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송대관이 지난 7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전날 컨디션 난조로 응급실을 찾은 고인은 치료 도중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했다.
고인과 ‘영원한 라이벌’로 선의의 경쟁을 펼쳤던 가수 태진아가 9일 발인식에서 추도사를 맡았다. 마지막으로 영정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힌 태진아는 “대관이 형 잘 가. 형은 영원한 나의 라이벌”이라고 외치며 고인과 작별했다. 강진, 설운도 등 고인의 동료들과 김수찬, 나태주 등 후배 가수들도 슬픔을 나눴다.
194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송대관은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해 1975년 ‘해뜰날’이 인기를 끌면서 유명세를 탔다.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1980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10여년 만에 돌아와 ‘정 때문에’, ‘혼자랍니다’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재기했다.
태진아, 현철,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4대천왕’으로 불린 송대관이다. ‘차표 한 장’, ‘유행가’, ‘네박자’ 등 연이은 히트곡으로 인기몰이에 나섰다. 트로트 장르 확산과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2001년에는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고인이 떠나자 파란만장한 인생사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이기도 한 송대관은 가수들의 권익과 위상 정립을 위해서도 앞장섰으며 가수 남진에 이어 2008년 대한가수협회 2대 회장에 취임했다. 2013년 아내의 투자 실패로 사기 혐의에 휩싸이며 280억원 대의 빚을 지기도 했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하루에도 여러 개의 행사를 소화하며 묵묵히 빚을 갚아 나간 고인은 아내를 원망하지 않고 “젊은 시절의 성공은 아내 덕”이라고 아내를 더욱 보살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정규앨범 ‘지갑이 형님’을 발매한 고인은 지난달 19일 KBS ‘전국노래자랑’ 서울 성동구 편에 초대 가수로 출연했다. 오는 16일 충남 당진시 편, 오는 3월2일 서울 영등포구 편에서 생전 고인의 마지막 모습이 방송될 예정이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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