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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 총재와 통일교, 그 발자취(下)

입력 : 2012-09-10 21:42:54 수정 : 2012-09-10 21: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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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총재 가는 곳마다 '와글와글'… 하나님의 '뜻' 위한 대장정
후계자 문형진씨 확정… 교명 '통일교'로 바꾸고 용산시대 열어
미국에서 통일교는 신흥종교 가운데 놀랄만한 속도로 교세를 확장해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기성신학과는 정반대의 성경해석(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결혼해서 가정을 가져야 했다 등)은 미국 기독교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했고, 미국 정가도 눈엣가시로 생각했다.

승승장구하던 통일교에 최대 위기가 닥쳤다. 수난의 단추는 한미 최대 스캔들인 코리아게이트(대미 로비사건) 관련 프레이저 청문회(박보희 선교사 소환)와 문 총재의 댄버리교도소 수감(1884년 7월)으로 채워졌다.

통일교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세워진 미국에서 종교적 혜택을 누리기는 커녕 오히려 편견과 인종 차별 속에 ‘소수 종교’에 가해진 치명적 덫에 걸린 것이다.

수감 중에도 문 총재는 ‘감옥도 하나님의 영토’라며 30만명의 목사들에게 원리비디오테이프와 서신(‘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을 보내도록 하는 한편 세계평화교수협의회를 통해 공산주의 종언을 선포토록 했다. 문 총재는 댄버리 고난도 사랑의 힘으로 승리했다.

세계적으로 통일교 활동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화젯거리가 됐다. 하나님이 문선명 총재를 이땅에 보내 ‘하나님 아래 한 국가’ 이상(理想)을 실현하려 한다고 믿는 통일교 입장에서 보면 세상의 몰이해와 박해는 그야말로 억울한 차원을 넘어 한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통일교에 따르면 ‘뜻’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이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지향하는 목적은 인류를 자유와 평화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메시아가 오는 목적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다. 문 총재가 세계적인 도상에서 문제인물로 부각된 것은 단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그 한복판에 있었기 때문이다.

문 총재 입장에선 하나님의 뜻은 불변이다. 문 총재가 쉼없이 지치지 않고 초인적인 활동을 펼쳐온 것도 이를 뼛속깊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하나님의 오묘한 전법을 잘 알고 있었던 것도 한 이유다. ‘하나님의 작전은 맞으면서 빼앗아 나오는 것’이요, ‘악은 때려서 점령하지만 나중엔 손해배상을 치러서 갚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해온 문 총재다.

대대적인 국면 전환이 필요했다. 그게 바로 199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참가정실천운동이다. 1997년 교회 명칭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에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바꾼 후 이상가정을 통한 평화세계 실현을 모토로 각국에서 참가정운동의 전개했다. ‘가정의 가치 회복’은 종교를 떠나 사회 존립 차원에서 요구되는 도덕적 명제였다. 이 운동을 통해 이미 결혼을 한 수백만명의 부부가 참가정 축복식에 동참, 참된 부부·부모가 될 것을 서약하는 형태로 결실을 보았다.

통일교의 활동은 시기별로 목표와 목적을 달리해 전개한 특징이 있다. 1960년대에는 농촌계몽운동, 1970년대에는 승공운동을 펼쳤고, 1980년대에는 기독교 교파연합운동과 종교연합운동, 남북통일운동을 일으켰다.

2000년 들어 통일교의 모든 역량은 평화운동으로 모아졌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만남(1990년 4월), 김일성 주석(1991년 11월)과 요담을 계기로 평화 대장정에 박차를 가해온 문 총재였다.

1999년 11월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IIFWP)을 창설해 종교·국가·인종·사상을 초월하는 평화운동을 시작, 이를 모태로 천주평화연합(UPF)과 평화유엔을 출범시켰다. 평화유엔은 종교와 국가의 벽을 넘지 못하는 유엔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차원의 민간기구로서 성격을 띠고 있다.

평화세계를 이루기 위한 문 총재의 업적은 각국 지도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2006년 6월 13일 문선명 총재 내외는 전세계 185개국에서 온 평화사절단으로부터 ‘평화의 왕’으로 추대됐다.

문 총재는 2006년 공식 후계자로 막내인 문형진씨를 확정했다. 문 총재의 4남인 국진씨가 통일그룹 재단이사장(2006년 5월)으로, 형진씨가 통일교 세계회장(2008년 4월)으로 각각 취임했다.

이로써 통일교 용산시대도 활짝 열렸다. 문 총재가 미국에서 귀국하면 공식 설교가 열리곤 했던 청파동 본부교회를 2010년 용산 천복궁(통일교 세계본부교회)으로 옮긴 후 전도에 박차를 가하며 내실화를 꾀하고 있다. 교명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서 ‘통일교’로 다시 바꿔 정체성을 확실히 했다.

통일교가 반세기 만에 세계적인 종교로 자리잡은 데에는 문선명 총재의 카리스마와 초인적인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문 총재를 참부모요 구세주 재림메시아로 믿고 따라온 통일교 신도(식구)들의 헌신적인 활동이야말로 오늘의 통일교를 있게한 요체다.

2012년 9월 3일 성화(聖和·별세를 의미)한 문 총재의 생애는 ‘부모의 심정으로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해, 눈물은 인류를 위해, 피는 하늘을 위해’ 바쳐온 삶으로 요약된다.

세계평화 창건과 인류대가족 실현을 위한 참사랑의 외길을 걸어온 문 총재의 발자취를 기억하는 신도들이 건재하는 한 통일교는 평화세계를 견인하는 종교로서 그 책임과 사명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강민영 기자 mykang@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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