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영화의 히트와 함께 관련 논란도 한층 거세지는 분위기다. 이른바 ‘지나치게 관대한 등급’ 논란이다. 개봉 당일부터 국내 언론은 일제히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15세 관람가 등급은 부적절하단 문제를 제기했다. 각종 신체 훼손 및 선혈이 낭자한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도저히 15세 관람가 수위가 아니라는 것. 영화의 첫날 1위 성적 역시 근본적으론 이처럼 ‘너그러운 등급’ 덕택이 아니었느냐는 의문도 함께 제기됐다. 전작 ‘프로메테우스’는 비슷한 수위임에도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아 총 관객수 97만1482명에 그쳤는데,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흥행을 위해 지나치게 낮은 등급을 ‘선물’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에 영상물등급위원회 측은 “남녀의 전라 샤워 장면, 여성의 가슴 노출 장면 등이 나오나 구체적으로 보여지지 않고, 불에 탄 시체, 에이리언이 인간들을 살상하고 이어지는 선혈 장면 등 다소 높은 수위의 폭력적인 장면이 나오나 외계 생물체의 공격이라는 SF장르의 특성상 비현실적으로 묘사되어 15세 이상 청소년이 관람할 수 있는 영화”란 입장을 밝혔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정작 영화의 제작국 미국에선 ‘에이리언: 커버넌트’에 R(restricted)등급, 즉 만 17세 미만 제한관람가 등급을 내렸단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미국에서도 저 정도 등급을 받은 영화가 그보다 사회문화적으로 보수적인 한국에서 15세 관람가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 영상물 심의 분위기다. 잘라 말하면, 미국을 위시로 한 서구 각국은 대부분 폭력묘사에 민감한 반면, 아시아권은 대부분 성적(性的)묘사에 민감하다. 미국 등 서구는 상대적으로 개인의 총기소지가 손쉬운 국가들이다. 총기 관련 폭력이 대중 가까이 존재하고, 그만큼 관련 묘사들에 대중이 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같은 배경이 전반적 폭력 묘사 자체에 민감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영화 심의도 그에 준하는 방향으로 적응한 것이다.
반면 총기소지가 까다롭거나 극히 제한된 아시아권에서 관련 폭력 묘사는 일종의 판타지적 성격으로 다가와 반응이 민감하지 않다. 거기다 아시아 각국엔 태권도, 쿵푸, 가라데, 무에타이 등등 고유무술이 존재하고, 또 이를 일종의 기예(技藝)로서 칭송하는 분위기까지 존재한다. 폭력에 대한 민감성은 더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신 사회문화적으로 유교적 전통에 지배되는 탓에 성적(性的) 문란에 훨씬 민감한 반응을 보여 그쪽으로 심의가 집중된다. 그러다보니 서구와 비교해 ‘폭력에 관대하고 섹스에 민감한’ 심의 흐름을 낳게 됐다.
당장 ‘에이리언’ 시리즈만 해도 국내 등급은 1편 연소자관람가, 2편 국민학생관람불가, 3편 연소자관람가, 4편 15세미만관람불가 등이었다. 미국선 시리즈 전체가 R등급이다. 폭력영화에 한해서라면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까지 R등급 영화를 아무렇지 않게 보던 시절도 있었단 얘기다. ‘프로메테우스’ 쪽이 예외적으로 강경한 심의였을 뿐 ‘에이리언: 커버넌트’에 대한 심의는 기존 흐름 그대로다. 물론 이런 흐름이 과연 바뀌어야 할 부분인지에 대한 판단은 대중 각자의 몫이다. 그 판단에 따른 반론이 빈번해질수록 심의도 그에 적응해나가겠지만, 반론과 비판은 서로 다르다. 이번 경우 하나만을 놓고 지나친 비판은 무리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두 번째, 사실상 더 중요한 논의점이 등장한다. 일단 미국의 R등급은 애초 ‘17세 미만 관람불가’ 등급이 아니란 점을 짚을 필요가 있다. 어디까지나 ‘17세 미만은 부모 및 성인 보호자 동반 시 관람가’다. 부모나 성인 보호자를 동반했을 시 17세는 물론 15세보다 더 어린 나이라도 얼마든지 관람이 가능하다. 이처럼 기묘한 등급제 성격을 이해하려면 미국의 등급제 성립배경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거기서 ‘에이리언: 커버넌트’로 다시금 불거진 영화등급 논란에 대한 해법도 제시될 수 있다.
