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명 한글 전환에 전문서체 등장… 백일장도 열려
업계 “꾸준히 한글순화운동 이어가는 게 중요” 공감
어법과 음운(音韻) 파괴가 범람하면서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는 한글 사용에 한 줄기 빛이 내리고 있다. 게임이나 채팅, 메신저 등 인터넷을 통한 대화 수단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우리 글 변질 현상을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
특히 일방향에 치우친 소리 없는 아우성이 아닌, 주된 대상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공감을 얻으면서 효과 면에서 배가되는 모습이다. 실제 최근 한글날(10월 9일)을 전후로 게임 기업들은 대대적인 한글 순화 운동을 전개했는데,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사례가 많다. 넥슨 관계자는 “불특정 다수가 동시 체험하는 온라인 게임의 특성을 십분 활용해 파급력을 보였다”며 “이용자들이 호응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만들어 얼마나 꾸준히 한글 순화 운동을 이어가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넥슨의 경우 올해 한글날이 23년만에 법정 공휴일로 재지정된 점에 주목했다. 공휴일 여부를 놓고 인터넷 공간에서는 의견이 분분했을 정도로 국민적으로 공유되지 않자, 상대적으로 젊고 어린 이용자가 주를 이루는 자사 회원들을 중심으로 알림 작업에 나섰다. 회사 측은 “피상적인 홍보보다는 직접 한글이라는 소재를 만끽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이런 취지는 제대로 먹혀들었다. 신청자들이 폭주한 것은 물론, 진정성 면에서도 인정받았다. 영문 게임명 ‘던전앤파이터’를 한글 이름으로 바꿔달라는 주문에는 2000명 이상이 화답했다. 넥슨에 따르면 ‘호습한!(짜릿한 느낌) 퍼리(벌판의 옛말)와 쌈꾼’, ‘뚫레와 싸울아비(동굴과 무사의 순우리말)’, ‘옆으로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 ‘뒷골목 왈짜들!’ 등 상당한 수준의 한글 실력이 가미된 기발하고 재밌는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넥슨은 이 가운데 ‘땅굴과 싸움꾼’이라는 순수 한글명을 한글날 당일 ‘던전앤파이터’ 대신 깜짝 노출해 호평을 누렸다. 홈페이지 게시판과 SNS 등으로 ‘외래어가 아닌 한글로 표기된 점이 굉장히 특색있다’거나 ‘이 기회에 이름을 한글로 바꾸자’ 등 지지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세계 언어 중에서 한글의 독특한 속성을 반영한 일화도 있다. 넥슨은 업계 최초로 오피스 문서 작업에서 사용할 수 있는 ‘넥슨 풋볼 고딕’을 출시했다. 이 글꼴의 ‘ㅊ’은 축구선수, ‘ㅇ’은 그라운드, 글자 획의 사선은 축구공의 육각 형태를 형상화했다. ‘ㄱ’·‘ㄹ’·‘ㅎ’ 등 글자의 사선은 축구 경기의 긴장감과 박진감을 표현했다. 해당 글꼴은 ‘피파온라인3’와 네이버 무료서체 자료실에서 다운로드 가능하다.
넥슨 공식페이스북에서는 영어 일색인 게임 명칭을 한글화하는 공모전이 펼쳐졌다. 참가자들은 게임 본래의 이름과 특징을 버무려서 ‘카트라이더’를 ‘대두자동차경주’로 지칭했고 ‘메이플스토리’는 ‘단풍이야기’라고 불렀다. ‘버블파이터’는 ‘방울싸움꾼’, ‘카운터스트라이크2’는 ‘괴한들 때려잡기2’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게임을 즐기는 일상에서 항상 한글과 만날 수 있는 닉네임이나 캐릭터 이름 바꾸기도 성황을 이뤘다. ‘사이퍼즈’에는 3일 동안 1만개가 넘는 글이 등록됐다.
한편, 한글과 잦은 접촉을 유도하자는 의도는 다양한 방법론을 도출하면서 여타 기업으로 전방위 확산되고 있다. 엑스엘게임즈는 한글 백일장을 열었다. ‘아키에이지’라는 소재를 놓고 한 줄짜리 시를 쓰는 ‘한줄시인’이라는 대회를 치렀다. 수상자는 게임상에서 특별한 호칭에다 타대륙 언어 숙련도가 영구 증가되는 혜택을 누린다. 이밖에 언어학자가 NPC(게임에서 도움을 주는 보조캐릭터)로 등장하고 ‘아름다운 나랏말 해례 복사본’이나 ‘나랏말 상자’ 같은 게임 아이템을 선보였다. 회사 관계자는 “게이머들이 게임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한글 창제 원리를 엿볼 수 있도록 아이템을 구상했다”고 소개했다.
엠게임도 ‘열혈강호 온라인’에서 훈민정음, 자음의 책, 모음의 책 등 한글 관련 아이템을 적용하거나 한글 퀴즈를 진행하고 이를 각종 혜택과 연관짓고 있다. 조이시티 역시 소셜네트워크게임(SNG) ‘룰더스카이:꽃보다룰스’에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보필했던 학문연구기관 집현전을 추가했다.
김수길 기자 sugiru@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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