제작사 모팩 스튜디오가 제작한 극장용 3D 애니메이션이다. 모팩 스튜디오 장성호 대표가 연출과 각본, 제작을 맡고, 김우형 촬영감독이 제작을 함께했다. 영화는 한 중년남성이 어린 아들에게 신약성경 얘기를 들려주며, 영국 아서왕에 집착하는 아들에게 예수가 왜 진정한 ‘왕중왕’인지 설명하는 내용이다. 영국작가 찰스 디킨즈의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킹 오브 킹스’에 대해 한국 언론미디어에선 대부분 ‘한국’과 ‘애니메이션’이란 두 가지 키워드에 맞춰 다뤘다. 일단 한국영화가 북미시장서 거둔 드문 성과이며, 게다가 한국은 아무래도 약세라고 여겨지던 극장용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이 같은 성과가 이뤄졌단 점에 고무된 인상이 강하다. 그런데 북미선 ‘한국’이란 제작국 자체엔 딱히 관심이 없고 대신 ‘기독교 영화’란 키워드에 집중해 상황을 분석하는 분위기. 지난 10여년 간 북미 영화시장에 밀어닥친 ‘기독교 영화 붐’이 이제 극장용 애니메이션까지 흥행시키는 정도로 확대됐단 논조가 많다.
물론 ‘기독교 영화’ 자체는 북미발(發)로 과거부터도 많았다. ‘벤허’ ‘십계’ ‘성의’ 등 이른바 ‘바이블 블록버스터’들이 시장을 장악하던 1950~60년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시절엔 이들 ‘바이블 블록버스터’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중심이었고, ‘에어포트’ ‘포세이돈 어드벤처’ ‘타워링’ 등 일련의 재난영화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던 1970년대 직전까지 그랬다. 그러나 이들 ‘바이블 블록버스터’들과 지금 북미서 시장 파이를 불려 나가는 ‘기독교 영화’ 주역들은 성질이 좀 다르다. 2010년 전후로 밀어닥친 ‘기독교 영화’들은 정반대로, 오히려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현대 배경의 ‘생활신앙’ 류에 가깝다.
미국 조지아주의 셔우드 침례교회 사업 브랜치로 꾸려진 셔우드 픽쳐스가 트렌드 포문을 열었다. 회사 대표이자 셔우드 침례교회 미디어 관련 겸임목사를 맡고 있던 알렉스 켄드릭이 직접 감독을 맡은 2006년 작 ‘믿음의 승부’가 불과 10만 달러 제작비로 북미 극장가에서만 1018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이변을 낳자 처음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08년 ‘파이어프루프-사랑의 도전’(제작비 50만 달러, 북미수익 3346만 달러), 2011년 ‘용기와 구원’(제작비 200만 달러, 북미수익 3503만 달러), 2015년 ‘기도의 힘’(제작비 300만 달러, 북미수익 6780만 달러) 등 믿기 힘든 승승장구가 이어졌다.
비슷한 시기 흑인 극작가 타일러 페리도 흑인 중산층의 삶을 ‘믿음 기반(faith-based)’으로 엮은 코미디영화 ‘마디아’ 시리즈 등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 시작, 일약 할리우드의 가장 성공적인 독립제작자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상황이 이러니 다른 스튜디오들도 ‘기독교 영화’에 눈독 들이지 않을 수 없다. 프랜차이즈화까지 이룬 2014년 ‘신은 죽지 않았다’, 같은 2014년 ‘천국에 다녀온 소년’, 2016년 ‘미라클 프롬 헤븐’, 2018년 ‘아이 캔 온리 이매진’ 등이 계속 이어졌고, 북미 흥행수익도 8000~9000만 달러 선까지 불어났다.
그리고 지금이다. 근래에도 2023년 ‘지저스 레볼루션’ 등이 상당한 흥행 성적을 보여줬고, 이제 여기에 ‘킹 오브 킹스’까지 가세한 상황. 1998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 이래 극장용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거둔 첫 ‘기독교 영화’ 히트란 의미가 있다. 결국 ‘기독교 영화 붐’은 여전히 지속 중이며, 어떤 의미에선 북미시장의 저예산 영화시장 중 가장 크고 대표적인 시장이라 볼 만하다.
그럼 왜 이런 시장 상황이 연출됐을까. 다소 복잡한 사연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론 1990년대 중후반부터 미국사회에 일기 시작한 ‘신(新)보수주의’ 운동이 10여 년 뒤 대중문화계에서 꽃을 피운 사례 정도로 인식되는 추세다. 많이들 1990년대를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X세대의 시대’ 정도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런 분위기에 위화감을 느끼고 반발을 일으킨 ‘정반대’ 측 흐름도 분명 존재했었단 설명이다. 그러다 2010년대 대중시장의 붕괴와 시장 파편화가 가속화되면서 수없이 갈라진 시장 중 가장 충성도 높은 서브 장르 시장으로 거듭난 순서.
이런 점에서 ‘킹 오브 킹스’는 단순히 “한국 애니메이션도 할 수 있다” 류의 측면에서만 바라볼 일이 아니다. 오히려 국내선 크게 주목받은 일 없는 특수시장을 정확히 노리고 들어갔단 점에 더욱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 영화’ 시장이 존재하고 점차 파이가 커지고 있단 점 정도는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겠지만, 아직 시도되지 않은 중저예산 극장용 애니메이션까지 이 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으리란 점에 승부를 건 결단력도 눈여겨볼 만하다.
자연스럽게 한국영화산업 최대 과제인 해외시장 개척 측면에서도 ‘킹 오브 킹스’는 연구가 필요한 텍스트다. 지금 K컬쳐 분야 중 해외시장 개척 측면에서 K팝이나 K드라마, 심지어 K웹툰 보다도 그 성과가 미미하게 여겨지는 게 영화 부문이다. 그런 탓에 영화 부문만큼은 ‘기생충’ 같은 엄청난 문화 예술적 이벤트로만 세계 주요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단 인식이 들어서는 시점인데, ‘킹 오브 킹스’는 여기에 전환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벤트’로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특수시장을 겨냥한단 전략 차원에서 그렇다. 물론 화두가 된 ‘기독교 영화’ 서브장르는 북미지역 바깥으로 나가면 힘을 못 쓴단 한계가 뚜렷하지만 말이다. 일단 현 해외시장 상황에 대한 파악과 이해부터 섬세하게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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