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사보단 눈빛과 몸짓으로 감정 연기를 하는 배우가 있다. 영화 ‘좋은 친구들’로 스크린에 복귀한 지성이 바로 그 주인공. 지성은 모든 것을 의심하며 진실을 좇는 남자 현태 역을 맡아 깊은 내면 연기를 선보였다. 함께 호흡을 맞춘 주지훈, 이광수는 말과 행동으로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냈지만, 지성은 답답하리만큼 묵직한 태도로 일관하며 대부분의 감정을 눈빛으로 대신했다.
그럼에도 지성은 그 어려운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결과물은 훌륭했고, 지성이 선보인 묵직한 카리스마는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특히 영화의 대마를 장식하는 공항 신에서는 아름다운 선율 위에 어우러지는 지성의 깊은 내면 연기가 빛을 발했다. 그동안 명분 없이 강하기만 했던 남자영화들과는 다른, 남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묵직한 감성 연기를 제대로 선보인 것이다.
“요즘 영화들을 보면 하나같이 다 센 것 같아요. 액션은 필수고, 내용은 점점 더 세지고… 그런 작품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더라고요. 하지만 그런 영화들을 보는 관객들의 눈에는 뻔하고 식상하게 보일 것 같았어요. 이럴 때일수록 평범함 속에서 새로움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러던 중 ‘좋은 친구들’이란 작품을 만나게 됐어요. 물론 2%의 부족함은 있죠. 하지만 ‘좋은 친구들’은 부족함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었어요. 배우로서 욕심도 났고, 관객으로서도 흥미를 느꼈던 작품이었죠.”

극중 현태는 굉장히 불친절한 캐릭터다. 학창시절 가슴 깊이 간직했던 트라우마에 대한 설명도 명확하지 않고, 또 부모와의 관계가 왜 틀어졌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이를 연기한 지성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 같았다.
“사실 현태가 불친절한 캐릭터인 건 맞아요. 현태가 어떻게 말을 못하는 와이프와 결혼하게 됐고, 또 어머니와는 어떤 계기로 남남이 되어버렸는지 등의 설명이 정확하게 나와 있진 않죠. 그래서 상상을 해야 했어요. 감독도 배우들에게 명확한 답보단, 물음표를 던져 줬고요. 처음엔 현태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참 막막했다니깐요.”
지성의 난관은 또 있었다. 바로 대사 없이 눈빛과 표정으로 연기를 대신해야 했다는 것. 대사량만 해도 주지훈, 이광수와는 양이 달랐다. 대신 더 많은 감정연기를 지성에게 부여했다. 유독 지성의 현태에게만 핸디캡이 큰 것 같았다.
“사실 현태는 딱히 보여줄 수 있는 장면들이 없었어요. 눈빛으로 모든 걸 대신해야 했죠. 눈빛과 표정만으로 누군가를 때려야 했고, 욕을 해야 했고, 눈물까지 남몰래 흘려야 했죠.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을 대사 없이 연기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더욱 고민하고, 고뇌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지성은 진정성을 강조했다. 말없이 연기하기 위해선, 진심을 다해 연기해야 했다는 게 그의 설명. 뿐만 아니다. 지성을 비롯한 주지훈, 이광수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모두 진심으로 연기했다고 제차 강조했다.
“모두 진심을 담아 연기했어요. 그래야만 우리 영화가 살 수 있고, 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좋은 친구들’이란 영화는 배우들이 멋 부리고 거짓으로 연기하는 순간 망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삼류 이하가 될 것만 같았죠. 그래서 배우들과 마음을 다잡고 진심 하나로만 연기하자고 각오를 다졌죠.”
그래서일까. ‘좋은 친구들’은 언론시사회 이후 호평을 들으며 기대작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강렬함만 강조됐던 영화들과 달리, 연기파 배우들의 깊은 감성연기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셈이다.
“솔직한 마음으로, 이 영화는 흥행작보단 좋은 영화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두고두고 다시 볼만한 영화처럼요. 물론 스코어가 잘 나오면 화제가 되고 좋겠지만, 그건 한순간이잖아요. 관객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어요. 영화를 본 관객들이 ‘좋은 친구들은 참 좋은 영화야’, ‘그래, 지성이 나왔었지. 그 영화 참 좋았어’란 말 한마디가 제겐 더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 연기에 만족하진 않아요. 영화가 좋다는 거지, 제 연기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웃음).”

끝까지 겸손함을 놓지 않는 지성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올해로 데뷔 16년 차를 맞은 지성. 그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을까.
“처음 연기의 ‘연’ 자도 모를 때, 선배들에게 마구마구 혼나면서 연기를 배울 때가 있었죠. 그렇게 16년이 지났는데, 이젠 제 생각으로 연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저 자신도 자랑스럽고 대견하기까지 해요. 앞으로도 많은 작품을 만나겠죠.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늘 한결같이 작품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고 싶어요. 또 완벽한 100%의 지성보단, 조금 부족해도 98%의 지성이 되고 싶습니다.”
윤기백 기자 giback@sportsworldi.com
사진=김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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