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생과방' 등 티켓팅 치열
'궁캉스' '궁케팅' 신조어도 생겨
궁능관람객 1년새 28.5% 늘어
한국적 콘텐츠에 젠지들 열광
“이미 ‘밤의 석조전’ 티켓팅에는 실패했어요. 이번 생과방 예약에는 꼭 성공하면 좋겠어요.”
직장인 A씨(27)는 지난해 인스타그램을 통해 접한 밤의 석조전 사진 한장에 반했다. 특히 덕수궁 석조전 2층에서 한옥뷰를 바라보며 티타임을 꼭 해보고 싶었다. 올해 야심차게 티켓팅에 도전했지만 엄청난 경쟁률에 실패했다.

매년 이맘때쯤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등 고궁으로 향하려는 MZ세대의 ‘티켓팅 경쟁’이 치열하다.
문화재청 한국문화재재단이 궁능유적본부와 함께 운영하는 ‘경복궁 생과방’과 ‘덕수궁 밤의 석조전’, ‘창덕궁 달빛기행’이 대표적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대개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마감된다. 보통 ‘1분 컷’이다.
생과방의 경우 올해는 관람 횟수를 지난해보다 40회 늘린 총 440회를 운영한다. 참여 인원도 전년 1만2800명에서 1만4080명으로 1280명 더 받는다. 그럼에도 웬만큼 손이 빠르지 않고서야 예약이 쉽지 않다.

어마무시한 예약 경쟁의 주축이 MZ세대다. 이들은 단순히 고궁만 보고 돌아가는 데 그치지 않는다. 궁궐의 별식을 만드는 생과방에서 나왔을 법한 간식을 먹고, 청사초롱을 들고 고궁의 밤길을 걸으며, 고종 황제가 즐겼다는 가배(커피)를 즐기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을 원한다.
이를 두고 다양한 신조어도 생겼다. 궁궐을 찾아 시간을 보내는 것은 ‘궁캉스(궁궐+바캉스)’, 고궁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하려 벌어지는 치열한 온라인 예매 경쟁은 ‘궁케팅(궁궐+티켓팅)’이라고 한다. 실제 2023년 궁능관람객은 전년보다 28.5% 증가한 1400만 명을 돌파했다.

요즘의 MZ세대들은 전통문화의 현대적 변용에 열광한다. 전통을 꼭 100% 따르지 않아도 한국 고유의 특색이 드러나는 콘텐츠를 ‘힙하다’고 느낀다. 예컨대 오징어 게임의 히로인 정호연이 미니드레스에 ‘댕기’를 착용하고, 방탄소년단 정국이 개량한복을 캐주얼하게 소화하는 게 ‘멋’이 됐다. 서울 한복판의 고궁 역시 이같은 ‘현대와 한국적인 요소가 섞인 공간’으로 여겨지는 것.
특히 젠지 세대(Generation Z, 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에 비해 정통 사극 등 역사 콘텐츠를 자주 접하지 못했다. 이들에게 전통문화는 고리타분한 게 아닌 ‘흥미로운 무언가’로 인식된다. 이런 생각 자체가 젊은이를 궁궐로 모이게 했다.
‘고궁 붐’은 2019년부터 본격화됐다. 당시 ‘트렌드 코리아2019’에서는 주요 키워드로 ‘뉴트로’를 꼽았다. 이제 전통문화는 반짝 유행이나 향수에 그치지 않고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 됐다고 분석했다. 실제 처음으로 연간 궁궐 관람객 1000만명을 돌파한 해이기도 하다.
정희원 기자 happy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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