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르세라핌이 27일 서강대학교와 서울과학기술대학교를 시작으로 대학교 축제 공연에 나섰다. 미니4집 ‘Crazy’ 공식 활동이 마무리된 뒤 다음 활동으로 넘어가는 신호탄 격인 셈이다. 그런데 저 ‘Crazy’ 활동에 대해선 아직 점검해봐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 근래 대형기획사 걸그룹으로서 그 성과 면에서 상당히 특이한 행보를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일단 르세라핌은 ‘Crazy’ 활동을 통해 미국․유럽 등 서구권 진출 측면에서 자체 최대 성과를 거뒀다. 많이 알려졌다시피 9월14일자 미국 빌보드 ‘핫100’ 차트 76위로 진입한 뒤 다음 주인 9월21일자 차트에서도 88위를 기록하며 2주 연속 차트인에 성공했다. 르세라핌으로서 2주 연속 ‘핫100’ 차트인은 처음이며, 엄밀히 자체기록 차원을 넘어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다. 당장 올해 ‘핫100’에 2주 이상 차트인한 K팝 팀 자체가 르세라핌 외에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 외엔 없다. 나아가 K팝 ‘역사상’ 2주 이상 차트인한 아티스트로 넓혀 봐도 여전히 희소한 기록이다.
일단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멤버들 솔로 성과를 각 소속팀으로 귀속시켜 생각해볼 때 르세라핌 이전까지 단 5팀만이 이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싸이,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뉴진스, 피프티피프티 등이다. ‘핫100’에 진입해본 전체 K팝 아티스트는 총 11팀이란 점에서 2주 차트인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미뤄 짐작해볼 만하다. 한편, ‘Crazy’는 유럽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음악차트인 영국 오피셜 차트에서도 83위로 진입해 르세라핌으로서 사상 첫 차트인을 기록한 뒤 다음 주에도 100위 랭크되면서 2주 연속 차트인에 성공했다.
그런데 문제는, ‘Crazy’는 동시에 국내 음원차트선 전혀 힘을 못 쓰는 모양새란 점이다. 8월30일 발매 이래 멜론 일간차트에선 최고 순위가 34위다. 지금은 정점에서 떨어진 흐름으로 9월27일 기준 58위까지 내려앉았다. 유행지표로서 역할이 더 두드러진다는 유튜브뮤직 차트도 크게 다르진 않다. 발매 첫 주인 8월30일~9월5일 주간차트에선 대형 팀의 유행파워 덕에 1위 랭크됐지만, 이내 성적이 내려앉아 바로 다음 주엔 4위, 그리고 8위. 최신 차트인 9월20일~26일 차트에선 13위까지 떨어졌다.
‘Crazy’가 특별히 난해하다거나 완성도가 떨어지는 곡이어서가 아니다. 같은 곡을 두고서도 판이하게 갈라지는 한국과 미국․유럽 반응은 팀 자체가 지닌 인상과 스타성 원인이라 볼 만하다. 결국 르세라핌은 아직 지난 4월 미국 코첼라 페스티벌서 겪었던 ‘라이브 가창력 논란’ 인상을 최소 국내선 벗어던지지 못한 상태란 것이다. 거기에 ‘민희진-뉴진스 vs. 하이브’ 논란이 현재진행형으로 겹치며 뜻밖의 이미지 손상도 크게 입었고, 이 역시 지금까지도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비난받는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중 후자 쪽 영향이 실질적으론 더 컸단 관찰이다. 특히 르세라핌 인기 동력 중 하나였던 자체 콘텐츠 영상 측면에서 그랬다. 후자 이슈 관련으로 온갖 뉴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도를 넘어서는 비난과 모욕이 쏟아지자 소속 레이블 측에선 고소준비에 들어가 증거 확보를 위해 각 영상들 댓글창을 닫게 됐고, 그러면서 알고리즘서 배제돼 새로운 자체 콘텐츠 전달력이 크게 떨어졌단 견해다. 결국 분위기를 전환시킬 새 콘텐츠는 도달되지 않고, 몇몇 렉카 채널들의 비방 쇼츠 등만 엄청난 규모로 공급되면서 이미지 타격이 극심해졌단 뜻이다.
