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혼이나 마약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을 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제게 정말 힘들었던 시기는 따로 있어요. 바로 몇 년 전 있었던 표절 논란이었어요. 그 때는 정말 은퇴하고 싶었어요. 가수란 게 음악 좋아하고 대중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노래 부르는 거지 돈 버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 때가 가장 큰 위기였어요. 표절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이는 가수와 제작자예요. 3억∼4억원 들여서 곡 받아서 녹음하고 발표했는데 표절이라고 하니 얼마나 속 상해요. 다행히 그 때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판단으로 원작자와 협의가 잘 돼서 마무리됐고 곡도 살 수 있게 됐죠.”
바로 지난 2007년 이승철이 발표한 홍진영 작곡가의 ‘소리쳐’가 표절 의혹을 산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원곡 ‘리슨 투 마이 하트’의 공동 작곡자인 REID·ELOFS가 “표절은 아니지만 일부분의 멜로디가 유사하다”는 공식 의견을 내놓고 저작권료를 공동으로 받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불과 1개월이 안되는 시간 안에 해결됐지만 이승철의 가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상처를 남긴 셈이다. 그래도 떳떳하게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은 아티스트로서의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자신의 음악 세계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으로 험난한 가요계를 헤쳐온 가수로 통하는 이승철. 그의 데뷔 25주년을 맞아 많은 후배 가수들이 이번에 그가 발표한 데뷔 25주년 기념 앨범에 참여해준 것도 그 때문이다. ‘25번째 프로포즈’ ‘너에게 물들어간다’ ‘그때로 돌아가자’ 등 3곡의 신곡이 담긴 이번 앨범은 현재 가수로, 제작자로 최고를 달리고 있는 후배들이 대거 참여했다.
박진영이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를 직접 새롭게 편곡, 가창했고 타이거JK는 ‘25번째 프로포즈’에 랩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소녀시대가 ‘소녀시대’를, 김태우가 신예 래퍼 앙리와 함께 ‘희야’를, 김범수가 ‘떠나지마’를 새롭게 재해석했다. 아이비는 이승철과 함께 듀엣으로 ‘긴 하루’를 열창했다.
특히 ‘마지막 콘서트’는 이승철의 친한 음악 후배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줄리어스 킴(한국명 김정원)이 새롭게 해석해 앨범의 퀄리티를 한층 높였다.
“후배들이 자신들이 부를 제 곡을 선택했고 저는 최대한 그들이 알아서 자신들의 음악적 기량을 뽐낼 수 있도록 배려했어요. 심지어 녹음실에도 찾아가질 않았죠. 정말 만족스러운 작품이 나왔어요.”
그런데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은 따로 있다. ‘너에게 물들어 간다’는 신예 최용찬 작곡가의 곡으로 이승철스럽지 않은 곡 분위기를 풍긴다. 가볍게 밝은 느낌을 주는 스타일로 뮤직비디오에는 이승철의 구상대로 가수 출신 연기자인 유진이 출연한다. 빠져드는 게 아니라 사랑의 느낌에 조금씩 참여해 나가는 희망찬 느낌이 지금까지 슬픈 가사가 특징이었던 이승철의 노래와 다르다.
25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앨범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다. 역시 로커 출신답게 잠실 주경기장을 가득 채울 예정이다. 이승철은 6월5일 오후 8시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오케스트록’이라는 대형 콘서트를 연다. 가장 비싼 VVIP석의 경우 25만원에 달할 만큼 비용 대비 최고의 효과를 주기 위해 오랜 시간 쌓인 공연 노하우는 물론, 새로운 실험도 계획 중이다.
“무용수 20명, 오케스트라 단원 40인, 코러스 6인 포함해서 록밴드 12인 등 가장 규모가 클 거예요. 3D 영상도 활용할 거고 주경기장에서 하는 만큼 음향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답니다. 사실 올해를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지만 워낙 주변에서 25주년을 그냥 보낼 수 없다고 해서 저로서는 만족해요.”
부러울 만큼 이승철에게는 올해도 봄날의 향연이 계속될 전망이다. 이승철에게 이처럼 봄날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여전히 그를 뜨겁게 지지하고 사랑하는 팬들도 있겠지만 여전히 그의 음악이 시작된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부활에서 시작하지 않았다면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지금처럼 대형기획사 연습생으로 시작했다면 몇 년 못가서 바닥이 났을 거예요. 부활 시절 실제 무대에서, 다양한 악기 연주자들과 직접 부딪치면서 배운 게 지금까지 제가 음악적으로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데뷔 25주년을 맞는 가수 중 누구나 여전히 봄날인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승철은 행운아다.
스포츠월드 한준호 기자 tongil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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