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조선시대 학자 심로숭이 쓴 신산종수기(新山種樹記)를 읽었다 서울의 남산에 자리한 낡은 거처에서 살고 있던 그에게 꽃나무 가꾸기를 게을리하자 아내가 물었다 다른 집을 보면 남편들이 꽃과 나무에 심취한 이가 많더군요 당신은 어째서 꽃나무까지 황폐해지게 내버려둡니까? 꽃과 나무를 가꾼다면 집이 낡았어도 한번쯤 볼거리가 되지 않겠어요?
그 무렵 그는 고향 파주로 거처를 옮기려고 집을 짓고 있었는데 아내의 병 간호를 하다가 시간이 나면 파주로 달려가 집짓는 일을 돕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31세 때 동갑내기 아내를 잃게 되었다 파주의 새 집에서 아내와 같이 꽃나무를 가꾸는 게 소중하게 품어온 꿈이었다 대신 그는 아내의 묘가 있는 산자락에 꽃나무를 심어 아내와의 못다 한 꿈을 이루고자 했다 그것이 아내가 살아서는 얻지 못했던 것을 영원히 얻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생이라야 이제 삼십년을 넘지 않을 것이고 한 번 죽고 나면 그 뒤로는 백년천년 끝없는 세월이라고 기술한 내용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200여 년 전 한 선비가 보여준 아내 사랑에 가슴이 뭉클하다 가부장적인 권위가 서슬 퍼렇게 살아있던 시대에 남편이 먼저 떠난 부인에게 바친 헌사는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오늘날의 사랑과는 그 깊이를 달리한다 이처럼 고전문학의 매력은 찰나적인 쾌락을 뛰어넘는다 인스턴트처럼 쏟아내는 그 어떤 글도 고전문학의 아름다움을 앞서지는 못하리라 그래서 고전을 읽을 때면 행복하다
필자의 아내가 누워 있던 암센터의 병실에 앉아 이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가 한둘이 아니었다 폐렴 등의 이유로 숨쉬기 어려웠던 아내가 휠체어에 의지해 어렵사리 병원 뒤쪽의 공원을 찾은 때가 7월의 한 날! 노랗게 핀 원추리 꽃을 보면서 가벼운 탄성을 자아냈다 피톤치드를 가볍게 마시자 얼굴에는 화기가 감돌았다 아내는 풀향기가 너무 좋다며 이렇게 나와서 좋은 공기만 계속 마시고 있으면 혹시 깨끗하게 나아버리지 않을까라는 얘기도 했다
심로승의 아내처럼 필자의 아내도 꽃을 좋아했다 차가움이 묻어나던 지난 2월 시장 입구에서 구입한 5000원짜리 장미화분을 거실에 놓고 키우다 며칠 후에 빨강 꽃을 피우자 생명의 환희를 감탄사로만 나타내기도 했다 특히 생명력 강한 비파나무를 좋아해 직접 화분 속에 키워나갔는데 비파차를 끓여먹고 비파잎으로 찜질을 하며 생명에의 의지를 다져나갔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내는 깨끗하게 낫지 못하고 7년여의 투병 끝에 최근 유명을 달리하고야 말았다 이제서야 고통없는 곳에서 안식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반드시 슬픈 것만은 아니다 이제 나는 아내가 정성껏 심어둔 베란다의 비파나무를 보며 새록새록 묻어나는 지난날의 기억을 반추하면서 올 여름을 보낼 생각이다 아내의 승화식장(昇華式場)에 오신 많은 분들에게 이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말씀을 대신 전하게 됨을 송구스럽게 생각하면서
최홍길 선정고 교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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