반면, 미국․유럽지역은 상황이 달랐다. 애초 르세라핌 비방 분위기 시작과도 같았던 코첼라 페스티벌 ‘라이브 가창력 논란’ 자체가 해당지역선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구에선 공통적으로 개개 공연에 있어 가창력 등 이른바 ‘실력’ 차원 문제에 신경 쓰기보단 공연 분위기 자체를 더 중점적으로 보고, 관객과 어떤 식으로 호흡하며 즐거운 공연을 이끌어냈는지 그 무대 매너를 평가하려는 측면이 강하다.
공연 직후 미국 빌보드지에서 ‘코첼라 2일차 최고의 순간’으로 르세라핌 무대를 꼽으며 “10곡의 세트리스트 내내 관객들을 춤추게 했다” “르세라핌에게 핫하고 재밌는 새 시대가 열릴 것”이라 호평하고, 영국 NME지에서도 관객들의 ‘떼춤’을 이끌어낸 무대 매너에 대해 “르세라핌은 40분 만에 사하라 스테이지를 자신들 것으로 만들었다”고 호평을 내린 것도 다 그런 이유다. 아닌 게 아니라, 코첼라 페스티벌서도 막상 르세라핌의 2주차 공연에 전 주보다 더 많은 관객이 몰려들었단 점은 많은 걸 시사해준다.
한편 ‘민희진-뉴진스 vs. 하이브’ 논란에 따른 이미지 손상 부분은, 해외 반응을 모니터링해본 이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해외선 애초 왜 그런 논란에 르세라핌이 개입돼 비난받고 있는지 잘 이해 못하겠단 입장이 강하다. 해외 K팝 팬들 사이서도 해당 논란이 화제가 된 건 맞지만, 그 논란이 개개 아티스트들에 전이된 모습을 발견하기란 어렵다. 어떤 의미에선 모든 상황을 결국 ‘팬덤전쟁’으로 몰고 가는 국내 K팝 팬층의 특징적 면면이 드러난 상황일 뿐 그에 따른 글로벌 여파를 확인한단 점 자체가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다.
물론 큰 차원에선, 그렇게 놓고 봤을 때조차 ‘Crazy’ 국내 성적은 눈에 띄게 부진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선 또 다른 시각이 필요할 수도 있다. 애초 르세라핌의 음악적 방향성은 데뷔 타이틀곡이었던 ‘Fearless’부터 ‘Crazy’까지, 첫 영어 디지털 싱글이었던 ‘Perfect Night’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국내 취향을 겨냥했다 보긴 무척 어렵단 것이다. 처음부터 해외, 특히 서구 취향에 채널링된 인상이 강하고, 국내 반향은 팀이 가진 스타성 요소에 힘입어 일종의 트렌드로서 동반 상승됐다고 보는 게 설득력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스타성 요소에 일시적으로나마 타격을 입으면 적어도 국내선 ‘Crazy’처럼 흔들리기 쉬운 입지였다고 볼 만하다. 처음부터 글로벌, 특히 서구 진출을 향해 기획된 팀으로서 숙명적인 리스크 요소다. 역으로, 국내 반향과 관계없이 르세라핌은 계속 서구선 인지도 확장과 함께 승승장구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런데 이제 관심을 끄는 건 K팝 최대시장 일본 측 반응이다. ‘Crazy’는 일단 오리콘 차트선 전작과 별반 차이 없는, 크게 흔들리지 않은 반응이 나왔다. 그럼 그 이후는? 어떤 의미에선 각종 가십들에 의해 오락가락하는 국내 반응보다 훨씬 신경 쓰이는 게 이 부분이다. 계속 추이를 지켜봐야할 필요가 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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