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인터넷 공간서 수년 전 자료나 영상 등이 새삼스레 화제로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당시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의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거나 그 전초전 격 초기 신호로서 주목할 필요가 생긴 경우들이다. 지난주 국내 온라인 대중문화 커뮤니티서 화제로 떠오른 2년 전 해외 유튜브 영상, 미국 대중문화 전문지 버라이어티 유튜브 채널에서 2023년 6월8일자로 업로드된 미국배우 제나 올테가-엘르 패닝 대담 영상도 그런 경우다. 요즘 가장 ‘핫’한 20대 여배우 대담 특집이었던 셈이고, 동시에 아역배우 출신들 간 대담이기도 했다. 그리고 해당 포스팅이 화제가 된 까닭은 대담 영상 끝부분에 등장하는 한 대목 탓이다.
영상에서 ‘스크림’ ‘웬즈데이’ ‘비틀쥬스 비틀쥬스’ 등을 통해 ‘Z세대 아이콘’으로서 주목받는 제나 올테가는 “어느 오디션에 갔었는데 (SNS의) 팔로워 수를 묻더라”면서 “심지어 ‘웬즈데이’ 이후에도 다른 역할에 지원하는데 “배우님은 정말 좋지만 미디어에서 그만큼 영향력이 있는진 모르겠다”는 얘길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자 아역스타 시절부터 ‘말레피센트’ 등 수많은 히트작들에 출연해온 엘르 패닝도 “나도 팔로워 수 때문에 배역을 놓친 적이 있다”면서 지금의 할리우드 캐스팅 현실에 개탄했다.
다소 충격적인 사연이지만 현시점 할리우드 영상 산업, 특히 극장용 영화산업 분위기를 돌아보면 그럼직하단 인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간 OTT 열풍과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영화 극장관람은 점차 대중으로부터 멀어지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2024년 북미 연간 총 영화 관객수는 8억1785만 명으로 2023년의 8억3132만 명에 비해 1.6% 감소했고, 매출액도 88억1640만 달러로 2023년의 89억6162만 달러에 비해 1.6% 감소한 상황이다. 한편 팬데믹 바로 직전인 2019년 총 영화 관객수는 12억2539만 명이었고, 그에 비해 2024년 수치는 66.7% 수준에 그친다.
즉 2023년만 해도 이제 엔데믹으로 전환된 마당이니 파죽지세로 극장 관객수가 늘어나 곧 팬데믹 직전 수준까지 회복될 수 있으리라 기대됐지만, 대략 65% 수준에서 멈춰버린 듯하단 얘기다. 한국서 나온 수치도 이를 따라간다. 2024년 총 영화 관객수는 1억2313만 명으로 2023년 대비 1.6% 감소했으며,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7~2019년 평균 2억2098만 명에 비해선 55.7% 수준에 머물렀다. 연간 매출액 차원에서 1조1945억 원을 기록하며 2023년 대비 5.3% 감소하고 2017~2019년 평균인 1조8282억 원에 비해선 65.3% 수준에 그쳤다.
이러니 이제 할리우드는 극장흥행 보장을 위해 이미 인지도와 팬덤을 보유한 IP 콘텐츠에 집중하는 현실이고, 배우 캐스팅 역시 결국 같은 맥락에서 움직여가고 있단 것. 넷플릭스 등 OTT 콘텐츠는 다소 모험적 선택이 이뤄지기 쉬운 탓에 상대적으로 다양한 젊은 배우들을 자유롭게 캐스팅할 수 있어도, 극장용 영화라면 ‘이미 스타’인 젊은 배우들을 택할 수밖에 없단 얘기다. 그리고 그 잣대는 점차 ‘SNS 팔로워 수’로 굳어지고 있단 것.
그럴 수밖에 없다. 해당 배우 팔로워들이 그대로 극장까지 찾아와줄 코어팬덤으로 기능할 수도 있지만, 이미 SNS 공간서 스타로 자리매김한 이들이기에 출연한 신작영화 정보도 이들 SNS를 통해 ‘공짜로’ 트렌드로서 퍼져갈 수 있기 때문도 크다. 즉, 온라인 마케팅 효과 차원에서 이점이 워낙 많단 얘기. 그러다 보니 앞선 제나 올테가-엘르 패닝 사례와는 정반대 경우, 즉 이 같은 풍조의 수혜자 격 젊은 배우들 역시 하나둘 거론되는 실정이다. 대표적으로 ‘듄’ 1, 2편과 ‘챌린저스’ 등 화제작에 연달아 캐스팅돼 스타덤을 굳힌 젠데이아를 들 수 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1억8000만 명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SNS 스타로 거듭나자 대형 블록버스터 캐스팅도 동세대 누구보다 쉽게 이뤄지며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이제 한국을 돌아보자. 현재까지 극장용 영화계 차원에서 미국과 같은 현상은 아직 벌어지지 않는 분위기다. 한국 극장용 영화시장은 팬데믹 이전, OTT 열풍 이전부터도 이미 20대 젊은 배우들의 대형영화 주인공 캐스팅은 잘 이뤄지지 않는 분위기였기 때문. 그렇게 극장용 영화는 점차 5060 배우들, 최소 40대 배우들이 주연급을 쥐락펴락하는 분위기가 된 지 오래다. 그러니 굳이 20대 배우들 SNS까지 살펴볼 필요는 못 느꼈던 셈이다. 젊은 배우들은 TV에서 20대 시절 쌓은 경력 바탕으로 30대 즈음부터야 가까스로 주연급 캐스팅이 이뤄진다.
이처럼 ‘아직까지는’ 제나 올테가-엘르 패닝이 토로한 문제가 딱히 와 닿지 않는 상황이지만, 의외로 그 비슷한 분위기는 대중음악계서 하나둘 엿보이고 있다. ‘이미 유튜브와 틱톡 스타’였던 이들을 모아 데뷔 즉시 성공 가도에 오른 걸밴드 QWER을 먼저 들 수 있다. QWER과 함께 근래 보기 드문 중소기획사 팀 성공사례로 꼽히는 걸그룹 키스오브라이프 역시 ‘이미 스타 연습생’이었던 멤버 나띠 중심으로 론칭에 성공해 대세를 굳힌 인상이 강하다.
그러고 보면 한동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아이즈원 파생’이란 식으로 불리던 걸그룹 아이브와 르세라핌, 솔로가수 권은비와 최예나 등의 예상을 뛰어넘은 성공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봐야할 지 모른다. 여러모로 같은 ‘프로듀스 101’ 시리즈 배출 팀이었던 아이오아이 해산 이후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지며 달라진 시장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실 SNS란 뉴미디어 위력과 관련된 부분이 아니다. 어떤 방식이든 데뷔 당시 ‘이미 스타’였단 점에 방점이 찍히고, 이는 할리우드 영화계 ‘IP 천하’ 분위기와 연결된다. ‘이미 스타’였던 이들은 데뷔 이전 이미 독자적 IP로서 성립된 이들이었단 식으로 말이다. 그게 흥행 안전장치가 되고, 특히 데뷔 론칭에 막대한 비용을 붓기 힘든 중소기획사 입장에선 더더욱 절실한 부분이 된다. 이렇듯 이 모든 건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제 이 흐름이 대중음악시장을 넘어 과연 대중문화산업 어느 분야로 번져나갈지 관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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