미국에서 영화등급을 결정하는 기구는 MPAA(Motion Picture Association of America)다. 미국 영화제작자와 배급업자 등 영화산업 종사자들로 구성된 민간기구다. 1920년대에 미국영화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저급상품들, 예컨대 외설영화들도 함께 늘어나자 미국정부가 직접 나서 대대적 영화 검열 작업에 들어가게 됐다. 그러자 영화가 일으키는 사회적 문제는 영화산업 내에서 알아서 해결할 테니 공적개념은 개입하지 말라는 취지로 MPAA가 설립됐다. 그렇게 산업 내에서 자체검열을 시행하다, 1968년부턴 등급심사위원회를 구성해 검열 대신 등급을 매겨 가이드라인만 설정해주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그러니까 MPAA는 그 어떤 사회적 기준으로도 한계가 있는 NC-17, 즉 포르노급 등급만 제외하곤 오직 ‘가이드’만 제시해준다는 것이다. PG-13은 부모 및 성인의 미성년자 관람 관리를 ‘제안’한다는 의미고, R은 부모 및 성인을 동반하면 볼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이 가이드라인조차 실제 소비자들에 강제하는 게 아니라, 최종판단은 미성년 자녀 양육에 실질적 책임이 있는 부모 및 그에 준하는 성인(부모가 없는 미성년자들도 있으니)에 맡긴다는 개념이다. 등급기구 성격도 민간이고, 그 등급은 그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각 극장주들에 한해 적용되며, 최종적 판단도 민간 자율에 가깝다.
국가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특수법인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기준을 정해 각 상영관으로 내려 보내고, 그 기준을 실제 소비자 부모 등이 어떻게 생각하건 일괄적으로 강제해버리는 한국과는 풍토 자체가 다르다. 미국이 개인주의, 자유주의에 입각해 민간자율을 최대한 중시하는 반면, 한국은 공적개념의 일괄규제 노선이 명확하다.
여기서 엿볼 수 있는 사회철학은 간명하다. 미국은 특정영화를 보건 말건 그에 따른 권한 및 책임을 국가 등 공적개념에 지우지 않겠단 태도다. 개인 및 가정 범주의 1차집단 책임을 사회에, 심지어 국가에 떠맡기는 흐름은 합당하지도 건강하지도 않다는 판단이다. 결국 사회는 하나의 동일한 가치관이 일률적으로 강제되는 전체주의적 환경이 돼선 안 되며, 각자 가치관이 서로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조율되는 형태여야 한다는 의지를 내포한다. 선진사회의 전반적 개인주의 의식 진화 흐름과 일치한다.
물론 한국과 미국은 위 미국식 등급제 전제조건인 ‘가정’의 역할론에서 차이가 있다. 미국은 기독교 윤리를 바탕으로 한 가족주의 환경이다. 자녀와 부모 간 관계는 다분히 개인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양육권한과 책임영역이 확고한 복잡한 구조다. 쉽게 말해, 영화 한편 보는 데도 부모가 신경 쓰고 함께 관람해주는 태도가 자연스럽다. 반면 한국은 그간 가부장제의 암묵적 규율만 존재할 뿐 자녀의 갖가지 관심사들은 가볍게 억압하거나 관심 끄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점차 가정 내 소통구조가 마련되고, 자녀생활에 대한 부모의 관심과 동참의식도 더없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가정 분위기를 닮아가고 있다.
어차피 국민들 각자의 개인의식 고취는 선진사회로서 막을 수 없는 순방향이다. 이를 바탕으로 대안이 제시되지 못한다면 ‘에이리언: 커버넌트’ 같은 불필요한 논란은 몇 번이고 반복될 수밖에 없다. 특정 문화상품을 미성년자가 향유해도 좋을지 말지 여부를 공적개념 판단에 맡긴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개개인 각자 관점과 충돌해 매번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대중의식 변화와 맞물린 제도 변화를 충분히 거론해봐야 할 시점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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