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도는 2016 리우 올림픽에서 16년 만의 ‘노 골드’ 수모를 겪었고, 2020 도쿄에서는 1976 몬트리올 이후 45년 만에 가장 낮은 성적표(은1·동2)를 제출했다. 암흑기 오명이 따라붙었고, 자연스레 뼈를 깎는 변화가 시작됐다. 조구함, 안창림 등 도쿄 메달리스트들이 속속 은퇴를 알리며 새 얼굴이 자리를 채웠다.
녹록지 않았다. 지난해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AG)에서 역대 최소 금메달(1개)에 그쳤다. 하지만 포기는 없다. 파리에서의 부활 찬가를 부르기 위해 구슬땀을 흘린다. 그 선봉에 지난 5월 국제유도연맹(IJF) 아부다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소중한 금메달을 품은 허미미(여자 57㎏급)와 김민종(남자 100㎏ 이상급)이 서려 한다.
◆韓 택한 독립운동가 후손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재일교포 출신이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는 유도선수 출신 아버지를 따라 6세에 유도에 발을 들였다. 물려받은 재능은 탁월했다. 2017 전일본중학선수권 우승으로 떡잎을 드러낸 후, 고교시절 일본 전국구 유망주로 이름을 날렸다.
그랬던 그가 2021년 돌연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을 택했다. 그해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한국 선수로 뛰길 바란다고 남긴 유언 때문이었다. 여기에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독립운동가 허석(1857∼1920) 선생의 5대손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지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2022년 2월 태극마크를 품고 단숨에 에이스로 떠올랐다. 그해 6월 첫 출전한 국제대회 트빌리시 그랜드슬램에서 금메달, 10월 세계선수권 준우승이 이어졌다.
성장은 계속됐다. 지난해 1월 포르투갈 그랑프리 우승, 7월 청두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우승, 11월 퍼스오세아니아오픈 우승 등 트로피가 쌓여갔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포르투갈 그랑프리(1월) 2연패에 이어, 4월 홍콩 아시아선수권 준우승이 이어졌다.
상승세에 방점이 찍힌 대회가 바로 세계선수권이었다. 결승에서 강적 크리스타 데구치(캐나다)를 꺾는 기염을 토했다. 일본 혼혈의 데구치는 2019년과 지난해 세계선수권 우승자 출신으로 올림픽에서도 메달 색을 두고 다툴 확률이 높은 상대다. 라이벌을 꺾은 허미미는 1995년 정성숙(61㎏급), 조민선(66㎏급) 이후 29년 만에 한국 여자유도의 세계선수권 우승 영예를 빚었다.
올림픽 갈증을 씻을 차례다. 특히 여자 유도는 1996년 애틀랜타 대회의 조민선 이후 금메달을 신고하지 못했다. 28년의 세월을 건너 허미미가 도전장을 내민다.
◆최초 꿈꾸는 마장동 둘째아들
남자 유도 최중량급(100㎏이상)은 동양 선수에게 버거운 판이다. 체중 제한이 없어 남다른 피지컬을 뽐내는 서양 선수들이 득실대기 때문. 올림픽 유도에서 11개의 금메달을 캐온 한국이지만, 이 체급에서는 단 하나도 얻지 못했다.
김민종이 첫 발자국을 찍으려 한다. 마장동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부모님의 3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동네 유도장에서 유도를 시작했다. 타고난 체격과 재능으로 눈길을 사로잡아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걸었다.
보성고 3학년이던 2018년 11월, 태극마크를 획득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듬해 도쿄 세계선수권 동메달로 단숨에 최중량급 희망으로 우뚝 섰다. 동 체급 국내 1위였던 ‘대선배’ 김성민을 꺾고 2020 도쿄 올림픽 출전권까지 따내는 파란도 이어졌다.
아쉽게도 생애 첫 올림픽은 긴장감 속에 16강 조기탈락으로 끝났다. 정체기가 찾아왔다. 특히 큰 대회만 되면 움츠러들었다. 지난해 5월 도하 세계선수권도 2라운드에서 이르게 퇴장했다. 9월 항저우 AG도 뒷심 부족으로 동메달에 그쳤다.
준우승 징크스도 따라붙었다. 지난해 12월 도쿄 그랜드슬램부터 포르투갈 그랑프리(1월), 파리 그랜드슬램(2월), 홍콩 아시아선수권(4월)까지 모두 결승에서 좌절했다.
기다리고 있던 시원한 한방, 세계선수권에서 폭발했다. 도쿄 금메달 루카스 크르팔레크(체코)를 준결승에서, 도쿄 은메달의 구람 투시슈빌리(조지아)를 결승에서 잡는 쾌거로 금메달을 품었다. 한국 선수의 세계선수권 남자 최중량급 우승은 1985년 조용철 현 대한유도회장 이후 39년 만일 정도로 의미가 깊은 승리였다.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남았다. 203㎝, 139㎏의 우월한 피지컬을 앞세워 2012 런던, 2016 리우 올림픽 2연패, 세계선수권 11회 우승 타이틀을 품은 프랑스의 테디 리네르다. 그는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집중하고자 지난 세계선수권에는 나서지 않았다. 김민종이 파리 그랜드슬램 결승에서 패배한 상대이기도 하다. 복수를 벼르는 김민종, 파리에서 프랑스산 괴물을 넘고 새 역사를 쓸 일만 남았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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