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피 치마를 두른 동물의 이기적 유전자가 내 안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된 건 초경 때였다. 그 많은 피를 흘리고도 죽지 않는 희한한 존재라는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춘기엔 새엄마가 이복동생을 임신했을 때 과하게 부풀어 오르는 젖가슴을 보고 ‘짐승 같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당신이 걸을 때마다 골목이 통째로 출렁거려서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내 생각이 짐승보다 못한 것임을 난 엄마의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석기녀’를 자주 마주한 시기는 임신수유기가 아닐까 싶다.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일을 시작할 즈음, 회의하러 갈 때마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젖몸살’이었다. 모유가 싸르르 돈다는 것, 새끼에게 안 먹이면 젖이 뭉치면서 온몸이 열덩이가 된다는 것. 그건 내 안에 움트고 있던 ‘어미’였다. 얼마나 절절한 어미의 몸부림이냐. 몸은 내게 ‘얼른 젖을 물려야 해’라고 다급한 신호를 보내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기랄 회의는 매번 길어졌고 난 몸의 신호를 무시하기 일쑤였다. 곧 무서운 미열에 오한에 살벌한 젖몸살이 찾아올 것이었다. 부랴부랴 근처의 화장실을 찾아들었다. 겨울의 추운 화장실에서 엉거주춤 서서 젖을 짜는 어미의 모성이란 무슨 젖소도 아니고 얼마나 서러운 자세인가.
몽우리가 심히 져서 우대리에게 좀 풀어보라 시켰더니 건성이다. 이건 살살 풀어주는 게 아니라 우악스럽게 짓뭉개는 몸짓이다. “어디 반죽하러 왔어? 소울이 없네”라며 내가 투덜거리자 “내 새끼들 세끼 밥인데 설마 건성이겠어?’라며 소울이 ‘만땅’으로 담겨 있다고 핏대를 세운다. 난 무슨 자격지심인지 ‘새끼들 밥’이란 말에 꽂혀서 “넌 내가 밥통으로 보이냐?”며 우대리를 들들 볶았다. 참젖이니 물젖이니 오로지 ‘젖의 품질’에 신경 쓰던 때여서 괜히 내 존재가 밥통이라도 된 양 서러웠던 것이다.
산부인과 갈 때마다 느끼는 그 모멸감이란 남자들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알몸에 닿는 차가운 금속성의 촉감에 소스라치게 누워, 난 차라리 문어처럼 다리가 여덟 달린 무정(無情)한 짐승이어서 내 부끄러움을 꿈틀꿈틀 가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면 환자의 편의보다 의사의 진료에 적합한 설계에 대해, 컨베이어벨트에 올라간 전자부품 같은 느낌에 대해 값싼 우울을 흘리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내 안의 짐승은 어쩌다가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게 된 것일까. 원두녀는 우아하고 석기녀는 미개한가. 엄마의 임신은 숭고하고 새엄마의 임신은 야만적인가. 차라리 사바나에서 아프리카 감자를 따 먹던 석기녀의 감정이 나보다 평등하지 않았을까. 문명은 분명 내게 멋지고 세련된 선글라스를 씌워주었지만 가끔은 내 눈을 멀고 미개하게 만들 때가 있다. 내 안의 석기녀에게도 인권이란 걸 안겨주고 싶다. (다음 편에 계속)
김라라 / 식품기업 R사 마케팅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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